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승진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포함 총 3번의 면접을 보면서 약 한 달 후 결론적으로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통상적인 면접보다 더 길었고, 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던 분야라 심혈을 기울여 발표자료도 준비했는데 불합격되어 상실감이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합격 메일을 받고 며칠 뒤, 당시 면접관이 직접 연락해, 함께 일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나에게 딱 어울릴 것 같은 스타트업을 소개해주었다.
육아 관련 짧은 영상을 총 7개국으로 페이스북(지금은 메타)을 통해 송출하는 콘텐츠 스타트업이었다. 영상 및 미디어 쪽 일을 하다가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영상 기획, 촬영, 편집 가능자들을 채용한 다음, 육아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결혼 이주 여성에게 영상의 번역을 맡겨, 일주일에 2~3개의 영상을 업로드하는 약 1년 남짓한 소규모 스타트업이었다. 송출로 인한 트래픽을 통해 이따금 현물 협찬이나 광고수익 그리고 B2B 브랜디드 영상을 외주 받아 제작하기도 했다.
아시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해마다 그리고 정권마다 주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가 있고, 그런 키워드에 해당하는 기업들이 신청할 수 있는 국가지원금이 달랐다. 2017년 말, 그리고 2018년 초 당시, 경력 보유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상당히 핫했다. 여성가족부 그리고 지자체에서 받을 수 있는 국가지원금을 리스트업하고 하나씩 도장깨기 하듯, 신청하는 것이 입사 후, 2주 동안 맡은 첫 업무였다.
어쨌든, 소개로 면접 자리에 간 첫날, 같이 일하자는 대표는 나보다 한두 살 많은 연쇄 창업자였다. 다음 주에 출근하라며 사용하고 싶은 컴퓨터 사양을 보내달라고 했다. 들뜬 마음으로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서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사양을 지닌 노트북을 검색해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출근 전날, 대표는 전화해서 혹시 모르니 내가 사용하던 노트북을 가져오라고 했다.
이상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지만 설명을 해주지 않는 거라 안일하게 생각하며 집에서 사용하던 노트북을 가지고 출근한 첫날, 당시 입주해있던 스타트업 보육 기관에 회사 소개를 해야 한다며 나에게 회사 소개를 하라고 했다. 집에서 사용하던 노트북을 들고 출근한 첫날, 수많은 스타트업 대표들 앞에서 회사 소개를 하게 된다. 했다. 뭐, 회사 속사정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으니, 짧고 쿨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입사 첫날이 흐르고, 입사 다음날 대표는 나를 회의실로 불러, 기혼 유자녀 여성이 대표가 된다면, 스토리텔링적으로 더위나 위할 것 없이 너무 완벽할 것이라 침을 튀기며 설득을 했다. 당시 그 대표는 내가 입사한 조직 외에 또 다른 스타트업의 대표도 병행하고 있었는데, 자신은 나에게 이 조직 대표를 위임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또 다른 조직에 몰입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 복기하면서도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닌데 당시의 나는 뭐 때문인지 대표의 말이 너무나 논리적으로 완벽하다는 착각에 빠져, 대표직을 승낙한다.
출근한 지 3일째, 인감과 인감증명서를 요청해서 회사 등기에 올리겠다고 했다. 모든 게 너무 빨랐고, 정신없었는데, 이런 게 진정한 스타트업에서 추구하는 애자일 방식인가… 아무튼. 귀신에 홀린 것처럼 입사 3일째, 회사 대표로 등재된다.
출근한 지 4일째, 대표는 나를 불러온 천 몇십만 원이 찍혀 있는 통장 잔고를 보여줬다. 그리고 한해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 말고 두 명의 여성 PD의 인건비, 그리고 촬영할 때마다 드는 진행비 그나마 결혼 이주 여성들의 통번역비는, 여성가족부의 지원금으로 퉁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출근한 지 5일째, 대표는 나를 또 회의실로 불렀다. 통장 잔고에 찍힌 오천 몇십만 원을 바닥내지 않으려면,
1. 국가지원금을 받거나
2. 영업해서 외주를 따오거나
3. 아니면 법인명으로 대출을 받아오라고 했다.
국가지원금을 열심히 신청하면서 회사소개서 만들어서 외주를 받아와야겠구나 의지를 다졌던 출근 5일 째였다.
주말이 지나, 출근 6일째, 대표는 나를 또 회의실로 불렀다.
국가지원금이나 외주는 불확실하다며 아주 확실하게 대출을 받자고 제안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나이스 하게 우회적으로 웃으며, 열심히 영업해올게요라고 받아치고 말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출근한 지 3주째 어느 날, 대표는 나를 다시 회의실로 불렀다. #tobe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