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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Aug 02. 2022

입사 다음날, 대표가 되었다._4탄

초고속 승진.. 그리고...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질이었을까, 환승구간을 지나면 드디어 나 홀로 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갑자기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다.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대표가 눈치채지 못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척 화장실을 찾기 시작했다. 아마도 어젯밤 잠을 설치며 회사소개서를 만졌던 탓에 사무실에서 내리 들이키고, 또 미팅 때 대접받은 아메리카노 때문인 듯했다.

사람이란 게 이상해서 내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확실하게 자각하고 나니, 화장실이 급해졌다. 그 순간, 500m 뒤 화장실 싸인이 보이고 소소한 안도감과 행복감이 나를 감싸 안으려고 하는 찰나… 대표가 휙 고개를 돌려 나에게 말했다.


“저는 화장실을 다녀와야겠습니다.”
노를 든 신부 중, 오소리 작가


서로 사이좋게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이 넓고 깊은 환승구역 어디에 위치한 미지의 화장실을 다시 찾아다니는 짓이 정말 합리적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1초 정도 했다. 그리고 답했다.


“저도 가려고요.”


서로 알았다. 이미 진즉에 서로 모든 리엑션 기능이 고장 나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확실히 알았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심지어 살포시 웃으면서 “나도 화장실을 가겠다” 답하고 있는 내가 전지적 시점으로 보이며, 이런 상황에도 친절하게 말을 하고 싶은 나는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화장실을 들어갔다가, 나오니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가라고 얘기해둘 걸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시 남은 환승구간을 걷고 또 내려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둘이 갈라져야 할 지점에 다다라, 잘 가라 작별인사를 한다. 방금 전 몇 시간 동안 나의 감정의 진폭이 너무도 컸는데도, 이 순간 아무런 일 없었던 같이 걷다, 화장실도 같이 갔다, 또 잘 들어가라 말하는 그 장면이 너무 희극적이면서, 꿈만 같았다.



그날, 금요일이라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직도 뾰족하게 기억난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앞서 겪은 두어 시간 동안에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이성을 소진해서인지 나의 자초지종은 내가 생각해도 횡설수설에 가까웠다. 그런 내 말을 한참 듣던 남편은 못 참겠다는 짧은 한숨 뒤, 바로 내 말을 자르고 “그래서 그만둔 거지?”라고 물어왔다. 나는 아직도 기가 막힌데, 그걸 단 한 줄로 압축해 나에게 각인시켜주는 그에게 섭섭해지는 마음이 증폭되려는 찰나!!!! 연쇄 질문으로 집에 가기 위해 조금 남겨두었던 이성을 아예 마비시켰다.


월요일부터 안 나가도 되는 거냐?. 너 대표인데 그래도 그냥 일반 직원처럼 그만두면 끝이 맞냐? 머리가 하얘졌다.



월요일에 가서, 법인등기부등본에서 내 이름도 빼고, 또 내가 만지고 있던 소개서랑, 얘기하고 있던 업체들한테 다시 메일도 보내고 해야겠구나.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는 내가 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머릿속에 하나씩 채우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맞이한 주말, 택시 안에서 듣고 있었지만 듣지 않았던 대표의 몇 가지 말들이 신기하게 새록새록 다시 떠올랐고, 불안해졌다.


“법인도 인격체라 없애는데 절차가 복잡하고, 나에게 법인 폐쇄를 해도 몇 년간 꼬리를 따라다니고. 어쩌고저쩌고…”


그냥 빨리 모든 걸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다음 대표 뽑을 때까지만 일하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만약에 등기를 변경안 해주면, 나는 계속 이 회사와 대표와 연을 이어가야 하나? 싫었다. 법무사를 알아보려다 당시 “커아모(커리어가 아작 난 사람들)”라는 사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늘 친근한 이미지였던 변호사 한분께 메시지로 조언을 구했다.

결론은 그냥 사임의사를 표하고 그쪽에서 등기를 순수하게 변경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임 의사를 내용증명으로 보내 놓고 소송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퇴사 D-2

이렇게 피곤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무거운 몸을 끌고 출근을 한다. 대표는 자리에 없었다. 옆에 앉아있던 여성 PD분에게 멋쩍게 웃으며, 내가 내일까지만 출근하게 되었고 관련해서 내가 하던 일을 당신에게 인수인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여성 PD분은 이미 대표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듯, 놀라지 않고 짧게 알겠다 답했다. 빨리 돌아올 줄 알았던 대표는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 늦게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회의실로 다시 불렀다. #tobe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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