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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Aug 01. 2022

입사 다음날, 대표가 되었다_2탄

초고속 승진 그리고....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출근한 지 3주째 어느 날, 대표는 나를 다시 회의실로 불렀다.


노를 든 신부 중,  오소리 작가


법인 명의로 대출을 받자는 대표의 말에 나의 완곡한 No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판단에 “저 말고 대표님이 받아오시죠.”라고 받아친 그다음 날이었다. 내가 회의실을 들어오는 걸 보고 대표는 자기가 읽던 회사소개서를 덮고 A4 용지를 책상에 펼쳤다. 히스테릭하게 모나미 볼펜 뒤통수를 딸깍 누르며 한자로 <법인>을 갈겨썼다. 감정을 있는 대로 실어 한자를 쓰던 대표를 보고, 나는 제대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법.. 인..!! 제니퍼는 법인이라는 뜻 몰라요?”


수평적인 조직을 상징하는 나의 영어 이름이 순간 욕처럼 들렸다. 회의실을 들어오기 전만에도 입주해있던 스타트업 보육 센터장에게 보여줄 회사소개서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줄 알았던 자리였다. 거울을 보지 않고도 내 표정은 이미 정리가 되지 않아 삐꺽거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자신을 왜 사기꾼처럼 대하냐며, 자기가 뭘 어떻게 했길래 못 믿냐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법.. 인. 법적으로 인격을 지닌 기업이라는 뜻이에요. 대출을 지고 뭘 하더라도 법인이 책임을 지는 겁니다. 대표 개인 하고는 상관없어요!.”



내가 일반 회사원으로 입사하고 다음날 회사 스토리텔링을 위해 대표가 된 후,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상황이 도무지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상대방의 격한 감정을 볼 때, 저런 감정이 나올 정도면, 진짜인가? 나의 의견을 다시 검토를 해봐야 하나?라는 자동반사적인 사고 회로가 흘렀던 때다.


대표가 쥐고 있던 모나미 볼펜 꼭지를 누르는 소리는 기억하면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감정이 소용돌이쳤던 그날, 나도 대표도 얼굴이 벌게진 채 회의실을 나왔다.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스타트업 센터장에게 보여줄 회사소개서에는 우리가 얼마나 선방하고 있는지 트래픽 수를 집계해서 그래프로 그리고 있었다. 페북 기업 관리자 페이지에 들어가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쪽 어떤 연령대에 어느 지역 그리고 어느 시간대에 가장 많은 시청률이 나오는지 엑셀로 뽑아, 그래프로 만들었는데, 예쁘지 않은 모양새라, 수치를 다른 것들과 섞어야 하나, 혼자 고민하던 차였다.


그러던 와중에 불려 가서 대표와 회의실에서 30분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세상만사 다 귀찮고 도대체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지 라는 실존적인 질문이 절로 머릿속을 떠다녔다.


이틀 후에 센터장과 기타 투자 관련자들 앞에서 소개? 피칭을 해야 하는데, 마음은 이미 저 멀리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한겨울이라 6시인데 이미 깜깜해진 하늘을 등지고 퇴근하는 길, 도무지 버스를 탈 힘이 없어서 택시를 잡아 타고는 우습게도 나는 녹색창에 “법인”을 검색한다. 그리고 곧이어 “법인 대출 대표 책임”이라는 키워드로 검색 하기 시작했다. 입에서 단내가 아닌 썩은 내가 나는 것 같았다.



퇴사 D-5

출근하니 대표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메일을 보내 놓았다고 했다. 무슨 메일이냐 묻지도 않고 자리에 앉아 집에서 가져온 내 노트북을 꺼내 메일을 확인했다. 육아 쪽으로는 꽤 오래된 대기업 아*방에서 브랜디드 콘텐츠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담당자를 만나 미팅을 해보자는 내용이었다.


퇴사 D-4

더 이상 대출을 받자는 말은 하지 않는 대표지만, 계속 회사소개서가 마음에 안 든다고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전 담당자가 만들어놓은 회사소개서를 들이대며, 나에게 실망이라고 했다.


퇴사 D-3

육아 대기업 아*방은 미팅 날이 되었다. 기타 잡무를 처리하다 보니, 택시를 타도 10분정도 늦을 것 같은 시간에 출발하게 된다. 택시를 불러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렇게 10분정도 흘렀을까. 대표가 침묵을 깨고 나에게 툭 말을 건넸다 #tobe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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