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했었다.
문장으로 내뱉기 전에 머릿속에서 어떻게 굴려보아도 변명 같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설명은 또 없다.
전 회사 동료들과의 모임이었다. 다들 여전히 젊었고, 패기넘치고, 비슷한 고민속에 살고 있었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주는 거리감을 술잔에 따라 마시기를 수차례, 우연히 떠오른 기억에 당시의 내 모습을 화제삼아 보았다. 다들 MZ 오피스 보았느냐고, 그 회사 다닐때 내가 그렇게 이어폰 끼고 일하고 그랬었는데, 거울치료를 많이 당했노라고. 그때는 진짜 개념이 없었던 것 같다고. 좌중에 번지는 웃음 뒤로 터져나오는 진실. 그래서 네가 그때 꼰대 누나들한테 뒤에서 욕을 그렇게 많이 먹었어.
다행히도 그 즉시 분위기가 어색해진다거나 하진 않았다. 모두가 웃으며 넘어갔다. 의식해서 였는지, 내가 일을 참 잘했었다는 등의 위로가 될 만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지만 사실 한 쪽 구석에 돌덩이가 계속 굴러다니는 기분이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내가 부정당했음을 깨닫는 순간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반 친구들에게 소외당했을 때. 처음 자대배치받고 이리저리 헤맬 당시 데리고 있던, 늘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이것저것 많은 도움을 준 고참 병장이, 병사들끼리 시간을 보내는 저녁때가 되면 나의 무능을 신랄하게 까내리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런 때들은 필연처럼 다가오기도 한다는 걸 안다. 거기에는 내 잘못 말고도 다른 이유들도 있다는 것도.
어제 그 사실을 들은 뒤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처음 든 감정은 당황이었다. '아 내가 없는 곳에서 나 욕을 먹었구나.' 그리고 인정으로 이어졌다. '그래 맞아. 그럴만 하게 행동하긴 했었어. 방금 내 입으로 말했잖아' 그리고 이해했다. '그만둔다고 했을 때 인사를 나누던 이들 중 나의 인사를 떨떠름히 받는 것 같은 이가 있었는데 속마음이 그런 것이었구나.' 그리고 이내 슬퍼졌다. 그 회사에서 일했던 기간들을 떠올릴 때 결코 걷어낼 수 없는 옅은 투명막이 덧씌여졌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살아갈 모든 현재에도, 충분하게 성숙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는 이 쯤하면 철들었지 싶겠지만 지난뒤엔 그처럼 미숙한 때가 없었다며 고개를 젓게 될것이다. 당시 그 회사를 다니던 때에 난 스스로의 행동에 확신이 있었다. 그때 품은 증오에도 철저한 근거가 있었다. 양쪽에 이어폰을 끼고 일하며 매니저가 내 이름을 불렀는데 바로 듣지 못하는 상황이 몇번을 반복되어도 난 그 매니저를 싫어했기 때문에 나의 행동이 정당하다 생각했었다. 게다가 나 말고도 헤드폰을 끼고 일하는 동료가 많이 있었으니까.
온종일 뜻모를 슬픔에 잠겨있다가 B에게 구원받았다. 마침 오늘 들은 강연 동영상에 나온 말이라며, 실패에 우아하게 대처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전해준 것. 타인의 시선으로 내 가치를 낮춰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몇번을 반복해주었다. 지난시간을 통해 배울 것만 배우고, 상처는 입지 말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