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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붐 Jul 23. 2022

오로빌에 부치는 마지막 회신 3-1

단, 오로빌

#3 단, 오로빌


 현은 다음날부터 곧장 인터넷 서칭을 시작했고, ‘인여꿈’, ‘인도 여행을 꿈꾸며..’라는 다소 아련한 이름의 카페에 가입했다. 무려 회원 수 10만여 명에 달하는 거대 카페였다. 인도 여행 팁이라든지, 거대한 인도의 지역 별 여행자들이 모인 게시판이 활발했다. 또 하나 특이한 게시판이 있었는데, ‘현상수배’라는 이름의 게시판이었다. 여행 중 절도나 추행 등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수배하는 공간인가 싶었는데, 게시판 설명에는 ‘보고 싶어요!’라는 글이 있었다. 그러니까, 인도 여행 중에 만났으나 서로에 대한 일말의 정보도 주고받지 못한 채 흩어진 사람들이 추억 속의 사람을 찾는 게시판이었다.


‘바라나시의 강가 카페에서 만났던 파란 머리 여행자분을 찾습니다, 타지마할 앞에서 반바지 위에 입을 바지를 빌려준 채 사라진 그분을, 갠지스 강가 5구역에서 만났던 제주에서 공방을 한다던… 사람을 찾는 글로 가득했다. 차라리 J가 인도에서 사라진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상 수배라도 할 엄두가 날 테니까. 무엇이라도, 시도라도 해볼 수 있었을 테니까. J는 여전히, 아니 이미 바닷속에서 창백한 얼굴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불어 터져있을 것이었다. 현은 화면에서 고개를 돌려 애먼 한숨을 뱉더니 고개를 몇 차례 흔들고 다시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카페에서 ‘오로빌리언’이 되는 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오로빌에 대한 정보를 수집 하면서도, 하루에 몇 번씩은 현상수배 게시판에 들어갔고  찾을 수 없는 누군가를 찾는 이들의 헛헛함에서 어떤 종류의 안정감을 받았다. ‘모든 건 거기 있다 이내 없어진다.’


현은 오로빌을 매개로 한 그룹을 만들었고, 그룹의 인원은 아주 천천히 늘어났다. 

실제 인도에 갈 것이며, 단기간 살거나 오로빌 장기 거주 비자로 조금 더 살거나 ‘뉴커머’로써 아예 오로빌 사회에 속해 ‘오로빌리언’이 되거나 하는 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현은 인여꿈 카페와 별개로 소규모 그룹 채팅을 만들었다.

카페 회원에 비해 멤버 수는 극히 적었지만 무언가를 도모하기엔 최적의 수였다. Dan, 반얀트리, purify, 그리고 wisdom 까지 네 명이 모였다.


채팅방에 모인 네 명은 그럭저럭 죽이 잘 맞았고, 어디서 구했는지 재치있고 웃긴 사진을 뿜어내다시피 하는 Dan과 특히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현은 Dan이 영어 이름 Daniel의 Dan일 것만 같았고, 해괴망측한 사진을 많이 가져오는 것으로 짐작하건데 헤비 트위터리안일 것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반얀트리는 정직한 한글을 사용한 닉네임부터, ‘고기는 막내가 구워야지’ 하는 식의 위계질서가 각인된 발언과 어딘지 딱딱한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꽤나 연배가 있을 수도 있어 보였다. purify는 닉네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캐릭터를 지녔는데, 채팅방에서 무언가 논란의 여지가 움틀 즈음 나타나 어딘지 우수에 가득 찬 것 같은 말을 늘어놓고 사라지는 식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한동안 조용하다가 멤버들 사이에 진보와 보수 정당을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는 즈음, 


‘아, 오늘은 그래도 미세먼지가 없는 하늘을 보니 우리나라도 그나마 살만한 곳이란 생각이 들어서 산책을 했거든요. 꽃도 피고 귀여운 된장 색 푸들도 봤는데 멀리서 볼 때는 몰랐거든요, 가까이 다가올수록 엄청 큰 거예요. 그렇게 큰 푸들은 처음 봐서 계속 쳐다보면서 걷다가 전봇대에 부딪혔는데 안경에서 우지끈 소리가 났어요. 안경 알이 튀어나오고 금이 갔더라고요. 맑은 하늘에 기분이 좋아 산책까지 나섰는데 산책 덕에 세상을 보는 창에 금이 갔어요. 세상을 나아지게 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이런 식으로 마침표가 찍히는 것 같아요. 님들은 오늘 잘 보냈나요’ 

같은 식의 매우 김빠지는 얘기를 잘 하는 사람으로, 사람들의 맥을 빼놓음으로 분위기를 전환시켰고 그건 그 나름대로 purify, 정화 작용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마치 미드 프렌즈의 ‘로스’ 같다고 할까. 그리고 wisdom, 현 자신 까지 모두 오로빌 행을 잠정적으로 결정한 사람들 이었고, 같은 방향을 공유하고있는 이들이 가까워지는 데에 이렇다 할 걸림돌은 없었다.


‘인여꿈’의 오로빌 소그룹 첫 정모 장소는 서촌 골목에 자리 잡은 ‘그 사직동 가게’라는 차도 팔고, 커리도 파는 집으로 정해졌다. 정모를 하기에는 작은 가게였지만, 오로빌 그룹 역시 아주 작았기에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가는 길에 현은 어떤 사람들이 나타날지 몹시 궁금했다. 도대체 purify는 어떤 사람일까. 세상을 항상 우수에 차 바라보는 듯한 그의 시선을 따라가자면 조금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인 듯했고, Dan은 유머감각이 뛰어난 다니엘 이란 이름의 잘 생긴 청년일 것 같았다. 반얀트리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는데, 몇 주간 채팅을 한 결과 각인된 그에 대한 느낌이라는 것은 두 음절로 표현될 수 있었다. 꼰 대. 아주 불쾌할 정도의 부류는 아니었지만 직장 상사로 만났다면 삼십분 걸러 어처구니없는 헛웃음을 짓게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어느새 경복궁역에 다다랐고, 네시였다.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은 다섯시였다. 


괜히 설레발치며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버린 것이다. 현은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여름의 향기를 맡으며 삼바 리듬의 핑크마티니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서촌을 찾았을 때는 가을이었고, J와 함께였다. 군대에 다녀온 사이에도 서촌은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제대 이후 현은 몸 관리를 한답시고 대부분의 시간 집 혹은 집 근방을 벗어나지 않으며 스스로를 감금 했기에 오랜만에 찾아온 서촌 일대를 돌아다니며 몸의 무게가 반쯤 줄어든 듯 가벼운 기분이 됐다. 여름이 코앞까지 왔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메쉬소재의 구멍이 송송 뚫린 신발 사이사이로 달큰한 바람이 스치는 듯했다. 아무것도 더 나오지 않을 것 같이 생긴 길을 따라 올라가자 작고 허름한 간판에 ‘그 사직동 가게’라고 쓰여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인센스 스틱 냄새와 짜이와 커리의 향이 뒤섞인, 약간의 모래 냄새도 나는 듯한 낯선 동시에 익숙하고 정겨운 향기가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약속 시간까지는 삼십분 정도가 남았으므로 현은 가게 구석의 티베트 장식 아래에 앉아 짜이를 주문했다. 가게 안에는 일찍 일을 마친 듯한 회사원들이 있었고 혼자 식사를 하는 사람도, 현과 같이 홀로 짜이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카페 멤버들 여럿이 약속 보다 먼저 도착해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채팅창과 가게 안의 사람들을 번갈아 본 결과 폰을 들고 만지작거리는 타이밍이 달랐다. 다섯시가 되어 갈 수록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인여꿈 멤버들이 가게를 다 차지할 수 있을 것이기에 조금 들뜬 현은 채팅창을 열었다. 


‘이대로라면 가게에 우리들 밖에 없을 것 같아요. 다들 나가고 있네요’ 조금 전까지 현과 함께 설레발을 치던 반얀트리와 purify는 웬일인지 조용했다. Dan은 오래전부터 아무 말이 없었다. 다섯시가 다 되어가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단체로 바람 맞추는 건가,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쎄한 기분이 엄습했다. 아니야, 기다려보자. 역시 오지 않았다. 이미 다 식고 바닥이 드러나가는 짜이를 한입에 들이켰다. 괜스레 울적해져 커리나 먹고 돌아가야지 싶었다. 순간 잔잔한 티베트 음악이 흐르던 가게 내부에 아이폰 알람음이 울려 퍼졌다. 구석에 앉아있던 흰 티에 검은 폰트로 Nirvana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여자가 졸고 있었는지 필요 이상으로 화들짝 놀래며 자명종 시계를 두드려 끄듯 핸드폰을 마구 두드려 누르고는 침을 닦으려 손등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우스꽝스런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현은 가까스로 참았다. 밴드 너바나를 생각하고 입은 것인지 ‘열반’을 뜻하는 Nirvana를 생각해 입은 것인지 모를 그 티셔츠의 여자는 핸드폰을 심각하게 들여다 보더니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무심코 여자 쪽으로 시선을 돌린 현과 눈이 마주친 순간 너바나의 눈가는 아주 짧은 찰나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편이었던 현의 표정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둘은 즉각적으로 엉거주춤 목례를 했다. “아, 그..” “네..” “안녕하세요” “네, 댄 님?” “아, 단이에요. 그 외국 이름 댄 말고 단.” 단은 모음과 자음을 똑바로 길게 발음하며 강조했다. “아아 단, 네 단 반가워요. 저 위즈덤..!” 

단과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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