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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May 30. 2024

[노동해방일지 #1]  내가 했던 일

11번 이직과 1번 창업 끝에 약 2달간의 청소 노동에 대하여

채 동이 다 트지 않은 새벽, 잠실 한복판을 지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제약회사의 12층 빌딩으로 들어선다. 사회생활 1n 년 차, 수없이 많은 출근을 했지만 청소를 하기 위해 사무실 건물로 들어선 것은 처음이었다. 11번의 이직과 1번의 창업 끝에 나는 빌딩 청소 노동자로 출근했다.


청소는 크게 새벽, 아침 그리고 퇴근 청소로 나뉘었다.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끝나야 하는 새벽 청소는 6시부터 8시 30분까지, 아침 청소는 9시 30분부터 12시 40분까지, 마지막으로 퇴근 청소는 오후 2시부터 3시 30분까지였다. 


새벽 6시, 출근하자마자 반장님의 지시에 따라 지하 4층 휴게실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고등학교 때 이후 처음 입어본 유니폼이었다. 청소 구역은 한 명당 두 개 층을 맡았다. 12층 건물 중 내게 할당된 곳은 7층, 8층이었다. 8층에 기계 공조실에서 사무실까지 이동식 분리수거대를 밀며 고용한 복도를 지났다. 이른 새벽 깜깜한 사무실의 전등 스위치를 켜고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텅 빈 새벽 사무실은 왠지 모르게 쿰쿰한 냄새가 났다. 직원들이 출근하면 흔하게 맡을 수 있는 향수, 커피, 배달 음식, 담배 등이 뒤죽박죽 섞인 살아있는 자의 체취와 분명히 구분되는 냄새였다. 텅 빈 사무실 특유의 쿰쿰한 냄새는 일의 강도가 꽤 높았다고 기억하는 오래전, 내가 다니던 한 회사의 사무실 냄새와 비슷했다





이동식 분리수거대는 접이식 구루마 위에 큰 상자 서너 개를 테이프로 이어 붙인 형태였다. 분리수거를 위해 구르마 끌고 다니며 층별로 70~80개 책상 아래 놓인 개인 휴지통을 하나씩 비워냈다. 


상대적으로 양이 가장 많은 일반쓰레기, 플라스틱, 종이를 분리수거 박스에 나눠 담았다. 그리고 유리나 캔 종류는 별도 비닐봉지에 따로 담았다.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은 사무실은 이른 새벽임에도 본격적인 장마철을 맞이해 습도가 높은 편이었다. 이리저리 허리를 굽혔다 폈다 무한반복 하며 분리수거하다 보니 10분 정도만 지났는데도 등허리에 송글송글 땀이 차기 시작했다.  


사무실 내 개인 휴지통 분리수거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탕비실 쓰레기통을 비웠다. 직원들이 먹은 간식 혹은 야식 찌꺼기를 따로 모아 분리해 버렸다. 쓰레기통 분리수거를 모두 마친 뒤 버려진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보니 뒷골이 서늘해졌다. 고작 12층짜리 건물 중 고작 한 개의 탕비실, 그리고 대략 4~5시간 안에 배출된 쓰레기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건물 전체, 그리고 이 건물이 있는 거리, 도시, 전국 단위로 배출될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을 잠깐 상상해 보고 날씨가 미쳐가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쓰레기통 분리수거가 끝나고 바로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세면대, 변기를 세정제와 락스를 섞어 닦아내고 마른걸레로 물 자국을 없앴다. 세면대 한 가운데 위치한 물비누 양을 체크하고 손 휴지와 가글, 마지막으로 화장실 휴지가 충분한지 체크했다. 손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게 반짝거리는 세면대의 은빛 수도꼭지를 보며 성취감을 느꼈다.


가끔 남자 화장실 소변 대에 튀긴 소변 자국의 위치가 도무지 이해 가지 않아 한참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키가 커야 이 위치에 소변을 튀길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아무도 없을 때 소변 대 앞에 서서 발뒤꿈치를 들어 혼자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했다.



새벽 청소가 끝나면 빌딩 근처 백반집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 회사에서 청소 직원들을 위해 한 달 치를 미리 결제해 두는 식당인데 구성이 알차고 무엇보다 매일 다른 메뉴가 나왔다. 그래서인지 아침을 잘 먹지 않았던 나였지만 어느덧 밥때만 되면 자동으로 배가 꼬르륵거렸다.


밥 먹는 자리와 위치는 모두 고정이었다. 그리고 다들 딴짓은 전혀 하지 않고 밥만 먹었다. 핸드폰을 보거나 담소를 나누는 일상적인 밥상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듯한 모습에 가까웠다. 쉬는 시간은 1시간이었는데 밥 먹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 나머지 시간에 몰아쉬기 위해서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침을 먹는데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후 회사 전용 카페에 가서 커피나 과일 에이드를 주문하고 쉼터로 복귀했다. 약 40분 정도를 누워 실없이 핸드폰을 보다가 이따금 선잠에 들기도 했다. 깜박 졸다 일어나면 몸이 개운한 게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출근해서 땀 흘리며 약 100여 개가 넘는 쓰레기통을 비우고 분리수거하고 층마다 위치한 남녀 화장실 4개를 청소하고 밥도 먹고 심지어 잠도 잤는데, 고작 오전 9시 30분이라는 게 늘 놀라웠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이 시간에 출근하고 있었을 나를 떠올리며 시간은 역시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아침 청소는 새벽 청소보다 템포가 느렸다. 새벽 청소는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끝내야 했기 때문에 살짝 숨이 찰 정도의 속도로 움직였다면 아침 청소는 각 층에 위치한 화장실에서 사용한 휴지를 수거하거나 세면대와 거울에 튀긴 물기를 제거하는 것이 다였다. 이 시간은 이동 시간이 길고 단순 작업을 반복하기 때문에 의외로 정신을 딴 데 팔기 좋았다. 출근 둘째 날부터는 아침 청소를 하며 에어팟을 끼고 듣고 싶었던 팟캐스트를 들었다.  


일과 중, 가장 곤혹스러웠던 남자 화장실 청소였다. 인기척을 확인하기 위해 화장실 문에 귀까지 대고 소리를 확인했다. 분명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아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볼일을 보고 있는 남자 직원과 눈이 마주치기 일쑤였다. 아무도 없을 때도 언제 남자 직원이 들어올지 몰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청소 일을 끝낼 때까지 적응되지 않았던 건 내가 청소하고 있든 말든, 그냥 들어와 볼일을 보던 한 남자 직원이었다. 그는 세면대 물기를 훔치고 있던 나를 아랑곳해 하지 않았다. 그냥 뚜벅뚜벅 걸어와 소변기 앞에서 볼일을 보려 하는 그를 보고 후다닥 걸레를 들고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음번엔 귀찮더라도 화장실 앞에 ‘청소 중’ 표지판을 세워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남자는 여자 청소부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도 볼일을 봐야 할 정도로 생리현상이 급박한 순간이었나 궁금해졌다. 얼마나 급했으면 여자 청소부가 있는데도 바지춤을 내리고 볼일을 볼까 싶은 거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다. 나를 분명히 봤을 텐데 왜 투명 인간처럼 여길까? 청소하는 사람은 투명 인간 혹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건가? 갑자기 화가 났다. 


지금 청소일은 나의 11번째 직장이었다. 청소일을 시작하기 전 10번 퇴사하고 1번 창업했다. 왜 이렇게 번거롭게 퇴사를 자주 하나 스스로도 이해 가지 않아 이유를 고민하며 사대보험 자격득실확인서를 살펴보다 알게 된 횟수였다. 10번의 이직과 1번의 창업 사이에 단기 프리랜서로 일했던 무수한 시도도 있었다. 

대기업, 공공기관, 스타트업, 대사관, 자영업자, 비영리 기업, 영어 출강 강사 등, 산업과 직종, 업태와 업종 모두 달랐다. 퇴사 사유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도의 시작과 끝 시점에서 나의 사고 흐름은 늘 이렇게 이해했다 분노했다를 반복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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