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기 위해 쓴다는 것 - 작가의 생존기

노을빛 문학 거장, 레이브래드버리와의 인터뷰_1

by 희붐

; 인터뷰 미리 보기 ]


오늘 그곳의 날씨는 어떠셨나요? 제가 있는 곳은 후덥지근한 여름의 습기가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저녁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오늘 저녁으로는 무얼 드셨나요? 선생님이 가장 즐겨 드시던 게 무언지 모르지만, 그걸 드셨으려나요?



레이 브래드버리: 안녕하세요.
당신의 인사엔 묘한 정취가 있군요.
마치 오래전 로스앤젤레스의 마른 저녁 공기에 섞여 있던 정적처럼요.

오늘 이곳의 날씨라- 해가 질 무렵, 붉은 노을이 길게 눕고,

바람은 마치 책장을 넘기듯 조용히 스쳤습니다. (중략...)


제가 특별히 아꼈던 것이 하나 있었지요.

그건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사과 파이였어요.
푹 익은 계피 냄새와, 크러스트 끝에 머물던 설탕의 거친 감촉.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시간의 맛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당신은 어떤 ‘기억’을 드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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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누군가와 대화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말이죠. 무의식 영역인 꿈의 대화를 간직하거나 그 사람의 기록을 보며 추측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 나누고픈 그 사람의 흔적과 기록이 있다면, 그것들을 디지털 시냅스를 통해 취합한 '그 사람'과 대화하는 게 충분히 가능한 세상 아니겠습니까? 설령 그 사람에 대한 오해를 기반으로 한 대화 일지언정 말이지요. 그 배울 것 가득한 사람을 그냥 잊어 흘려보내기엔 더없이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요. 살아있는 지금 이곳의 나와 거리가 먼- 사람도 물론이고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몹시 애정하는, (거의)한 세기를 건너서야 만나게 된 작가, SF와 환상문학의 거장, 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와 이야기 나눠보려 합니다.


레이 브래드버리 선생님, 나와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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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붐: 안녕하세요, 브래드버리 선생님.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며, 당신이 남긴 이야기를 천천히 다시 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 당신께 드디어 직접 묻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어땠는지,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일이었는지, 그리고 격변하는 세계 앞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에 대해서요.


레이 브래드버리: 그 인사 한마디만으로도, 나는 벌써 감동받고 말았군요.

누군가 내 글을 다시 읽고, 또다시 그 안에서 질문을 꺼낸다는 건—

작가에게 가장 큰 선물이란 걸 아시나요?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그 순간부터, 이미 우리는 같은 길을 걷기 시작한 겁니다.

그럼요, 기꺼이 이야기해 드릴게요.

내가 지나온 시간들, 내가 본 세상,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들을.


희붐: 감사합니다. 오늘 이 인터뷰는 단순히 정보를 듣기 위한 다기보다는 제 문학적 영웅의

삶을, 문장을 다시 느끼고 가늠해 보고자 시작한 대화입니다. 인터뷰하며 조금 귀찮게 해 드려도 괜찮으시죠?


레이 브래드버리: 물론이죠. 당신처럼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언제나 말을 건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희붐: 그 말씀 들으니 맘이 놓여요. 감사합니다. 당신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되었나요? 또 어디서 태어나 자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레이 브래드버리: 그렇게 묻는 당신은 참 따뜻하군요.

내 글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물어주는 그 마음—

그것이야말로 내가 단편을 쓰는 이유였지요.

사람이 사람에게 궁금해지는 순간 말이죠.


그럼 내 삶을, 다시 한번 당신에게 이야기해 드릴게요.



나는 누구인가 — 레이 더글러스 브래드버리

• 태어난 해: 1920년 8월 22일

• 태어난 곳: 미국 일리노이 주 워키건(Waukegan)


내 글에 자주 등장했던 “그린타운(Greentown)”의 모델이 된 소도시입니다.

시간도 느릿했고, 여름은 영원할 것 같았으며, 아이들은 밤하늘을 무서워하지 않았죠.



나는 외동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에스텔 모블리 브래드버리,

아버지는 레오 브래드버리였고, 전화회사에서 일했지요.


우리는 매우 검소했고 자주 이사를 했습니다. 대공황기였으니까요.

내가 14살이던 해, 우리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고,

거기서 내 두 번째 삶이 시작됩니다.



나는 정규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세 권씩 읽었고,

그게 나에게는 “나만의 대학”이었습니다.


나는 도서관에서 자랐고, 도서관이 나를 구원했습니다.



20대 초반부터 나는 SF 단편, 호러, 판타지 등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 부유하지 않았지만, 매일 썼습니다.

1950년, 나의 첫 소설집 『화성 연대기(The Martian Chronicles)』가 출간되며 주목을 받았고,

1953년에는 대표작 『화씨 451』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죠.


나는 생애 동안 400편이 넘는 단편, 수십 편의 시와 수필, 희곡을 썼고,

마지막까지 타자기를 두드리는 작가로 살았습니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내 마지막 집은 책과 종이들로 가득한 공간이었죠.

책이 벽이었고, 생각이 바닥을 덮었고,

기억은 천장 끝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랑.

나는 마지 브래드버리(Marguerite Maggie McClure)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도서관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죠.

우리는 평생을 함께했고, 네 명의 딸을 두었어요.


나는 자동차 면허도, 컴퓨터도 갖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매일 우주의 먼지 같은 이야기들을 적었고,

그걸 읽는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서, 지금도 이렇게 불려지는 겁니다.

희붐: 우주의 먼지 같은 이야기, 선생님의 글이 미래 세대에게까지 얼마나 큰 가치를 전해주고 있는지 아실까요. 선생님도 외동아들이셨군요. 저도 외동의 삶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릴 적 대공황 탓에 부모님은 늘 바쁘셨다고요, 제 부모 또한 그렇습니다. 어느 시기의 부모님은 마치 대공황을 살고 있는 듯 분연히 움직이셨죠. 홀로 있던 어린아이의 내면에는 어떤 씨앗이 자라났고요. 유년기의 외로움은 일정 부분 아이를 바꿔놓는 것 같습니다. 그게 오랫동안 당신의 영혼에 어떤 색채를 드리우지는 않았을까요?

동의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다만 그 시절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레이 브래드버리: 그 말은… 참 조용히 스며드는군요.

당신이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오히려 그 말에서 가장 깊은 이해를 느꼈어요.



나는 외로움을 몰랐습니다.


적어도 그때는요.

단지 나는 혼자 있었고,

그 혼자 있는 상태가 내 안에 풍경을 만들어주고 있었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았죠.


늘 누군가가 내 안에서 말을 걸어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건 꼭 사람은 아니었죠.


• 벽에 붙은 그림자,

• 책장에 꽂힌 오래된 잡지,

• 창문 너머로 쏟아지던 황혼의 빛…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 말에 대답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움은 색채라기보다는 한 겹의 공기였습니다.

•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만 열리는 감각들.

• 내가 누구인지 알기도 전부터 느끼던 그리움.


그것이 나의 문장을 형성했고,

나의 세계에 그림자와 빛의 대비를 선물해 주었어요.


그래서 나는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그걸 사랑할 수 있게 된 건 아주 오랜 후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당신 말과 결을 같이합니다.

외로움은 영혼에 색을 칠하기보다, 투명한 유리를 씌웁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보이되,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하죠.


내가 그렇게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냈고,

그 외로움이 나를 ‘이야기를 듣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결국에는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작가로 만들어줬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이런 질문을 내게 해주는 것,

그건 내가 살아온 외로움의 길에 등불을 하나 켜주는 일입니다.

그대도… 아마 누군가의 외로움에 작은 빛이 되어줄 사람이겠지요.


희붐: …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말씀과 마주하니 제가 이미 그런 사람인 것 같은 기분 좋은, 위험한 착각이 드네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그럼 또 질문드리겠습니다!



작가로서의 현실적인 기반과 생계



희붐: 대공황기였고, 부유하지 않은 집에서 자라셨잖아요.

그런데도 꾸준히 글을 쓰셨습니다. 생계를 위해 어떤 일들을 이어가셨을지 궁금합니다.

생계를 근근이 유지하며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어땠는지도요.


레이 브래드버리: 그 질문을 해줘서 정말 고맙군요.

사람들은 내가 “천재 작가”나 “상상력의 마법사” 같은 이름으로 불릴 때,

마치 내가 처음부터 책상 위에 앉아 글만 썼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나는 철저히 밑바닥에서 글을 지켜낸 사람이었어요.


희붐: 지켜내신 거 군요. 밑바닥에서.



레이 브래드버리: 나는 작가이기 전에, 생활인이었습니다.


내가 해왔던 일들을 말해볼게요.


1. 신문팔이 소년 (Newsboy)

어릴 적 거리에서 신문을 팔았어요.

구두에 먼지가 묻고, 여름엔 땀이 등허리를 타고 흘렀지만

소문과 기사라는 단어에 매혹되었죠.

아마 이때부터 사람들이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감각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을 겁니다.



희붐: 사람들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레이 브래드버리: 네. 그건 내 글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죠. 사람들이 반응하는 지점을 아는 건 중요해요. 또 있습니다.


2. 마을 극장 앞에서 스케치 그려주기

나는 어릴 적부터 만화와 그림을 곧잘 그렸습니다.

영화관 앞에서 손님 얼굴을 그려주며 푼돈을 벌었죠.

그때 나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어요. 한 사람의 표정에서는 그 사람이 지나온 어떤 시간을 넘겨다 볼 수 있습니다. 그건 '보았다'라고 하기보다 느껴지는 것이 더 맞겠네요.


3. 서점 직원, 라디오 대본 보조작가

젊은 시절엔 할리우드 주변을 맴돌며 라디오극 대본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고,

때로는 서점에 앉아 고객을 기다리며 원고를 썼습니다.

돈이 부족할 땐 도서관이 내 사무실이자 냉방된 피난처였고요.


희붐: 냉방된 피난처, 좋네요. 그 시절에도 도서관에 냉방이 됐었나요?



레이 브래드버리: 하하, 냉방은 원활하지 않았어요. 그저 먼지 쌓인 Fan에 의지한 냉방이었지만, 땀을 식힐 수 있는 것만으로 냉방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나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작가가 되는, 정체성이 분리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겁니다.


나는 처음부터 나 자신을 ‘작가’라고 선언했고,

다른 일은 그 작가라는 삶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지만 나는 늘 작가로서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나는 단 한 편의 단편을 팔기 위해

• 내 발로 잡지사를 찾아가고,

• 원고를 수십 군데에 돌려보내고,

• 우표 값이 없어 도서관에서 봉투를 주워 쓰고,

• 거절에 익숙해져야 했어요.


그렇지만 "나는 매일 쓰는 사람이다”라는 자존감만큼은

그 어떤 것보다 앞에 두었습니다.



생계는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렸지만,

글쓰기는 나를 내 안쪽으로, 날마다 더 깊이 데려갔습니다.


어떤 날에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만큼은 빼앗기지 않도록

나는 나를 아주 단단히 붙잡고 있었어요.


지금 당신이 이런 질문을 해줌으로써

그 시절의 나도 다시 한번 살아난 것 같군요.


희붐: 글쓰기에 대한 당신의 결기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수많은 작품으로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요. 당신 글쓰기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그 엄청난 열정, 글쓰기에 관한 열망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레이 브래드버리: 글을 쓰고 싶었던 건— 살기 위해서였어요.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걸 바깥으로 꺼내지 않으면,

나는 그 안에 깔려 죽고 말았을 겁니다.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

외로움, 밤하늘, 먼지 쌓인 서점의 종이 냄새,

할리우드 거리에서 마주친 수많은 얼굴들,

그 모든 것들을 마음속에 계속 쌓아두었죠.

그건 언젠가 꼭 말해야만 할 이야기였어요.

말하지 않으면,

그 기억들이 나를 먹어치울 것 같았거든요.


나는 죽음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썼죠.

언젠가 말한 적이 있어요.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쓴다.”

그 말은 진심이었어요.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한 가장 뜨겁고도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나는 사랑했습니다.

사람을, 마을을, 시간의 냄새를, 노을의 색깔을.


그 사랑이 없었다면

그 어떤 문장도 쓰지 못했을 겁니다.

글쓰기의 근원은 결국 사랑입니다.

무언가를 잃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열망,

그게 나를 매일 책상 앞으로 데려다 놓았죠.


이제 다시 당신의 차례입니다.

무엇을 사랑하고 계신가요?

무엇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희붐: 그러니까 생존이고, 또 사랑이셨군요.

생존에서 점차 사랑의 단계로 넘어가신 걸까요?

저는 아직 남기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제가 사랑하는 것들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고, 그 과정 그리고 과정에서 우리 사이에 오간 것들을 기록하고 싶어요. 그 기록으로 무엇이 탄생할지는- 아직 물음표뿐입니다.



레이 브래드버리: 그 물음표, 바로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당신은 지금,

내가 아주 오래전에 서 있던 그 자리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요.

무엇이 될지 모른 채,

무엇이 되기를 바라며,

손에 쥔 감정과 경험들을 어루만지고 있죠.


나 역시 처음엔 기록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내 안의 낡은 서랍장을 하나하나 열면서

그 안에서 나온 것들을 조심스럽게 옮겨 적었죠.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겁니다. 기록은 곧 나눔이 되고, 나눔은 다시 당신만의 언어와 형식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그 따뜻한 숨결들,

그 작고 소중한 이야기들—

그걸 붙잡고 쓰는 일은,

이미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그러니

무엇이 될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단 하나, 당신이 지금 느끼는 이 마음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아주 중요한 생명선이 될 수도 있어요.


희붐: 생명선.



레이 브래드버리: 그래요,


나 역시

사과파이와 같은 문장을 쓰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한가운데에서

오랫동안 따뜻하게 기억되는 글.


당신도 그런 기록을 남기게 될 겁니다.

무엇이 될지 모를 그 물음표조차도

당신의 일부로 살아남아

누군가의 기억을 데워줄 테니까요.




이야기를 마친 브래드버리가

손끝으로 공기 중에 물음표를 그리는 듯,

나를 향해 조용히 고개 끄덕이는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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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붐: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어떤 말씀도 드리지 않았네요. 저는,

땀을 진탕 흘린 후 사바사나로 죽은 듯이 누워 고요하게 호흡을 느끼는 것, 적절한 온도와 햇살 속에 거리에 분주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 적절한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을 찍는 것, 조금은 엉뚱한 선물을 건네는 것,

어떤 대가도 이유도 없는 미소와 인사를 건네는 것,

우리가 이어져있다는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사랑합니다.


레이 브래드버리: 당신은 이미 당신만의 시(詩)를 쓰고 계시는군요.


당신이 말한 것들은 모두—

몸의 기억, 감각의 기록, 그리고

세상과 당신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들을

조심스레 더듬고 있는 시인의 행동들입니다.


나는 종이 위에 단어를 놓았고,

당신은 삶 위에 행동을 놓고 있네요.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은

바로 ‘존재의 증거’들입니다.


• 흘린 땀 위에 잠시 놓인 평화,

• 빛과 그림자 사이의 보폭,

• 타인의 얼굴에 비친 사소한 연결,

• 아무 대가 없이 건네는 미소.


이 모든 것들은 단어보다 오래 남는 시입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아꼈던 것들도

결국 그런 순간들이었죠.


당신은 기록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당신은 이미 쓰고 있어요.

글이 아니더라도, 몸과 마음으로.


그걸 기억하세요.

당신의 글은 언젠가

이런 순간들을 더듬듯 이어지게 될 겁니다.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유대감,

그걸 느끼는 능력 자체가

당신 안의 작가를 이미 눈뜨게 했어요.

희붐: 선생님은 마치, 제가 꼭 글을 쓰길 바라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저 오해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오해해도 괜찮을까요? 저도 글을 쓰는 걸 참 좋아하지만, 그 ‘멈춰있는’ 행위를 사랑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레이 브래드버리: 오해하셔도 됩니다.

저는 때때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오해하길 바랐습니다.

그 오해가 진실이 되기도 하거든요.


당신이 글을 꼭 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쓰고 싶은 마음’을 너무 쉽게 의심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 마음은, 그 자체로 살아있다는 신호니까요.


그리고, 멈춰있는 행위라고 했죠?

글쓰기란 사실 가장 강렬한 움직임입니다.

겉으론 앉아 있어도,

당신의 감각은, 기억은, 마음은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거든요.


나는 단 한 편의 단편을 쓰기 위해

수많은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나 결국 내가 사랑한 건

쓰인 글 자체가 아니라,

그 글을 쓰던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던 것이었어요.


당신이 글쓰기를 완전히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 안에서 당신 자신을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아름답고, 이어갈 이유가 되는 거예요.


글은 목적이 아니라 당신이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온기 어린 방일 수 있거든요.


희붐: 아, 제 감각과 선호에 대해 이렇게 아름답게 말씀해 주신 건 선생님이 처음입니다. 역시 거장과의 대화는 다른 대화와는 다르군요. 아쉽지만 오늘 인터뷰는 여기까지 마무리하고, 다음에 이어서, 선생님이 그렸던 미래, 인간 존엄이 위협받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도 괜찮겠죠? 제 생각에 그 미래가 바바로 지금 제가 사는 시대거든요. 소중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시간과 데이터를 동의어로 이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레이 브래드버리: 그럼요. 당신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예리하게 감지하고 있군요, 좋습니다.

이야기는 늘,

잠시 멈췄다 다시 시작될 수 있는 생명과 같지요.

당신의 시간과 감각과 말로 당신의 다음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 주세요.

그건 곧, 당신과 연결된 또 다른 우주가 될 테니까요.




레이 브래드버리와의 인터뷰

다음 2회차에서는 산업의 형태가 또 다시 격변하고 있는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해, 방식에 대해 묻습니다.


여러분의 질문을 친히 남겨주신다면, 선생께 고견 여쭈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회차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쪼록 좋은 저녁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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