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텐스로그] 일본 만화 <만들고 싶은 여자와 먹고 싶은 여자>
두 여자가 만났습니다. 만들고 싶은 여자 노모토와 먹고 싶은 여자 카스가. 아파트 이웃인 둘은 우연히 스친 인연으로 함께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 만화 <만들고 싶은 여자와 먹고 싶은 여자>에서 두 여자가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사이에 두고 하나씩 꺼내 놓는 사연은 어쩐지 마음을 아릿하게 하는데요. 이내 조심스럽게 그리고 살뜰하게 서로를 돌보는 두 사람의 다정함에 위로를 받고 맙니다.
예쁘고 큰 것은 아빠와 남동생에게 주어졌던 카스가의 어린 시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먹지 못했던 카스가는 한밤중 주방에서 토스트를 만들어 먹으며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맛있는 걸 이렇게 비참한 기분으로 먹어야 하는 걸까."라고요. 필사적으로 독립한 카스가는 마음껏 먹으며 진정한 자신, ‘나'로 살아가기 위해 분투합니다.
저는 닭다리 보다 닭가슴살을 좋아했습니다. 아끼는 사람에게 닭다리를 양보하는 클리셰에 공감하지 못할 정도로요. 친구들은 닭다리를 먹지 않는 절 의아해했습니다. 어느 날 저처럼 언니와 남동생을 둔 K차녀 친구가 묻더군요. “너도 닭다리 안 좋아해?”라고요. 어리둥절해하며 어떻게 알았냐고 하자 친구는 그 이유를 아냐며 도리어 되물었습니다. “우리는 닭다리를 마음껏 먹어본 적 없기 때문이야.” 그날 이후 한동안 치킨을 먹을 때면 닭다리로만 구성된 콤보 메뉴를 시켰습니다. 맛있는 걸 비참한 기분으로 먹어 본 적 있는 카스가가 또 계신가요?
입은 짧아도 노모토에게 요리는 기쁨입니다.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처럼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완전히 매료됐죠. 하지만 노모토의 뛰어난 요리 실력은 ‘좋은 아내’나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취급받기 일쑤입니다. 남자가 아닌 나를 위해 요리하는 노모토는 이런 얘길 들을 때마다 지치고 화가 납니다. “이 세상은 다수의 사람이 납득하기 위해 언제부턴가 정해진 ‘틀'이 있어서 그 외의 모양이 되는 건 용납 받지 못하나 보다.”라고 분노하면서도 노모토는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고, 쿠키 반죽을 밉니다.
노모토의 고민을 보며 먹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은근히 요리를 멀리하려는 제 마음을 마음을 들킨 것 같았습니다. 완벽한 써니 사이드 업을 굽고, 12시간마다 얼음을 얼려 시원한 음료를 만들고, 병아리콩을 불려 밥을 짓는 데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면서도 말이죠. 수십 년간 대가족 시집살이를 겪은 엄마를 보고 자란 저는, 요리를 즐기게 되면 어쩐지 부엌에 갇힐 것만 같은 두려움을 끝내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먹는 것’에 대해 각자의 사정과 바람을 갖고 있던 노모토와 카스가는 서로가 서로를 채워줄 수 있음을 알아봅니다. 나름의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사는 둘은 무척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가까워지는데요. 이 관계는 정이 가득하지만 절대로 선을 넘는 법이 없어 보는 내내 마음이 무척 편안했습니다. 이토록 다정하고 무해하게 잘 먹고, 잘 사는 여자들의 이야기라니. 완전한 PC력(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으로 무장한 안전한 이야기가 판타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흐뭇했어요.
생각해 보니 저도 요사이 잘 먹는 무해한 여자들에게 꽤 위로받고 있었습니다. 미식가도 아니고 요리와도 거리가 먼 저이지만 먹는 것에 진심인 룰루랄라김치를 통해 ‘기분 좋게 먹는 방법’을 다시 배우고 있죠. 그러고 보니 우리 네 사람이 처음으로 다 같이 만난 이유도 즉석 떡볶이를 먹기 위해서였네요.
지금은 집필에 몰두 중인 김치는 우리에게 48시간 공들인 그릭 요거트를 내어 주었고, 룰루는 수제비와 카레 그리고 떡국을 끓여주었습니다. 늘 배가 고픈 허기진 랄라는 자꾸 무언가를 먹자고 불러냅니다. 어제는 (과장을 1도 보태지 않고) 200명이 줄 선 여의도 국숫집에 가서 콩국수를 먹었어요. 서로의 정성과 관심을 보탠 음식을 먹는 동안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공감과 위로가 오갔고 조언과 응원을 덧붙이기도 하면서요. 지난 시간과 지금도 각자 크고 작은 고민과 고난이 있는데요. 함께 만들고 먹으면서 버텨온 것 같습니다. 함께 먹은 순간들이 그저 먹는 것에만 그친 게 아니었구나 새삼 놀라워요.
<만들고 싶은 여자와 먹고 싶은 여자>는 현재 4권까지 출간되었습니다. 4권에서 노모토와 카스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 주기로 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그 시작이 쉽지 않은데요. 임대차 계약 시 가족을 연대 보증인으로 세워야 하는 일본에서는 친구 사이가 아닌 여자 둘이 함께 살 집을 구하는 과정이 무척 어렵고 곤란한 것이죠.
두 사람은 방법을 강구하며 골머리를 앓다가도 머리를 써야 하니 달달한 걸 먹자고 합니다. 단팥이 잔뜩 올라간 토스트를 만들어 먹고 난 뒤에도 여전히 문제는 그대로이지만 카스가는 말합니다. “먹을 것에 직접 문제를 해결할 힘은 없어도, 조금은 앞을 보고 생각할 힘을 준다.”고요.
얼마 전부터 부엌에 머무르는 시간이 조금은 길어졌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떡볶이를 만들고, 어린이들이 만든 수제 매실청을 넣어 마을 운동회에서 판매할 떡꼬치 소스도 만들었습니다. 친구에게 전수받은 토마토고수 샐러드는 여름의 시작에서 늘 생각납니다. 룰루랄라김치는 고수를 즐기지 않아 바질로 바꾸고 올리브를 추가해 대접하려다 그만 마켓까지 나가게 되었습니다. (치즈의 토마토바질 브루스게타, 랄라의 수제 양파잼 브루스게타를 함께 먹고 싶은 분은 오는 6일 마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리는 훌라당 댄스 페스티벌에서 만나요.)
언제나처럼 생각도, 고민도 많은 나날이지만 ‘조금은 앞을 보고 생각할 힘을 주는’ 먹을 것에 기대어 보는 요즘입니다. 맛있는 것 같이 만들어 나눠 먹고 ‘으쌰’ 힘내 보아요.
written by 룰루랄라와 콩국수 먹고 힘내서 쓴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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