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

나를 위한 다짐서.

by 구름잡이

백지가 제일 무섭다. 첫 문장을 이렇게 써놓고 오 분 동안 머리를 굴려보았다. 하지만 역시 백지가 제일 무섭다. 글을 써봐야지 하고 마음먹고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은 아이디어로 가득했지만, 막상 쓰려고 앉으니 막막하다. 미세한 영감이라도 얻어 보겠답시고 아이디어 노트를 펼쳤다. 잡생각을 휘갈겨 놓은 노트. 군 시절 샀던 무선노트다. 첫 장엔 내가 예전에 써 놓았던 짧은 글귀가 있는데, 지금의 상황에 너무 적절하다.



백지를 채우는 첫 한 줄은 무겁다.
불완전함과 어리숙함으로 가득한 첫 획이 혹여나
이 여백의 완벽함을 흩트릴까 봐.

백지를 채우는 첫 한 줄은 거침없다.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함 속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으로 이어지기를.



이 시(?)를 낭독하던 선임도, 그걸 그 자리에서 듣고 있던 다른 선임들도 다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걸 다시 읽는 지금의 나도 피식한다. 물론 손발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니, 그전에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구글링부터 했다. 하지만 곧바로 창을 닫았다. 나만의 이유가 없으면 안 된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생각했다. 내가 꼭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 고민 끝에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를 해봤다.




더 잘 읽기 위해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독서를 하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늘 반대로 생각했다. 독서를 잘하기 위해서는 글을 쓸 필요가 있다고. 평소에 여유가 있으면 서점이나 도서관을 배회하는 걸 좋아한다. 특히 서점에서 나올 땐 늘 손에 책 한 권씩 들려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서 읽는 책들은 많은 경우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는다. 분명 사들고 집에 오는 길에는 얼른 읽고 싶어 안달이 났던 나였지만 말이다. 반면에, 내가 학교 과제를 하기 위해서 읽는 책들은 읽고 싶어서 샀다기보다는, 과제 수행을 위한 의무감에 내가 나에게 던져놓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밑줄이 잔뜩 그어지고, 여백 곳곳에 빼곡히 필기까지 되어 명예롭게 책장에 안치된다. 책의 내용 또한 쉽게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차이가 단순히 목적의식의 유무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취미로 하는 독서보다는 목숨 걸고 하는 과제가 우선순위에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틀린 말은 아닌데,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과제로 하는 독서에는 글쓰기라는 행위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전공의 특성상, 대부분의 과제는 레포트/에세이 작문이다. 보통 레포트 한 편을 쓴다고 치면, 짧게는 4~5 편, 길게는 그 이상의 참고문헌이 요구되고, 실제로 글을 쓰는 시간보다는 책이나 논문 등을 읽으며 자료를 수집하는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 보통 글쓰기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독서의 중요성이 피력되고는 한다. 하지만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책을 통해 수집한 다양한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글쓰기가 필수 불가결하다는 사실이다. 다소 난이도가 있는 논문을 분석하기 위해서 필기를 하는 작업이나, 그렇게 정독한 내용들을 찾아보기 쉽게 요약해서 정리하는 작업 등, 텍스트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는 과정은 글쓰기를 통해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Relativity (M. C. Escher) - 출처: 위키피디아


글을 쓰는 과정은 각인의 과정과 같다. 사람의 머릿속은 미로와 같이 복잡하며, 셀 수 없이 많은 방들이 있다. 글로 쓰인 정보는 그중 하나의 방을 배정받게 된다. 간혹 여러 개의 정보가 방을 나눠 쓰기도 하고, 다른 방으로 옮겨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글로 쓰이지 않은 정보는 미궁 속을 정처 없이 배회하다 길을 잃고, 결국에는 사라지고 만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다룬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려면 막상 내용이 기억이 안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하는 독서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내 데이터베이스에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궁극적으로 독서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나는 글을 써야만 한다.



아이디어의 실체화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나는 아이디어 노트를 가지고 있다. 사실 아이디어라고 하기에는 뚜렷한 방향성이 없고, 아무렇게나 끄적여놓은 의미 없는 내용이라 랜덤노트라고 부르는 걸 더 선호한다. 전날 밤 꿈의 내용을 적어놓거나, 나중에 구글링 해볼 목적으로 짧은 키워드 따위를 써놓는 용도로 사용하다 보니 제대로 된 글이라 보기에는 어렵다. 오랜만에 노트를 펼쳐보았다. 대부분의 내용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지금 보니 정말 무작위 한 단어들의 나열이다. 간혹 제대로 읽히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 최소 문장 단위에서 길게는 한 두 문단 정도 되는 글이었다. 이 경우에는 신기하게도, 어떤 아이디어가 뇌리에 스치고, 내가 노트를 펴고 그것을 받아서 쓰기까지의 과정이 꽤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여기서 나는 글을 써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았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생각들은 떠돌이처럼 잠깐 들어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내가 하는 것처럼 키워드를 간략하게 적어 놓는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지 제대로 기억하기가 힘들다. 우리의 생각은 대개 추상적인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형상만큼은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그런 인상을 받는 것일 뿐, 실체는 없는 생각들이 대부분이다. 길을 가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것을 바로 옆에 있는 친구에게 설명해본다고 생각해보자. 분명히 획기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느낌을 받았을지라도,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논리적 허점이 많고, 때로는 전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짤막한 아이디어들을 정리하고 확장하는 과정은 글쓰기를 통해 가능하다. 내 메모들 중에 문단 단위의 글들이 유독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추상적이고 빈틈 가득한 개념을 문장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논리적 연관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악몽을 꾸고 일어난 직후에 그 내용을 글로 옮겨 적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러고 난 뒤,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와서 다시 한번 그 꿈의 내용을 글로 써본다. 일어난 직후에 쓴 내용은 문장 구조도, 이야기의 진행도 터무니없다. 원래 꿈이라는 것이 구조가 거의 부재한, 무의식 속 이미지들의 나열이기 때문이다. 꿈을 꿀 당시에는 실제로 경험하는 것처럼 생생했을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후에 꿈의 내용을 글로 쓴다고 했을 때, 그 내용은 마치 영화나 단편소설의 줄거리처럼 하나의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도 모르게 꿈속의 이미지들 사이에 내러티브적 연관성을 만들어 넣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과관계를 갖춘 내용은 머릿속에서 잘 떠나지 않는다. 글을 통해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실체화시킨 것이다. 마법의 붓을 들어 허공에 바람 풍 風 자를 쓰자 바람이 불어오는 것과 같다. 글쓰기만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또 있을까.



생각의 합성: Synthesis


전자악기 중 신디사이저 synthesizer 라고 불리는 악기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전자악기가 신디사이저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는데, 디지털 사운드를 인공적으로 합성하고 변형시켜서 새로운 사운드를 창조해 악기로 사용하는 것을 신디사이저(synthesize = 종합하다, 합성하다)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신디사이저가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사운드는 주기적 파형periodic waveform이라 부르는 정현sine파, 방형square파, 삼각triangle파와 톱니sawtooth파의 4 가지 파형과 화이트 및 브라운 노이즈 유형 등이 있다. 이 사운드들은 가장 원초적이고 기초적인 형태의 소리로, 이 소리들의 파형을 다양하게 조합하고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소리가 만들어지고, 이는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을 작곡하는데 쓰인다. 아래 영상을 참고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J9wzev494_k


신디사이저에는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사운드 라이브러리가 있고, 이 모든 소리는 위의 파형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글쓰기는 이런 신디사이저의 기능과 매우 유사하다. 예를 들자면 위의 1과 2에서 언급했던 글쓰기의 형태인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글과, 나만의 아이디어를 글로 쓰는 형태를 혼합해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하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합성의 기능은 A 와 B 가 합쳐져 AB 가 되는 식이고, 변형의 기능은 A 와 B 가 만나 전혀 다른 C 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즉, 동일한 신호들을 입력해도, 그것들을 융합시키는 방식에 따라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 갈 잠재력을 가진 것이 글쓰기다.


앞으로 올릴 글들은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서평>과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랜덤노트> 뿐 아니라 이 둘의 내용을 조합하는 형식의 <에세이>, 이렇게 세 개의 카테고리로 기고를 하고자 한다.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함 속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행동하기 위해


이 정도까지 쓰고 나니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이렇게까지 글쓰기의 중요성을 피력하면서, 정작 나는 왜 글을 쓰지 않았는가? 나는 늘 말과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행동은 굼뜨다. 참신한 발상이 떠오르면 대개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정도를 머릿속에서 숙성시킨다. 늘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술자리, 지인과의 수다 등 대화를 하는 상황에서는 관련된 생각들이 술술 나온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는 경우는 20% 남짓하고, 대부분은 숙성이 아니라 그냥 썩는다.


이런 내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보니 자괴감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번이고 이런 습관을 고치려고 시도했는데, 대부분의 경우 작심삼일로 끝나버린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내가 해야 할 일을 글로 옮겨놓은 후에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알 수 없는 의무감이 든다고 해야 할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해야 할 일에 대한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그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첫 단계인 것이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실천을 한 것이다. 글쓰기는 곧 행동이고, 나는 행동하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써야만 한다.




결국 앉은자리에서 여기까지 쓰고야 말았다. 뿌듯함과 동시에 나의 부족한 작문실력에 부끄럼을 느낀다. 몇 년 전 썼던 그 글귀를 다시 한번 읽어본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가볍게 써 내려갔다. 불완전함과 어리숙함은 이미 각오했던 바이고, 아무래도 텅 비어있는 빈 페이지보다는 글자로 꽉 차있는 것이 훨씬 보기 좋다. 이게 어디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막연하게 꾸준한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니, 일단 꾸준하게 쓰는 걸 목표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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