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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May 27. 2024

패스트 라이브즈와 전생의 상관관계

[센텐스로그] 이십 년 전에 난 그 애를 너와 함께 두고 온 거야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 이미지]




고백하자면 패스트 라이브즈가 ‘전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영화를 보기 전까지 몰랐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전생’이라는 제목을 납득하기가 힘들어서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먼저, 주인공 나영 (Great Lee 분) 과 해성(유태오 분)은 어린 시절 첫사랑으로 서로를 기억하지만, 나영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조각 작품상 (작품명 -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응시) 에서 마지막 데이트를 하는 장면은 너무 작위적이다. 그 전 장면에서도 첫사랑의 감정을 깊이있게 느낄만한 전사가 없다.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12년 전 첫사랑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리적인 시차를 극복한 나영과 해성의 장거리 ‘썸’도, 한국에서 성실하게 공부한 해성이 직장에 다니며 뉴욕을 여행지로 선택하는 일도, 8천 겁의 인연을 말하기엔 충분하지 않은듯 하다.


오히려 노라에게 ‘인연’은 현재 배우자인 아서와의 관계에 더 잘 어울리는 단어다. 둘은 만남에서 결혼까지 잘 짜여진 수순을 따른 것이기에 그 과정에서 다른 누군가를 만났다고 해도 서로를 대체할 수 있었을 거라고 가정해 보지만, 배우자의 인연이라는게 어디 그러한가. 게다가 둘은 태어난 나라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 건 그레타 리의 표정, 억양, 그리고 그녀가 영화에서 뿜어내는 고유한 분위기 때문이다. 마흔이 넘은 배우에게서 열 두살 소녀의 얼굴을 보고 그레타 리를 주인공으로 낙점한 것은 셀린 송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네가 기억하는 나영이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아. (...) 근데 그 어린애는 존재했어. 네 앞에 앉아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야. 이십 년 전에 난 그 애를 너와 함께 두고 온 거야."


나영이 해성에게 하는 대사이지만, 이 말은 꼭 나영이 스스로에게 하는 것처럼 들린다. 10대엔 노벨상을, 20대엔 퓰리처상을 받고 싶다던 나영은 30대가 된 지금 무슨 상을 받고 싶냐는 질문에 가까스로 ‘토니상’ 이라고 답한다. 나영이 그리워 했던건 해성이 아니라 꿈 많던 어린 시절의 자신 아니었을까. 해성과의 헤어짐을 통해 나영이 현재에 더 충만한 시간을 살 수 있길 바란다. 지금이 다음 생의 아름다운 전생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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