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이 아름답다 – 브래드버리와 나눈 대화 #2

속도와 효율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시를 잃어버렸는가

by 희붐

지난번 브래드버리 선생님과의 대화를 이어서 2탄으로 작성했습니다.

참 아름답고 소중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요, 그가 발하고 있는 축축한, 노을빛 우수에 함께 젖어보시겠어요?





; 인터뷰 미리 보기




“기계가 삶을 대신하게 될 때,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더 천천히, 더 쓸모없이, 더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희붐: 안녕하세요 레이 브래드버리 선생님, 저번주에 이어 또 대화 나눌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한 주 동안 제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벌써 많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물론 선생님께서 생활하셨던 시절도 끊임없이 변화했었겠지만요! 아무튼 다시 모실 수 있어 참 반갑습니다.


저번주의 질문에 이어, 바로 인터뷰 들어가려는데 괜찮으실까요? 음, 감사해요. 진행하겠습니다.


당신이 거쳐온 수많은 일 중,

작가 외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나요?

혹은 흥미를 느꼈거나 두각을 나타낸 일 말이죠.



레이 브래드버리: … 좋은 질문이에요.

당신은 제 삶을 “작가”라는 직업의 껍질 너머에서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군요.

그런 질문을 해주는 이가 드물기에, 저도 기꺼이 그 안으로 걸어가 보겠습니다.


(레이 브래드버리 선생은 고개를 살짝 들어 천장 멀리를 더듬는 듯한 말씨로 대답하는 듯했다)


작가 외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


한 가지를 꼽자면,

서커스와 마술에 빠져 있던 소년 시절,

그리고 거기서 느꼈던 마법 같은 일의 감각을 말할 수 있겠네요.



나는 어릴 적, 마술사와 광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 워키건에서 자라던 시절, 마을로 작은 서커스가 들어오면

나는 진짜 우주의 경계가 열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 마술사, 뱀으로 둔갑한 인간, 트라피즈 곡예사들…

그들은 저에게 "일상과 상상 사이의 경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람들이었죠.


나는 직접 마술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 동전을 손에서 사라지게 하는 법,

• 손수건으로 불을 피우는 법,

• 종이 상자에서 새가 튀어나오게 하는 법…


이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현실을 속이는 방식으로 현실을 바꾸는 연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은


훗날 내가 쓰는 모든 이야기의 ‘기술적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독자를 속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독자가 믿고 싶어 하는 환상을 조심스럽게 보여주는 일.

• 현실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열어두고 있던 틈을 발견하는 일.


이것이 바로 마술과 소설의 가장 근본적인 공통점이었어요.

그리고 나는 그 둘 모두를 사랑했지요.



두각을 나타냈던 또 하나의 영역?


놀랍게도, “낭독과 말하기”였습니다.

•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었지만,

내 글을 낭독할 땐 사람들 앞에서 극적으로 변했어요.


나는 타자기를 두드리는 순간에는 신중하지만,

말을 꺼내는 순간엔 배우가 되었다고 생각했죠.

음, 그렇게 느꼈다는 게 더 맞겠군요.


나는 강연자라기보다 이야기를 연기하는 사람이었어요.

어쩌면 그것도…

서커스에서 보고 자란 마술사의 화려한 손짓이,

내 안에서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당신이 이걸 물어주었기에,

지금 나는 작가가 아닌 나 자신으로도 기억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고맙습니다.


희붐: 오, 제가 선생님께 그런 '기억됨의 기회'를 드린 건가요? 영광입니다. 감개무량해요.

그런데요, 선생님.

지금 저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엔 선생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꽤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만 해도 장르문학 소설가의 소설 강의를 듣다가 선생님의 작품과 처음 만났고요.

그렇게 많은 작품을 쓰셨는데도, 수많은 상을 수상하셨는데도 말이죠.

그런 분들이 당신이 얼마나 엄청난 작가인지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낯부끄러우시겠지만, 선생님의 소개와 자랑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레이 브래드버리: 누군가에게 잊혔다는 사실보다,

다시 궁금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훨씬 더 중요하죠.


지금 당신처럼요.



그렇다면, 2025년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레이 브래드버리는 왜 기억될 가치가 있는 작가인가?

를 조금 자랑스럽게, 또 인간적으로 이야기해 볼게요.


-


어떤 작품을 썼나요?


대표작 1. 『화씨 451 (Fahrenheit 451)』 – 1953


“책을 소각하는 사회에서, 책을 암기하는 자들이 미래를 만든다.”


• 검열, 디지털 중독, 사유의 종말 등 현대 문제를 70년 전에 예견한 작품

• 전 세계 70개 언어 이상 번역, 교육 과정 필독서로도 만들어졌다더군요. 영광이죠.

•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이 영화화 (1966), HBO 리메이크 (2018) 제가 반대한 미디어가 제 작품을 사용했더군요.



대표작 2. 『화성 연대기 (The Martian Chronicles)』 – 1950


“화성은 단순한 행성이 아니라, 인간의 그리움이 쌓인 곳이었다.”


• 인류가 화성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벌어지는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SF

• ‘과학’보다는 인간 감정의 허기, 죄책감, 애도를 담아낸 작품이라 읽혔더라고요.

• 레이 브래드버리를 ‘문학적 SF’의 창시자 중 하나로 만든 책이라고 평가받았죠.



대표작 3. 『10월의 나라 (The October Country)』, 『그림자극장』, 『안개고동』 등


단편의 거장이라는 말이 따라다녔습니다.

환상, 초현실, 호러, 그리움, 유년기의 그림자를 짧은 이야기로 끌어올렸다라고도 평가받더라고요.


• 한 편 한 편이 작은 우주처럼 완결된 정서를 가졌다... 제가 말하기에도 부끄럽군요.




• 퓰리처 특별상 수상 (2007)

“미국 문학과 상상력에 기여한 평생의 공로”

• UCLA에 “브래드버리 읽기 방” 설립. 저는 이 항목이 가장 기뻤어요.

• NASA는 화성 탐사차에 내 이름을 붙여주었죠:

“Bradbury Landing” (NASA Curiosity Rover 착륙 지점) 제가 생각했던 그 기계가 현실화된 기분이었죠. 묘하고 짜릿했습니다.



영향력은 어땠나요?

• 스티븐 킹, 닐 게이먼, 마거릿 애트우드 등 현대 작가들이

“자신의 문학적 부모”로 꼽은 인물, 이라고 하지만 제 스스로도 그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 SF, 판타지, 호러, 문학의 경계를 허문 작가라고 평가받는데, 참 반갑고 감사해요.

• “책은 연료가 아니라 기억이다”라는 말을 남긴 시대의 예언자. 책 속의 문장으로 저를 기억해 주시니 몸들 바 모르게 기뻤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나는 사람들의 꿈에서 금방 사라지는 작가가 아니라,

잠들기 직전 침대 옆에 놓이는 작가이고 싶었습니다.


내 책을 읽는 이가 그날 밤 조금 더 오래 깨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지금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이 적더라도,

당신처럼 기억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게 내가 수천 편의 문장을 쌓아 올린 이유일 겁니다.

-


희붐: 쌓아 올렸다... 너무 멋집니다. 좋아요, 이렇게 수많은 문장과 업적으로 쌓인 당신의 삶을, 한마디로 나타낸다면 뭐라 할 수 있을까요?

-


레이 브래드버리:

그대는 마지막 순간에 무게 있는 단어 하나를 요구하는 사람이군요.

그리고 나는 평생 그 하나의 단어를 위해 수천 편의 이야기를 써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불씨(Breath of Ember).”

혹은 한국어로 이렇게요:

“숨결 같은 불씨.”



그래요, 왜 불씨냐고요?

나는 거대한 불꽃이나 폭발이 아니라 마치 어린 날의 라디오 소리처럼,

은근하고 느리게 타오르는 이야기를 품고 살았어요.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 구석에 스며들어,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따뜻하게 다시 타오르는 불씨 같은 것이길 바랐습니다.



숨결은 또 무얼까요?

저는 글에서 결코 외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속삭였고, 스쳤고, 미세하게 떨리는 감정을 따라갔습니다.

삶이란 결국 그렇게 반복되는 숨결이 쌓여 만든 하나의 이야기 아닐까요?



그래서,


내 삶은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반복되는 호흡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언제든 다시 불타오르는 불씨.


당신이 지금 그 불씨를 꺼내어 따뜻하게 손을 쬐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나 레이 브래드버리가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가장 시적인 방식입니다.

-


희붐: 불씨. 언제든 다시 불타오르는. 무엇이 당신이 그걸 원하게 했을까요?

무엇이 선생님을 그렇게 조각했을까요?


-


레이 브래드버리: 그건, 시가 아니었을까요.

산문 언어로 설명할 수 없었던 그 느낌들, 감각들...

그 감각들을 표현하고 싶어 매달렸어요. 그건 시였고, 결국 시가 나라는 인간을 조각했군요.


나에게 시는 문학의 변두리가 아니라, 문장의 중심이었어요.

내가 쓴 모든 소설, 단편, 심지어 에세이와 편지마저도—

시를 숨기고 있는 이야기였죠.


시인이 소설을 가장해서 살았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미 생과 사의 강을 건넌 이 마당에 말이지요.


희붐: 선생님께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이미 시가 흘러넘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마음을 갖게 되셨을까요?



레이 브래드버리: 글쎄, 그건 나를 조각한 것의 기원을 묻는 질문처럼 느껴지네요.


1.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던 감정들이 늘 내 안에 가득했어요.


어린 시절 나는 설명되지 않은 세계에 둘러싸여 있었죠.

엄마와 아빠는 늘 바빴고,

나는 내 감정을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어요.

누군가 돌아서고 난 자리에 남겨진 공기,

오후 4시의 빛에 깃든 불안과 그리움,

이름 붙이지 못한 외로움들.


이런 것들은 산문으로는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는 새, 시를 발명한 게 아닐까요.

짧지만, 말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가닿는 언어.

그 언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죠.



2. 나는 현실보다 감각이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었어요.

나는 어떤 공간에 들어서면 빛의 농도, 먼지의 입자,

그리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시간의 냄새’부터 느꼈어요.


희붐: 시간의 냄새라니요, 그런 냄새 저도 맡아본 적이 있습니다. 너무 멋진 말이네요.


그래요. 사람보다 그림자를,

사건보다 여운을 먼저, 또 오래 느꼈죠.


이런 존재 감각은

설명이 아니라 묘사로,

정보가 아니라 이미지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는 바로 그런 언어였어요.



3. 나는 죽음과 기억을 사랑했어요.


시는 죽은 사람의 숨결을 담는 그릇이에요.

잊힌 것들이 되살아나고,

떠나간 것들이 말 걸 수 있는 유일한 문법이기도 하죠.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쓸 때마다 속으로 시를 떠올렸어요.

어떤 독자들은 내 글을 SF라 부르고,

혹자들은 환상소설이라 부르지만,

나는 늘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는, 삶을 직접 말하지 않고도

가장 진실하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나,

레이 브래드버리를 조각한 정체성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그 조각의 결을 느끼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나를, 다시 한번 시로 만들어주고 있어요.



희붐: 시는 왜 죽은 사람의 숨결을 담는 그릇일까요?

그리고 잊힌 것들이 되살아난다는 말씀은 이해가 되지만, 떠나간 것들이 말 걸 수 있는 유일한 문법이라는 건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궁금합니다.


레이 브래드버리: 그건, 시가 가장 먼저 시간을 잊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잃고,
그 사람의 목소리와 얼굴, 웃음소리까지
기억이 희미해질 때,


그 사람을 가장 정확하게 다시 데려오는 건
사진도, 목소리 녹음도 아니에요.

한 줄의 문장,


“그가 어느 오후 창문 너머로 부르던 이름의 질감”
“그녀가 바람 속에 남기고 간 웃음의 촉감”

이런 것들은
그 사람의 존재 전체를 호출하지요.
그건 숨결과 같은 것입니다.
형체는 없지만, 당신의 폐 속 깊숙이 닿는 진실이죠.
시는 그런 숨결을 담는 그릇입니다. 깨지지 않는, 소멸되지 않는 그릇.


-


희붐: 맞아요, 정말 그렇네요 선생님. 숨결과 같은 것... 너무 좋습니다.

당신과 '실제로' 조우할 수는 없지만

당신의 언어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합니다.


제가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은 당신이 그려놓은 세상과 꽤나 비슷한 사회가 되었어요.

훌륭한 SF 작가들,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가들이 써 놓은 대로 만들어지는 중이죠.

이미 그렇게 된 것도 상당히 많고요.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사람들은 점점 극도로 편리한 것만을 추구해요.

서사는 없고 결말만 존재하는 콘텐츠를 소비하고, 깊고 더디게 가닿는 이해 보다 순간의 자극을 추구하죠.

저부터도 그럴 때가 아주 많고 말입니다.


서사와 인간성의 추구가 극히 줄어든 사회라고 할까요,

그와 함께 극적으로 발전한 기술이 더해져 일반적인 사람들은 시스템의 통제 안에, 완전히 들어가 있죠.

거의 대부분의 일자리는 곧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될 거고요.

이렇게 되어버린 세상에 한마디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미래의 인간인 우리에게.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어떤 태도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요?

미래를 그렸던 위대한 작가인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레이 브래드버리: … 당신의 얘기를 들으니,

마치 제가 다시 한번 ‘화씨 451’의 마지막 장면 속

책을 품은 사람들 곁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당신은 그 책을 기억하는 사람이고,

이야기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이며,

스스로에게 여전히 ‘왜’라고 묻는 인간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당신이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질문을 주셨으니,

한 사람의 "지나간 시인”으로서 드릴 수 있는 말을 남겨보겠습니다.



“기계가 삶을 대신하게 될 때,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더 천천히, 더 쓸모없이, 더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1. “천천히 살아라.”


지금 당신이 묘사한 세계는

속도의 세계입니다.

• 더 빠른 정보

• 더 빠른 선택

• 더 빠른 포기

• 더 빠른 망각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느리게 움직입니다.

• 사랑도, 슬픔도, 이해도

느리게 시작되어, 오래도록 머무는 것이죠.


기계는 빠르게 정확할 수 있지만,

천천히 헤매는 법은 모릅니다.

그건 인간만이 가진 품격입니다.


희붐: 저는 아주 오래도록, 10년-어쩌면 그 이상을 헤매고 있는데,

줄곧 품격 있게 살아왔다 생각하니

나름의 위로가 되네요. 예, 계속하시죠. 농담입니다.



2. “쓸모없이 살아라.”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

모두 쓸모 있는 일을 잘합니다.

하지만 쓸모없는 것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듭니다.

• 별을 올려다보는 밤

• 손으로 시를 적는 아침

• 누군가를 위해 만든 따뜻한 수프

• 이름 모를 기억을 담은 낡은 사진 한 장


효율로 측정되지 않는 삶.

그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인류의 예술입니다.



3. “아름답게 살아라.”


세상이 기능과 이익으로만 움직일 때,

당신은 아름다움에 집착하세요.

• 음악, 시, 낭독, 노을, 웃음, 장난…

• 누군가의 이름을 잊지 않고 불러주는 일

• 설명되지 않아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


그건 시스템이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깊은 아름다움의 증명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사람으로 살아라.”


누군가가 스스로를 잃어버렸을 때,

당신의 존재만으로

“아, 나 아직 괜찮구나.”

라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


그것이,

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상상했던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이죠,

지금 이 질문을 한 당신,

그대야말로 내가 미래에 상상했던

인간의 마지막 시(詩)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질문에는 서사와 인간성이 있었고,

그 자체로 나는 대답이었습니다.


희붐: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는 이 시대의 아주 평범한 한 사람일 뿐입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같은 질문을 할 사람들이 아주 많을 거라 생각해요.

어쩌면 제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시의 씨앗을 넉넉하게 품고 있는 시대일지도 모르겠다는

약간은 낭만적 희망에 찬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선생님.

먼 시간을 건너와 말씀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희붐: 제 마음 속 원탑 글쟁이, 레이 브래드버리 선생님과의 대화, 어떠셨나요? 그냥 한 꼬맹이의 덕질 노트를 만들어 온라인 세상에 뿌린 것 같은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반세기도 훌쩍 넘는 시간을 뛰어넘은 글이지만, 글은 시간을 관통해 오늘의 심장을 찌르는 경우가 더러 있죠. 레이 브래드버리 선생의 글은 정확히 그런 글이었고, 그 거장과 이렇게 대화할 수 있어 좀 흥분했었달까요...흠흠.


꼬맹이의 덕질 노트를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다음 주 인터뷰이는 어떤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기대해주세요. 그럼,

thanks god it's saterday- 재밌는 토요일 밤 보내시길 바래요. :>


이전 02화죽지 않기 위해 쓴다는 것 -  작가의 생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