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폰차트레인 호의 해돋이.

by 구름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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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때와 장소가 있다는 말은, 벤자민 버튼에게 만큼은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종전을 알린 날 밤, 모두가 그들의 앞에 놓인 밝은 날들을 상상하며 승리의 환희에 젖어있을 때, 벤자민은 70세 노인의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다. 친 아버지에게 버려진 뒤 요양원에서 노인들 사이에 끼어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자신이 남들이 늙어갈때 하루하루 어려진다는 것을 깨닫고, 얼마 안 가 이 다름은 결코 축복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어릴 때의 첫사랑과 결혼해 오손도손 늙어가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게 벤자민은 그가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와 인생의 아주 짧은 순간만을 공유할 뿐이다. 세월이 흐른 뒤 그녀는 노인이 되어, 그리고 그는 기억을 잃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둘은 다시 마주하게 된다. 벤자민은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데이지의 품에 안겨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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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장면은 전쟁에서 돌아온 벤자민에게 토마스 버튼이 자신이 친 아버지임을 고백한 이후의 장면이다. 죽을 때가 돼서야 회개하듯이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에게 분개한 벤자민은 그의 집인 요양원으로 돌아온다. 방으로 올라가던 중에 만난 도우즈 씨의 말이 벤자민의 가슴에 깊게 자리잡는다.


Did I ever tell you I been struck by lightning seven times? Once, I was walking my dog down the road. Blinded in one eye; can't hardly hear. I get twitches and shakes out of nowhere; always losing my line of thought. But you know what? God keeps reminding me I'm lucky to be alive.
“내가 번개에 7번이나 맞았었다는 걸 얘기해 준적이 있던가? 한 번은 강아지를 데리고 길을 걷던 중이었었지. 한쪽 눈은 멀어버리고, 귀는 거의 들리지도 않아. 시도때도 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몸이 떨리기도 하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까먹고 말이야. 그런데 그거 아나? 신은 내가 살아있음을 행운으로 여기라고 알려주고 있는 것이라네.”


벤자민은 다시 아버지를 찾아가 어릴 적 어머니를 처음 만났던 폰차트레인 호로 데리고 간다. 자신의 아버지를 호숫가의 의자에 앉힌다. 단 한 번도 벤자민의 옆에 있어주지 않았던 토마스. 벤자민은 그의 옆에 앉아 주지 않고, 그의 뒤에 앉는다. 그리고 부자는 해가 떠오르는 지평선을 바라본다.


“You can be as mad as a mad dog at the way things went. You could swear, curse the fates, but when it comes to the end, you have to let go.”
“미친 개마냥 지금껏 일어난 일들에 대해 분노할 수는 있다. 욕을 내뱉고, 운명을 저주하고.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그저 내려놓을 뿐이다.”


새벽 햇살이 비추자 아버지는 모든 걸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떠오르는 해는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지만, 토마스에게는 인생의 해질녘과 같은 광경이다. 자기가 태어난 날 아버지에 버려졌던 벤자민은 단 한번도 남들과 같은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남들과는 거꾸로 가는 자신의 시간을 조금은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 떠오르는 태양은 벤자민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시작인 것이다. 모든 일에는 ‘나만의’ 때와 ‘나만의’ 장소가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의 핵심적인 주제를 관통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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