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없습니다 -이야기라는 세계

by 희붐


시공간? 없습니다. 이야기라는 세계





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정류장 코 앞까지 달려갔으나 나를 두고 떠나간 버스처럼, 야멸차도록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가건 말건, 혼자 쏜살같이 앞을 향해 달려갑니다.


공간은 금세 낡아갑니다. 우리가 채 머물기도 전에, 풍경은 바뀌고 흔적은 지워집니다. 생명 역시 활발하다가도 죽어 사라집니다. 모든 게 그렇게 사라진다면,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남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래서 결국 남는 것—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은 이야기로 살아남고, 살아갑니다.


한번 받아들이면 기억되고, 또 사람의 입이나 글자를 통해 전파됩니다. 시간도, 공간도 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중요한 단 하나의 것. 이야기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무리지어 수렵채집을 하지도 못했을 테고, 여러 짐승 보다 완력이 약한 인간은 재빨리 소멸했을지도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속 소설,『전날의 섬』에는 매일 이야기를 지어내야 하는 이상한 섬에 사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매일 어떤 이야기를 해야 남들과 겹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심지어 ‘이야기 제조기계’까지 만들어냅니다. 상황-갈등-감정-관계-배경 같은 이야기의 요소들이 바퀴위에 놓여 룰렛처럼 돌아가는 기계 였어요. 단지 남들과 겹치지 않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갖은 애를 쓴 거죠. 거짓말의 천국이었을 것 같은 건 단지 제 느낌 뿐일까요? 놀라운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일 수록 그 위치가 달라졌을 것 같지 않나요? 바야흐로 이야기꾼의 세계. 흥미로웠습니다.


섬에서 가장 무거운 형벌은 그 사람에 대해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 것.
그의 서사를 지워버리는 것.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취급하는 일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과장된 풍자처럼 보이면서도, 너무 익숙해서요.


우리는 매일같이 누군가를 기억하고, 잊고,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는 오래도록 살아남고,

누군가는 조용히 사라지죠.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려 합니다.

이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과, 지금 이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을 오늘도 ‘존재하게’ 하려 합니다.
한 줄의 이야기가 전부가 되기도 하는 세계에서, 이야기를 간직하기 위해 또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지게끔 - 이야기가 생명을 얻어 꿈틀댈 수 있도록, 기록하려합니다.


현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그들의 삶은 이쪽의 우리에게도 무언가를 불러일으킬 것이라 믿습니다. 반대로 우리들이 불러일으킨 무언가가 다시금 그들에게-혹은 그들의 지인-근처 사람들에게라도? 무언가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요.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우리 사이를 영원히 돌고 돕니다.


시공간은 없습니다. 물리법칙 따위 아랑곳 않고 어떻게든, 어디로든 뻗어나갑니다. 적어도 이야기 만큼은 말이지요.


우리 앞에 이야기라는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고있던 그 세계 말이지요.

이제부터 천천히,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