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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Aug 02. 2022

입사 다음날, 대표가 되었다._ 3탄

초고속 승진, 그리고....

퇴사 D-3 

육아 대기업 아*방은 미팅 날, 기타 잡무를 처리하다 보니, 대중교통을 타고 출발하기엔 시간이 너무 애매했다. 택시를 타도 10분 정도 늦을 것 같아, 고민 없이 카카오 택시를 부른다. 택시를 불러 뒷자리에 대표와 나란히 앉았다. 며칠 전, 둘이 그렇게 얼굴을 붉힌 다음, 택시 뒷자리, 나란히 앉아있다는 것에 현실감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10분 정도 흘렀을까. 대표가 침묵을 깨고 나에게 툭 말을 건넸다.


“이렇게 피칭을 하고 투자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뭘 믿고 이러는 거예요? “



이후에 뭔가 말을 듣고 있지만, 의미로 다가오지 않고, 일종의 소리처럼 들렸다. 다시 말해, 듣고 있지만, 전혀 듣고 있지 않은 유체 이탈과 비슷한 상태에 이른다. 사람은 참으로 영물이라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지 않다는 걸 쉽게 알아챈다. 그래서인지 대표는 감정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그런 대표를 보며 택시 기사님의 내비게이션에 도착시간을 흘끗 확인했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는데, 상대를 피할 수 없는 괴로운 상황을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심지어 구도심 어디 구석에 박혀있던 위치라, 도착지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교통 체증이 더 심해져, 도무지 언제 도착할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냥 대표님 원하시는 분 다시 채용하세요. 저는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준비했던 멘트가 아니었다. 갈등을 가장 싫어하는 나의 기질이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공간에서 갇혀 언제 벗어날지도 모르는 심리적 압박감이 증폭되며 결국 내 선에서 가장 합리적인 말을 던졌던 것 같다.

잘 모르겠다. 어제도 엊그제도 사실 “법인”의 한자를 써 내려가던 대표의 눈을 보면서도 계속 떠올렸던 멘트 같았다.

순간 대표는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렇게 억만 겁 같은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대표는 누그러진 투로 말을 건넸다.


“법인 폐쇄하시죠! 제니퍼가 없으면 못합니다. “


이 말을 듣고 내 동공이 확장되었다. 내가 그만두면, 그럼 그 밑에서 일하던 경력 보유 여성 PD 일자리를 잃는 거라고?라는 생각에, 내가 더 참아야 하나? 그런데 못하겠는데? 일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이렇게 실랑이하는 것만 없으면 좋을 텐데….

정말 세상 부질없는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멈칫거리는 나의 표정을 보더니 대표는 다시 말을 건넸다.


“아니면 다른 대표 구할 때까지만 계속하시죠”

나같이 이렇게 입사한 다음날 대표하겠다는 똥 멍청이는 없을 텐데?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못하겠고, 죄송하다는 말을 짧게 지른다. 믿기지 않겠지만, 아직도 도착시간은 한참이 남은 상황. 우리는 각자 창밖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멍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표가 다시 침묵을 깼다.


“ 미팅 안 가셔도 됩니다.”


나는 왜 때문인지!!!!!! 책임감 없어서 죽은 귀신이 접신한 듯, 이 미팅까지는 내가 마무리하겠노라 답한다.

그만두겠다고 말한 이상, 이제 대표 심기를 살필 일도, 또 내가 설사 미팅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나에게 군소리 하나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를 든 신부 중, 오소리작가


여차저차 목적지에 도착해 택시에 내려서 미팅 장소까지 걸음마와 웃는 법을 처음 배운 사람들처럼 삐거덕 거리면서 고객을 만난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영업하는 제2의 인격을 불러온다. 심지어 이 미팅을 끝내면 나는 모든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공격적으로 또 더 적극적으로 고객사를 설득한다. 미팅은 매우 성공적으로 끝났고 집에 가려니 벌써 퇴근시간이 되어 있었다. 도착했을 때보다 더 많은 차들이 줄 서있었다.



그때 대표는 마치 처음 면접날 만난 것처럼 매우 예의 있게 집에 어떻게 갈 거냐 물었다. 지하철 이용한다고 답하니, 자신도 지하철을 이용해야 할 것 같다했다. 결국 매우 어색하게 지하철을 같이 탔다.

처음엔 지하철 몇 정거장만 같이 타다 안녕을 고하고 나 홀로 심신의 안정을 취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건 도대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같은 환승역을 거쳐야 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당시 내가 조금 더 멘털이 덜 나갔더라면 커피숍에서 멍을 때리는 한이 있더라도 먼저 가시라하고 나중에 출발했을 텐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역에 내려 환승 구간을 걸어가게 된다.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질인가. #tobe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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