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이름처럼 둥근 마음, 옹심이

다섯 번째 끼니

by 초삐


_퇴근길과 출근길 모두 버스와 지하철을 한 번씩은 타야 한다. 날이 좋은 계절에는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기도 하지만 대체로 버스를 탄다. 같은 길을 오가는 일상이 반복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길 위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퇴근길에 지나치는 서울역 버스 환승센터. 요즘 그곳을 보면 문득 달라진 풍경에 시선이 멈춘다. 전보다 훨씬 많아진 외국인들. 이제는 외국에서 온 얼굴들이 더 이상 이방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각기 다른 이유로 한국을 찾은 발걸음이 뒤섞인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닫는다. ‘우리나라 참 많이 달라졌구나.’



_믿기 어려울 만큼 눈부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휩쓸었을 때만 해도 ‘이게 바로 싸이다! 니들은 이런 거 없지!’ 싶었다면 요즘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우리를 좋아해 주는 걸까?’ 하고 되묻게 된다. ‘블랙핑크’의 코첼라 무대와 ‘BTS’의 수상 소식에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의 짜릿함은 최홍만이 밥샙을 이겼다는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오징어 게임’이 언어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를 장악했고 ‘케데헌’은 그 기록까지 넘었다. 우리가 세운 기록을 우리가 다시 깨뜨리는 즐거운 비명이 이어진다.


김구 선생님이 남기셨던 말이 떠오른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약하디약했던 그때의 처지를 생각하면 우리 문화를 세계가 주목하는 오늘을 얼마나 바라셨을까. 우리나라는 명실상부 문화 강국이 되었다.



_문화가 바뀌면 식탁도 따라 바뀐다. 예전의 한식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낯섦’의 문제였다. 베트남 쌀국수나 태국 팟타이처럼 익숙하지도, 일본 스시처럼 대중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한국 사람들이 먹는 건강한 음식’ 정도로 여겨지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불닭볶음면은 한 봉지의 라면으로 국경을 없애고 한국의 매운맛을 하나의 놀이로 만들었다. 눈물을 훔치고 우유를 마시면서도 사람들은 끝까지 한 젓가락을 더 든다. ‘치맥’, ‘비빔밥’, ‘삼겹살’과 ‘쌈’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메뉴가 되었고 한식은 어느새 세계인이 즐겁게 고르는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외국 관광객이 한국에서 찾는 음식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불고기, 갈비찜, 부대찌개, 치킨. 물론 모두 훌륭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한 그릇을 소개해 보고 싶다. 그건 바로 옹심이 칼국수다. 옹심이 칼국수는 이름부터 둥글다. 입안에서 ‘옹심’ 하고 굴려 발음하면 어딘가 귀엽고 외국의 언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발음이라 오히려 좋다. 외국에 나가서 그 나라의 말, 그것도 발음하기 어려운 말을 직접해보는 재미를 주고 싶다. 무엇보다 참 한국적인 이름 아닌가. ‘옹심’이라니. 둥글게 모이는 입 모양에 장난기 머문 온기가 느껴진다. 매끈하고 화려하지 않은 대신 손에서 굴린듯한 둥근 소리. 그 이름만으로도 이 음식이 어디에서 태어나 어떻게 먹히는지 절반쯤 알려준다.



_옹심이는 감자의 나라에서 왔다. 논보다 밭이 많던 강원도. 벼농사가 여의치 않아 쌀 대신 어디서나 무던히 자라던 감자가 식탁을 지키던 집들. 갈아낸 감자의 물을 가만히 가라앉혀 전분을 모으고 그 고운 입자를 손바닥에서 모아 조심스레 하나로 빚는다. 집에서 부침가루 없이 감자전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감자를 가는 노고와 전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조리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을. 대단한 식재료나 기교는 필요 없다. 손의 수고와 기다림의 시간으로 완성되는 너무나 정직한 음식.


옹심이는 맛이 강렬하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건더기의 맛을 살리려면 국물은 맑고 순해야 한다.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민물고기처럼 순둥한 옹심이는 맑은 국물에 어울린다. 지역에 따라 맑게 끓이기도 고소하게 걸쭉하게 끓이기도 하지만 어디서 먹어도 남는 인상은 비슷하다. 숟가락으로 떠 한 점 베어 물면 처음엔 묵직하다가 씹을수록 감자의 은근한 단맛과 고소함이 올라온다. 여기에 국물 한 숟가락을 더하면 쫄깃함과 따뜻함이 균형을 맞춘다. 이 깨끗하고 순한 설득이야말로 옹심이의 미덕이다.



_요즘 세계에서 인기를 끄는 한식은 어딘가 자극적이고 트렌디하다. 사실 한식은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불닭볶음면이 혀의 용기를 시험해 한 끼를 이벤트로 만든다면 옹심이는 하루의 속도를 잠시 늦추어 ‘시간’을 한 숟가락 더 떠먹게 한다. 둘 중 무엇이 ‘한국의 스타일’을 말하는 ‘한식’과 어울릴까.


외국에서 온 손님에게 이 따뜻함을 선물하고 싶다. 과장하지 않는 순수함. 천천히 식고 나눌수록 맛이 깊어지는 그 성정. 좋은 노래의 후렴처럼 한 번 배면 오래 남는 음식.


무엇보다 옹심이는 함께일 때 완성된다. 큰 그릇을 가운데 두고 각자 그릇을 내밀어 국물을 받는다. 인심만큼이나 덜어주는 그릇도 넘칠 듯 가득, 한식은 항상 적게 채우는 법이 없다. 사람 수만큼 그릇에 음식이 담기면 그 온기가 각자 앞에 가만히 안착한다. 한국의 ‘정’을 묻는다면 긴 설명보다 이 한 그릇에 담긴 옹심이와 따끈한 국물이 더 정확한 대답일지 모른다.



_문화 강국이라는 말은 단지 어떤 가수의 인기나 한 음식의 유행을 뜻하지 않을 것이다. 바쁜 하루 끝에 서로에게 국물을 덜어 주고 서로를 위하는 습관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 나라. 그런 마음이야말로 문화의 힘이다.


식당의 테이블에 앉아 옹심이 칼국수 한 그릇을 가운데 두고 세 알과 네 알을 주고받는 그 순간. 뜨거운 김이 얼굴을 적시고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낯섦을 조금씩 밀어낸다.


세계가 우리를 세련되다고 기억해도 좋다. 다만 우리가 우리를 기억할 때는 이 따뜻함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세련됨이 우리를 보이게 한다면 옹심이 칼국수 한 그릇, 그 안에서 가장 예쁘고 동그스름한 옹심이를 찾아 건네고 싶은 마음이 우리를 남게 한다. 둥글고 따뜻하게. 제법 오래도록.


KakaoTalk_20250907_203919470.jpg 봉평 옹심이 막국수_2025년 9월 5일_옹심이메밀칼국수 곱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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