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아일랜드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쓴 〈행복한 왕자〉와 첫 만남은 유쾌하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에 이 동화를 읽고 실망했다. 재미가 없고 이해하지 못한 대목이 많았다. 조각상이 되어 장식된 보석을 남에게 모두 주어버리는데 왜 행복한 왕자인지 의문이 남았다.
고등학교 때 영한 대역으로 〈행복한 왕자〉를 다시 읽었다. 영어 공부에 치중하느라 이번에도 이 동화의 주제나 재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어렵다는 인상이 오래 남았다.
2016년 초 오랜만에 영어된 The Happy Prince를 읽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너무나 재미있고 감동이 컸다. 우선은 흙수저들의 이야기에 끌렸다. 〈행복한 왕자〉에서는 가난한 재봉사 어머니와 병든 아들, 굶주림에 시달리는 청년 극작가 지망생, 맨발의 성냥팔이 소녀, 굶주린 아이들이 흙수저이다. 이 흙수저들에게, 죽어 조각상이 된 왕자는 자신의 신체 일부인 사파이어, 루비, 몸을 덮은 금박까지 모두 나누어준다. 최고의 금수저가 흙수저들에게 이렇게 희생을 하다니! ‘자선’ ‘자기희생’이라는 주제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이런 동화를 쓴 오스카 와일드가 어떤 소설가인지, 동화의 무대가 된 빅토리아 시대와 <행복한 왕자>를 좀 더 깊게 알고 싶었다. 《오스카 아일드, 아홉 가지 이야기》(열린책들, 2015)는 그동안 품었던 의문을 일부 풀어주었다. 번역자인 최애리 씨가 쓴 옮긴이의 말 ‘동화 속에 남긴 영혼의 발자국’이 도움 되었다. 와일드는 ‘모든 아버지는 자녀를 위한 동화를 지어야 한다’고 말했고, 어린 아들들에게 자신의 동화를 읽어 주기도 했다. 1884년 30세 때 콘스탄스 로이드와 결혼한 와일드는 다음 해에 장남 시릴(Cyril)을 낳았고 1년 후에는 차남 비비언(Vyvyan)을 낳아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차남이 태어난 2년 후 1888년 5월 동화집 《행복한 왕자의 그 밖의 이야기들 The Happy Prince and Other Tales》를 출간하고, 12월에 동화 〈어린 왕 The Young King〉을 발표했다. 이런 동화는 와일드가 자기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위해 쓴 것이다.
그 다음 내용에 눈이 크게 떠졌다. “그의 동화가 아이들만을 위해 쓰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와일드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아이들과, 아이 같은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실제 작품의 문면을 보면 아이보다 어른을 위해 쓰인 것 같은 대목이 적지 않다. 와일드의 동화가 어린 독자들만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석류의 집》의 이야기 네 편은 각기 당대 최고의 여류 명사들에게 헌정되었으며-책 전체는 아내인 콘스탄스에게 헌정되었다 - 초판의 호화 장정이나 상징적인 표지 그림 모두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고 알았던 와일드의 동화는 아이들과 어른을 위한 동화였다. 그러니 다른 동화처럼 가볍게 읽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동화가 아니겠는가. 성인이 되어 읽어야 의미와 주제를 제대로 알게 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사실, 영어권 대학에서는 영문학 단편소설 강의에 <행복한 왕자>가 필수라 할 정도로 가르친다.
와일드가 말한 <아이들과, 아이 같은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들>이 원어로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인터넷에서 먼저 찾았다. 영국 펭귄출판사의 누리집 ‘행복한 왕자’를 소개하는 글 중에 있다.
“이 동화집에 포함된 5개 동화는 1888년 데이비스 너트(Davis Nutt)출판사가 처음 출간하였다. 와일드가 그의 두 아들을 위해 썼다고 하지만, 저자 자신이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와 같은 마음을 지닌 열여덟 살에서 팔십 살까지의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주장하였다. (The five original fairy tales included in this volume were first published by Davis Nutt in 1888. Although it is said that Wilde wrote them for his two young sons, the author himself claimed they were '…… not for children, but for childlike people from eighteen to eighty'.)
엘리노 피츠시몬스(leanor Fitzsimons)가 펴낸 《와일드의 여인들》을 보니 와일드가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밀리 리버스 챈러(Amelie Rives Chanler)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와 같은 주장을 하였다. 와일드가 말한 내용은 그의 서간문집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열여덟 살에서 팔십 살. 와이드가 상정한 《행복한 왕자와 그 밖의 이야기들》의 독자층이다. 이런 단편 소설을 동화로 분류하여 어린이들에게 읽게 하니 재미가 없을 수밖에. 동화라는 선입견 없이 성인을 위한 단편으로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를 읽는다면 오스카 와일드가 제공하는 문학의 즐거움을 제대로 맛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