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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Feb 27. 2019

2019년 2월 19일

그저께부터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다.


의대생인걸 밝힌 뒤로 항상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의사 선생님을 보자마자 속에서 뭔가 서러움이 차올랐다.


왼쪽 어깨를 이리저리 움직여보시더니 "훨씬 덜 아파졌네" 하며 의자를 빼려고 하시는 찰나에 말했다.


"오른쪽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헛웃음을 지으시며 오른쪽 어깨를 몇 번 만져보시더니 어깨가 많이 상해있다고 하신다.

이제는 초음파 화면이 익숙하다

이미 속에서는 짜증과 실망감에 더이상의 정보를 원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초음파와 엑스레이를 준비하셨다.


이제 슬슬 초음파가 눈에 익지 않냐는 선생님의 농담은 한귀로 흘린 채, 화면에 뜬 내 어깨 영상에 집중했다.


다행히 힘줄이 끊어지지는 않았고 군데군데 손상이 간 부분이 있다고 했다. 결국 왼쪽 어깨보다는 조금 나을 뿐


다를것이 없었다.


내가 너무 암울한 표정을 짓자, 선생님의 말수가 부쩍 많아졌다.


그러시면서도 '너는 어깨를 다쳐봐서 OS(Orthopaedics Surgery)에 잘맞는다. 자기가 아파봐야 환자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고 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 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해주셨다. 그러면서 또, 어깨 재활에 관한 재활 치료법을 집대성한 한 의학자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그 또한 선천적 어깨의 결함을 가지고 태어나 그런 쪽으로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럼에도 지금 내 우울한 기분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약을 타고 나와서 집에 가는 버스안에서, 몇 달 전부터 운동은 나가지 못하고 돈만 내고 있었던 배드민턴 클럽에 감사했다는 말씀과 함께 단톡방을 나왔다. 바로 재무이사님께 전화가 걸려왔고, 정말 감사하게도 회복을 기원해주시며 저번주에 막 냈던 회비를 환급해주셨다.


많은 친구들이 또 어깨를 걱정해주었는데, 정말 이 암울한 기분이 사라지지를 않는다. 마음같아서는 라켓을 다 부러뜨리고 싶다.


나는 남들이 유별나다고 할 정도로 배드민턴에 대한 애정이 깊다. 애초에 라켓 종목이 아닌 기타 스포츠를 잘 하지 못하는 내 능력 탓이기도 하지만, 배드민턴이라는 스포츠 그 자체가 좋다. 복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개인의 역량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팀워크 또한 어떤 하나의 기술처럼 맞물려 돌아가야한다. 수준이 높아질수록 게임의 전개속도가 빨라지고 그에 상응하여 사람들의 반응 속도, 반사신경 또한 좋아진다. 또 나같이 마른편이면서 키도 그렇게 크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상당히 이상적인 체형에 해당하는 점이 좋았다.


초등학교 때 집에서 배드민턴을 가르치고,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에게 1년동안 강습받으며 흥미를 키웠다. 중학생 때 동호인A조의 체육 선생님을 만나 배드민턴에 푹 빠지게 되었고 이는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운동은 대학에 가서나 하라며 한달에 한번 운동하는것조차 허용해주지 않는 집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유투브 시청이었다. 지금 현재 요넥스 레전드에 해당하는 타우픽 히다얏, 리총웨이, 린단, 피터 게이드, 이용대의 영상을 보면서 자세를 배우고, 머리속에서 계속 운동하는 등,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재수 때에도 운동이 공부에 도움된다는 핑계로 1,2주에 한번 배드민턴을 치는 것이 내 루틴이 되었었다. 그렇게 운동을 하고나서 대학에 들어와서 정말 행복했다.


중장년층이 많은 배드민턴 클럽에, 새로 들어온 20대 극초반의 나는 빠르게 주목받았다. 내 특기이자 단점이지만, 1대1 반코트에서 노련한 클럽 임원진들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다들 상당히 좋아해주셨다. 비록 게임에 들어가서는 로테이션을 돌지 못하고 특유의 스매싱 실수로 인해 금방 버려졌지만 그래도 운동하는게 좋았다.


학교 중앙 동아리가 만들어졌다고 했을때 너무 기대되서 하루 종일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20대 층이 얇은 배드민턴의 특성상 실력자를 만나기 굉장히 어려운데, 과연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기대했었다. 내 생각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나 또한 그 부류로 취급되면서 운동을 즐겨보려는 찰나에 어깨가 무너졌다.


어줍잖게 배웠던 골프 때문이었다.


부모님의 강압에 방학 1달 반 동안 배웠던 골프가, 교양 수업 첫 날 휘둘러 보라는 말에 독이 되었다. 어줍잖게 배웠던 골프실력으로 풀스윙을 하자, 어깨가 탈구되는 느낌과 함께 악 소리가 나왔다. 내 예과 운동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사실 지금 상실감은 배드민턴을 치지 못하는것 뿐만이 아니다. 헬스도 문제에 포함된다.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멸치'의 대명사로 불리웠던 나는 정말 닉네임 그대로 상당히 말랐었다. 셔츠는 팔을 한번 더 감을 수 있을 정도로 컸고, 바지는 다리가 너무 얇아 나팔바지처럼 보였다. 얼굴은 핏기없이 말라서 친척집에 갈때마다 핀잔을 들었고, 오죽하면 선생님들 마저 모두 걱정했었다.


재수를 시작하면서 그런 단점을 뒤집고 싶었다. 부모님을 설득해서 실내 철봉을 구매하고, 하나도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단련에 단련을 거듭하여 15개를 한번에 할 수 있는 몸을 만들었다. 왜소했던 어깨는 등근육이 넓어짐에 따라 같이 펴졌고, 가슴 뼈가 기형적으로 움푹 파여있던 구조는 가슴 근육을 키움에 따라 정상인처럼 돌아왔다.


어떤 옷을 입어도 너무 왜소하여 옷 태가 살지 않던 예전과 다르게, 몸을 만들면서 증량에 성공하자 쇼핑이 즐거웠다. 몸은 M이지만 어깨와 체형을 L로 만들면서 대부분의 옷이 내 몸에 예쁘게 맞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쇼핑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깨가 나가던 날 내 머리 속에 가장 크게 남은 불안감은 배드민턴도 무엇도 아닌 내 체형이었다. 선천적으로 대사량이 높아서, 한끼만 굶어도 2kg 이상이 차이가 났던 나는, 헬스를 하지 않으면 살이 빠진다. 그리고 근육으로 등을 넓혀서 어깨를 넓혔기 때문에 살이 빠지면 체형은 원래대로 돌아간다. 사실 이게 제일 무서웠고, 그래서 필사적으로 오른쪽이라도 운동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른쪽 어깨도 나갔다.


남들은 별 일 아니라 할지 모르지만 가장 사소한,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일상생활이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훗 날 내가 OS에 가게 된다면, 그리고 20대 초반의 회전근개 파열 환자를 본다면, 정말 누구보다 그 환자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내 마지막 남은 예과 1년이 이렇게 시간만 죽이며 흘러가는게 지금 너무 비참하다.


우울하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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