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작가 Jun 01. 2024

[센텐스로그#14]  행간 다 읽었죠?

저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닿는 데로 두서없이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는 편인데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서 서로 연결되는 점에 혼자 감동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2017년 규모 5.4 포항 지진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 때문이라는 뉴스를 듣고 인간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드라마와 맥락이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식이에요. 지표면 아래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단층이 서로 충돌해서 발생하는 진동을 우리는 지진이라 부르잖아요. 이렇게 한 지역에서 일어난 지진이 수십 년 후, 전혀 예상치 못한 다른 시점에 다른 지역의 지반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 사실이 인간사와 너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오늘은 이런 식으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개의 방송 프로그램이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는 지점을 나눠보고자 해요. 우선 <연애남매>는 5쌍의 남매들이 집에 모여 연인을 찾아가는 가족 참견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입니다. 5쌍의 남매가 한 집에 머무르며 연애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지난주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출연진 중 ‘용우'라는 사람의 화법이었어요.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고 직업도 파일럿인데 무엇보다 자신과 한참 나이 차 나는 여동생을 업어 키우며 지극정성 애정을 표하는 사람이라 출연한 모든 여성에게 러브콜을 받았죠. 그리고 초반부터 ‘초아'라는 여성에게 호감을 꾸준히 표현하며 연애 프로그램인데 신혼부부 같은 캐미까지 자아냅니다. 뭐 하나 빠짐새 없는 완벽한 킹카(?)라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문제는 ‘용우'가 ‘초아'에 대한 호감이 줄고 다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연애 프로그램 나와서 사람 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 게 뭐가 문제일까 싶으시죠? 다음 ‘용우’의 화법을 제가 전사해 보았는데요. 아래와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랑 있었을 때도 좋은 감정과
약간 설렘 같은 것도 느껴져서
너에게 마치 저장이나 한 듯이 표현을 했었었는데 
표현의 방식이나 결과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는 순간이 오니까
스스로 이상하게 내가 싫더라고
솔직하게 말 하는게 맞긴 한 데
아 나도 모르겠다
헤어짐을 얘기하는 게 아니고
만남도 엄청 중요한데 나는 이런 얘기를 대화로 하는 것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옮겨 적어놓고 텍스트로 여러 번 읽고 나서야 ‘용우'의 마음을 살짝 엿볼 수 있었는데요. 영상을 처음 보고는 ‘엥? 뭐라는 거야?’ 싶더라구요. 그 순간 방송 패널 중 한 명인 코쿤이 일침을 날리죠.  

‘솔직한 게 아니라, 솔직한 척이잖아. 


아 그리고 도대체 뭐 어쩌라는 거야!’ 


그렇게 솔직하고 싶었던 ‘용우'씨는 세상 가장 솔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초아'에게 안녕을 고합니다. 그 뒤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 및 트위터에서 ‘용우 화법', ‘용우 교토식 화법’ 등의 검색어와 함께 ‘용우'의 짤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커서 이렇게 회자되나 싶습니다. 




그리고 <졸업>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요. 초반에는 대치동 일타강사가 주인공이고 실제 내용에서도 사교육과 공교육이 대립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사실상 그 둘 다 부조리함과 모순이 가득한 세계로 읽혔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부분은요. 최선어학원의 최형선 원장이 서혜진 역할의 정려원을 스카웃하려는 장면이에요. 최형선 원장의 대사는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난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나왔어요
임용고시도 어렵지 않게 패스했고 스물넷에 교편을 잡았고
마흔 살까지 학교를 아주 만족하면서 다녔어요. 
내가 원한 건 압도적인 권위 그리고 존경이었어요. 
우리 땐 선생님들의 권한이 아주 막강했거든 
내가 동경했던 건 그거였나 봐요.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는 그런 무대가 아니게 됐지 
창립자로서 마지막까지 안정적인 수입과 압도적인 
존경을 유지하면서 멋있게 은퇴하고 싶어요. 


이 대사를 들으며 ‘용우'에게 받았던 소화불량이 가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걸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꽤 세속적인 욕구를 대놓고 얘기해도 멋져 보일 수 있구나 싶었어요. 그 뿐만 아닙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준호는 고등학교 시절 과외 선생님이었던 서혜진을 짝사랑 하고 있었는데요. 국어선생님들이다보니 자신의 숨은 맥락 그리고 마음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지난 주 부터 제가 작년 여름, 약 2달간의 청소 노동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요. 이번 주는 제가 청소일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에 대한 이야기를 썼어요. 저의 청소 경험을 적는게 아니라 시작 하기 전에 상황과 당시 결심까지 의식의 흐름을 쓰다보니 필연적으로 동거인의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제가 기억하는 바를 제 입으로 쓰려니 필연적으로 제 위주로 쓰였을 경향이 무척 커서 너무 징징대는 것처럼 읽힐까봐 많이 고민되었어요. 그 모든 걸 감안하고 최대한 솔직하면서 담담하게 쓰려고 했습니다. 물론 <연애남매>의 용우가 아닌 <졸업>의 최형선 원장님과 준호를 떠올리면서 말이죠. 미처 내가 표현하지 못한 맥락까지 다 읽어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노동해방일지> 3회, 4회를 보내드려요~ 


룰루의 <노동해방일지> 구독하기


� 룰루의 <노동해방일지> 구독하기


Written by 행간을 엄청 잘 읽고 싶어하는 룰루



� JTBC 예능 <연애남매> 보기
� TVN 드라마 <졸업> 보기



� 수입의 절반 이상을 콘텐츠 결제에 쓰는 전방위 콘텐츠 덕후들의 '센텐스 로그'
� 질문, 의견, 애정, 응원... 무엇이든 댓글 대환영!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LuluLalaKimchiCheese 룰루랄라김치치즈'에 있습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말아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노동해방일지 #2] 부사장 승진과 팝업 스토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