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숲으로 갈 수 있을까?
내가 성인이 되면서 일을 안 하고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상상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세상의 많은 부분을 누릴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노동은 필수이며 그 대가로 소득을 일으켜야 한다고 맹신해왔다. 이따금 노동이 피로해질 때면 자본 소득을 갖기 전까지만 노동을 통해 소득을 창출하자며 스스로를 다독거리곤 했고 그것이 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며 당연한게 당연하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나의 시선을 끌었던 책들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벌 수 있는 이야기가 대부분 이었는데 이 책은 최소한의 소득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사례를 들려준다. 어떻게 하면 최소의 금액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냐는 실용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욕구와 방향과 강도를 정확하게 알아낸 뒤, 진짜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뾰족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삶은 생각보다 돈이 들지 않다는 실제 사례를 담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전에 <최소비용으로 숲에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 5가지! > 혹은 < 월든처럼 살기 위한 방법 3가지> 같은 자극적인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을 초지일관 처음부터 끝까지 본질적인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서울대 졸업 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저자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은 교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돌연 미국의 시골로 들어가서 살고있는 다소 무모해보이는 이야기에 내가 이렇게 공명할 줄은 몰랐다
명확한 계획도 준비도 없이 한 가족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국 시골로 향했다. 가진 것을 털어 허름한 시골집과 너른 땅을 마련한 그들은 실험하듯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여름이면 블랙베리를 따고 밀알을 즉석에서 갈아 빵을 만드는 삶을. 벌써 7년째, 그들은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삶의 지혜를 손수 깨닫고 있다. 자본주의를 완전히 떠나지 않고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책 뒤편에 나온 소개 글이다. 아이 없는 딩크족 혹은 성인이 된 아이를 독립시킨 노부부가 <월든> 혹은 <미나리> 속에 나올 것 같은 장소에서 살아가는 에세이 일 거라 짐작했었다. 1845년부터 1847년까지 약 3년 동안 짧고 굵게 그리고 홀로 청순 간소한 생활을 영위했던 월든도 참 대단하다 생각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초등학생을 포함한 4인 가족을 이끌고 야생 채집과 일주일에 2일 정도 빵을 팔고 또 유료 뉴스레터를 운영하면서 미국 허름한 시골집에서 무려 7년 동안 살고 있다.
다시 말해, 나에게 저자는 월든보다 더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고 그런 저자의 생각을 담은 이 책을 읽으며 정말 많은 부분에 밑줄을 그었던 것 같다. 그 중에 가장 인상깊은 몇 가지를 꼽자면 아래와 같다.
저자의 농작물을 먹는 사슴이 죽이고 싶은 만큼 미운 감정이 싫어 야생 블랙베리를 채집하는 삶을 선택한다. 너무나도 수고로운 야생 채집을 하다보니 돈주고 사먹는 모든 음식들이 다 감사하다는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소위 말하는 나쁜 음식, 불량식품, 가공식품이나 패스트푸드 등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던 예전보다 나쁜 음식을 먹는 일 자체가 크게 줄었는데 이를 돌아보며 저자는 무언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내가 그것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말해준다고 말한다.
숲 속에 산다고 해서 농사를 짓지 않는다. 왜냐하면 농사를 짓게 되면 정작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숲속에 살면서도 자본주의가 좋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이 참 인상 깊었다.
평범한 개인이 아무리 덜 쓴다 한들 삶을 충만하게 하는 일만으로 채워진 일상을 살 수 있게 해준 것은 인류역사상 자본주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는 좋아하는 일을 할 시간이 있다. 책 읽고, 글 쓰고, 가족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당장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자본주의의 엄청난 생산성이 무르익기 전, 단지 굶지 않고 살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 했던 시대에는 소수의 귀족에게나 허락되었던 것이다.
자연은 빈 공간을 싫어한다. 버려진 집이나 농지는 삽시간에 잡초로 채워지고, 뚜렷한 목포가 사라진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잡생각이 떠오른다. 잡초나 잡 생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하지만 따져보면 잡초나 잡생각은 더 상위에 있는 사치에 대한 상대적인 이름이다. 농작물을 포기하면 이전에 잡초라고 뭉뚱그렸던 것 속에서 나물이며 야생 과일, 나무가 보인다. 잡생각도 마찬가지다. 일간지 1면 상단에 대문짝만하게 오를 만한 기삿감 등의 우선순위였던 것들을 포기하면 그 전에는 빨리 없애야 했던 잡생각들이 달리 보인다. 포기하면 내게 중요하고 가치 있었던 무언가가 없어지지만 결코 그 빈자리가 그대로 지속되지 않는다.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버리면 그 자리에 무언가가 반드시 채워진다고 말한다.
최근 유행하는 미니멀리즘을 보며 하루 날잡아서 싹다 버리는 인테리어에 불과하지 않은가? 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결국 내 안에 정말 중요한 것으로 채우는 것을 우선순위에 둘 때, 덜 중요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버리게 되는 결과로서의 미니멀리즘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다른 부수적인 것들은 포기할 수 있다는 말...
그러고보니 이 책을 홍보하는 문구로 인터넷, 커피, 술을 끊었다는 구절이 자주 보였는데 사실 책을 읽지 않고 저 문구만 보자면 저자가 왠지 중세시대 금욕주의자 같다는 오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는 100만 원 생활비를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맞춰진 생활방식이 아니라 되려 저자의 순수한 욕망에 따른 결과로 저자가 자신의 삶에서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기때문에 포기하게 된 생활 습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욕구, 필요를 정확하게 판단하게 되는 것, 나의 필요에 대해 착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의 가족이 정기적 소득에 매달리지 않고 자연에서 유유자적 살아가는 것이 부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용기나 대단함 때문이 아니라 가진 돈이 적다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돈이 모자라서 누리지 못하는 일들을 원하지 않고 그것 때문에 우리의 능력과 가치가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부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과 노고를 물질적으로 부족한 탓이라고 여기는 성급함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돈만 더 있다면 수고로움이 사라질 거라는 믿음, 혹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나마 없어진다면 더 혹독한 고생을 할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가 여기에서 온다.
내 현재의 고민과 질문은 돈의 유무에 따라 형태는 달라지겠지만 근본적으로 비슷할 것이다. 진짜 질문은 하나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갖지 원하는 것, 혹은 그렇기 두려워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가? 중요한 건 나를 부유하거나 가난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필요에 대해 착각하지 않는 것이다.
1.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정확하게 구분할 것
2. 자신의 욕망과 자신이 처한 환경을 수용할 것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돈에 구애받지 않은 삶을 실험적으로 살아가는 점이 놀라웠고 저자의 삶을 동경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저자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우선 벌레포비아를 아직 치료하지 못했고 나의 욕망이 꽤 세속적일 거라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저자의 실험을 계속 응원하고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