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다원검사
잠잘 때 호흡이, 저거 봐요. -뒤쪽 대각선 위에 달린 모니터를 가리킨다- 저게, 올라간 건 들숨, 내려간 건 날숨이에요. 아주, 이렇게 말하면 좀 뭐 하지만, 난장판이죠?
지금껏 30년 조금 넘게 살아오며 코를 곤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물론 거나하게 술에 취했을 때는 그 뭐냐, 전동드릴 비슷하게 골긴 하는 것 같았지만. 그리고 2019년 즈음 2년 간 사용한 핏빗(Fitbeat) 스마트 와치에도 수면에 대한 항목에선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최근 폰으로 굿슬립이라는 호흡 소리로 수면을 트래킹 하는 어플에서도 수면 중 호흡이 굉장히 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상했던 건 다른 사람들의 평균 수면과 달리 나의 잠은 얕은 수면이 90프로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렘수면과 깊은 수면은 물에 손가락 담그듯이 있는 둥 마는 둥 있을 뿐.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수면 어플, 스마트와치는 모두 수면 트래킹 수준 미달이었다.
그래서 굳이 강 건너 남쪽의 이비인후과, 신경과, 정신과적 진료까지 총체적 수면 진료가 가능해 보이는(?) 수면센터에 방문해 수면다원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를 들으러 다녀온 참이다.
의사는 수면무호흡의 정도를 이야기하며 체크리스트에서 10~15점 사이면 수면무호흡이 꽤 있는 편이라 진단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점수는 21점 이라며, 아주 중증수면무호흡이라고 덧붙였다.
MS 확진 이후 비교적 잦았던 병원 방문으로 -벌써 10년이 머지 않았다- 자칫 물렁물렁하게 보였다가는 현 상태보다 더욱 증상을 부각해 각종 치료를 치렁치렁 매달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최대한 건조함을 유지하며 반응했으나 의사가 모니터에 띄워준 다른 내원자의 수면 그래프를 비교하며 보고 있자니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지난 오랜 시간 동안 하루 평균 5~6시간을 잤는데, 잠을 잔 후 눈뜨며 ‘개운하다’ 느껴본 적은 10년이 넘는 시절동안 한 손에 꼽을 정도다. 농이 아니라 명료한 궁서체로. 도대체 수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정말 어릴 적에 느꼈던 좋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새싹이 피어나는 듯한 생기, 그 비스름한 느낌이라도 느껴볼 수나 있을까 싶을 지경이었다. 나는 제가 모시던 왕을 죽인 맥베스도 아닌데 내 잠을 반 즈음 죽여 빈사 상태로 만든 게 대체 무엇일까 늘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알게 됐다.
내 구강구조는 혀 안쪽이 크고 -쓸 데 없이-두꺼운 편인데 정자세로 반듯하게 몸을 뉘었을 때 혀가 뒤쪽 아래로 쳐지며 기도를 막는다고 했다. 그렇구나. 지금껏 평상시에 코를 골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 굉장한, 개 착각이었다. 수면을 기록한 영상 속의 나는 명명백백히 코를 골고 있었다. 드르렁드르렁 우렁찬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 위험하게- 혀 하부에 의해 막힌 얄따란 구멍 사이로 희미하게 부르릅부르릅 숨 쉬고 있었다. 의사는 이런 상황에서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들기라도 한다면 아주 위험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는 건조한 평정의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는 게 무색하도록 고개를 평소 보다 3배 정도 빠르게 몹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은 이런 것이었는데,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죠? 그럴 수밖에 없어요. 뇌가 두가지 태도를 취하고 있는 거예요.
“난 이제 다 이완시키고 잘 거야” 하는데 산소가 제대로 들어오질 않아요.
“이대로라면 산소가 부족해서 위험할 수도 있어 깨워야 해” 계속 싸우는 거예요. 그렇게 두 태도가 끊임없이 충돌하는데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 이럴 때 수면제의 힘을 빌려 몸을 아주 잠재워 버린다면 호흡곤란으로 질식할 수도 있다며, 양압기 치료를 권했다. 듣자하니 외력을 이용해 산소를 기도애 밀어 넣어버리는 기계라는데, 도움이 될 것도 같고 불편해서 잠에 들 수는 있을까 싶기도 하다. 다만 기분만은 10년 넘게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마침내 푼 듯 경쾌했다.
지난 15년이 훌쩍 넘는 시간 늘 피곤했다. 운동을 격하게 한 뒤에도 좀처럼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40킬로미터 행군 이후에도 쓰러지듯 잠들었으나 깊은 잠을 이루진 못했다. 그러니 좋은 수면을 하려는 거의 모든 시도는 헛발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한 층 더 마땅치 않은 건, 너무 오랜 시간 ’개운한 수면‘을 만나지 못하다 보니 좋은 수면이란 것 자체가 어떤 모양새를 했는지 조차기억이 가물했다는 것이다. 잠을 ’잘 만큼 잤다 ‘고 느끼던 날에도 피로와 함께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몹시 대부분 피로에 쪄들어 스스로가 제정신인지, 왜 뿌연 안개 속에 있는 듯 한지, 도대체 왜 이런 건지, 또 왜 매일 졸린 것인지 출구도 없고 진절머리나는 미로 속을 헤매는 상태였는데 그 답을 찾은 것이다. 이제서야.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뒤늦게.
다음 주부터 하게 될 양압기 치료가 지독하게 기대된다. 치료 자체보다는, 거의 반 평생 만에 다시 만날 수도 있을 ‘잠 다운 잠’이 7년 동안 땅 속에 묻혀있었으나 내일 나갈 예정인 매미라도 된 듯 가슴 벅차게 기다려진다. 그 간의 삶은 너무 많은 순간 물에 흠뻑 젖어 바닥을 질질 끌고 다니는 물걸레 같았기에.
진료의 마지막 즈음 의사가 덧붙이듯 흘린 말이 뇌리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건 환자분이 생활 습관이나 뭘 잘못해서는 아니에요. 유전 영향이 대부분이지“ 아. 유전.
즉각 떠오른 것은 이른 아침 늘 먼저 잠에서 깨어있는 아버지. 점심 즈음이면 늘 본인의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졸고 있던, 스마트폰을 든 채 졸고 있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고 늘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 산으로 나가시던 할아버지 -80이 훌쩍 넘은 지금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도 떠올랐다. 이들이 지금껏 살아온 세월이 지나치게 무거웠을 것 같아서, 너무 많은 순간 물에 젖은 솜이불을 껴안은 채 살아왔을 것 같아서, 아버지가 그렇게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작은 부상이 좀처럼 쉬이 낫지 않는 이유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내 삶이 왜 그런 모양이었는지, 왜 삐걱댈 수밖에 없었는지, 근본적인 이유까지 너무 알겠어서 잔뜩 적신 헝겊을 몽땅 짜낸 듯 얼얼하게 개운하고 헛헛했다.
모든 원인은 수면에 있었다니 그리고 그건 단지, 유전이라니.
음.. 뒷맛이 떨떠름한 은단 맛 사탕을 먹은 듯 하다.
비가 쏟아지는 창 밖을 보며 모든 어른의 공통 매크로, ‘건강이 최고다’, ‘건강만 해라’ 같은 말이 너무나 간단한 것으로 생각 됐지만 사실 그건 전혀 간단하지 않으며 문제가 생길 시 그 원인을 파악하기도 퍽 어렵다는 생각에 골똘해지는 저녁이다. 그냥, 가끔 내 속에서 흡사 시바신이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쏟아지는 이 비가 다 염산이어서 모든 게 녹아 없어졌으면 싶다. 너무 오래, 끈질기게 괴로운 내 자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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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많이 해도, 피곤해도 단잠에 들지 못하는, 수면에 문제 있는 분들은 수면다원검사.. 적극 권하고싶다.
실비처리도 되어 만 삼천원 정도 밖에 하지 않는다. 시설은 3성급 호텔 정도 되는 곳에서 하룻밤 관찰 당하며 자는 것이다. 금액은 이건 뭐, 동남아 게스트하우스 수준. 무엇보다, 잠이 없는 삶은 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