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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Aug 23. 2020

나는 당신들을 믿지 않는다. (의사파업)

역겹고 역겹고 역겹다

역겹다.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내가 역겹다.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러워했던 내가 역겹다.


촛불 앞에서 이 나라 민주주의에 자부심 넘쳤던 내가 역겹다.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최소한의 선을 지키려고 했다. 나랑 처지가 다른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들이 내 말에 설득당하기보다도 그들이 내 말에 귀기울여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글을 썼다. 어떤 언론도 제대로 다뤄주지 않는 ‘의사 파업’에 대해 어떻게 하면 진정성 있게, 논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글을 수없이 많이 고쳤다. 나보다 전문적으로 말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영상도 첨부했고, 내 나름의 논리를 고민해서 올렸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이유들로 나도 이제는 그 ‘선’을 끊고 나가려한다. 갈 데까지 가보자.


1. 지난 8월 14일 전공의-의대생 파업 현장에 나갔다. 여의도 한복판에, 2만명이 넘는 의사와 예비의사가 모였다. 하지만 어떤 채널에서도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어떤 기사에서도 우리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왜 우리가 분노했고, 왜 우리가 거리로 나왔는지 알릴 수조차 없었다. 파업이 얼마나 불편을 초래했는지, 시민들에게 휴진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는지에 대한 기사만 파다했을뿐. 파업에 참여한 의사를 제외한 나머지 의사들이 당직을 서준 덕분에 의료공백 없이 파업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MBC를 포함한 주요 언론사는 파업이 끝난 이후에도 ‘휴진으로 인한 의료공백’에 대한 기사를 내놓고, 정부는 ‘미리 준비한 대체인력을 투입한 지자체 덕’이라며 공치사했다.


대체인력? 대체인력?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체인력 확보' 발표

대체 우리나라에 의사 대체인력이 어디있나? 숨겨둔 의사라도 있으면 증원하지말고 걔네들 데려다 쓰면 되지 않나? 병원에 남은 당직을 선 교수님들, 전임의들이 당신네들 대체인력인가? 그들을 당신네들이 투입했고? 그래서 의료공백이 없었고? 지랄도 적당히하자. 제발. 제발. 제발.

어디에도 소개되지 못한 2만 의사 파업 현장. 마스크, 페이스쉴드까지 완벽하게 준비했다.


2. 언론사, 언론인. 양심이 있는가? 부끄럽지 않은가? 진심으로? 당신들의 저널리즘은 이정도인가?

이게 언론사의 멘트라고? 3대 방송사의 멘트라고?

위의 사진이 그 ‘MBC’의 기사다. 이걸 읽고도 뭐가 문젠지 모르겠으면 더이상 설득하고 싶지 않다, 그냥 더이상 읽지 말자. 이제 지쳤다. 누구보다 중립의 기본이 되어야 하는 언론이, 그 중에서도 방송 3사라고 불리는 공중파 MBC의 앵커멘트다. 지친다. 그리고 역겹다.


3. 이게 메인이다. 정말 이걸 보고는 속에서부터 역겨움이 끓어올라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시장님께서 여론조작에 가담하라고 당부까지 하셨다고?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라고? 잘못된 정책에 여론이 안좋아지니까 이런식으로 여론을 조작한다고?

이런 공무원들 대상으로한 공문이 한 두 군데에 내려온게 아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공문들만 합해도, 최소 3군데 이상의 시에 이런 공문들이 내려왔다. 그런데 지금 메인 뉴스에 다뤄지고 있는가?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은 그렇게 가열차게 올리더니, 무슨 차이인가? 공무원? 대통령 밥그릇이나 닦아라. 요즘 뭐 공무원 되기 힘들다 하던데, 공부해서 들어가서 자랑스럽게 닦아라.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의대생 본과 4학년들의 의사 국시 거부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의대협을 기점으로해서 이미 응시원서 접수를 취소하는 중이다. 그 와중에 우리 '부산대 의대 조씨 집안 그분'께서는 시험을 보려고 하시나보다. 당연히 보겠지. 그렇게 주구장창 유급할 머리로 지금 아니면 어떻게 의사 국가고시를 통과할까? 하늘이 준 기회다 싶어서 달려가서 보겠지. 진짜 역겨움에 진절머리가 난다.


동맹 휴학도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속한 학교도 기한이 이틀 이상 남았지만 이미 재학생의 60%정도가 휴학계를 제출했다. 두려웠다. 정말 유급해서 1년을 다시 다니게 되는건지, 본과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하는건지. 남은 시기동안 무엇을 해야할지. 등록금을 지원해주시는 부모님께는 어떻게 말씀 전해야할지.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내 결정이 우리 전체의 행보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휴학계를 제출했다. 다행히 많은 동기, 선후배들이 동참했다.


이 시점에서도 기사들, 댓글들은 온통 의대생을 까내리는 글 뿐이다. 그들 눈에 우린 그저 돈독에 미친 대학생들이다. 지친다. 나에겐 더이상 그들을 설득할 힘도 의지도 없다.


보건복지부는 계속해서 말한다. '정책을 철회하는것은 불가능하지만, 파업을 멈춰준다면 대화할 수는 있다.' 무슨 개소린가. 정책을 철회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인데, 그게 불가능한데 대화는 왜 하는가. 애초에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긴 했는가? 지난 주 의사협회가 제안에 응해서 대화의 자리에 나갔을 때, 코로나를 눈 앞에서 상대하는 의사들에게 복지부는 '의사는 코로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는 식의 소리를 늘어놓았다. 하루에 2,3시간 자기도 힘든 전공의들 앞에서, 잠 못자서 힘들다고 찡찡거리는 그들. 뭐라 할 말이 없다. 더이상. 그래도 기사는 나더라. '보건복지부가 내민 대화의 장, 의협 결국 거절'


지친다.

누군가 내 글을 여기까지 읽어줬다면, 그래도 고마운 당신에게는 마지막 의지를 쥐어짜 설득하고 싶다.


이전 글 '의사는 전문가가 아니다.'에 의대생으로서 본 정책의 문제점과, 전문가들이 본 정책의 문제점을 실어 두었다. 정말로 왜 의사들이 이렇게까지 다같이 모여 의미 없는 파업(파업 인원을 따로 빼고 나머지 의사가 일을 더 하는 시스템의 파업_이래도 그들이 환자 목숨으로 장난질하는것인가? 인질 삼은 것인가?)을 하고, 왜 의대생들이 모여 동맹 휴학, 국시 응시 거부를 하는지 궁금하다면 제발 그 글을 읽어달라. 부탁드린다.


글이 길어져서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대한전공의협회 소속 전공의가 했던 말 언급하고 가려한다.


'이번 파업이 밥그릇 싸움이나 도덕적인 문제였다면 이해관계가 다양한 의사집단 내에서도 반드시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이번 파업은, 의사 모두가 반대한다. 그냥 '잘못된' 정책이기 때문이다.'


영상 링크를 아래에 걸어둔다.

https://www.youtube.com/watch?v=U9PhqHuZ4Ew


제발 학교 가서 공부좀 제대로 하고 싶다.


#공공의대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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