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서평. 올리버 색스 저. 조석현 옮김.

by 구름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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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경학자인 올리버 색스가 평생에 걸쳐 만나온 환자들의 임상사례를 묶은 에세이집이다.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건 이 책의 제목이자 가장 유명한 사례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때문이었다. 이 장은 얼굴과 사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특이한 병리를 경험하는 P선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는 대신 기하학적인 도형을 인식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구체성의 능력을 상실한 그는 추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뒤에 나오는 많은 사례들 역시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순식간에 읽어나간 것 같다.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로 구성된 네 개의 장은 각각 다른 주제로 인간을 다룬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수록된 1부 ‘상실’은 기능의 결손에 의한 병리를, ‘과잉’은 반대로 기능의 과도함의 사례들을 소개한다. 상반되는 증상이 나타나는 만큼 사람의 본질에 대한 서로 다른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 나타나는 문제들을 다룬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부재함에 대해 더 예민하다.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병원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기분이 고조되어 있을 때 우리는 문제가 있다고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지 않을까? 언젠가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이 생길 때까지는 말이다. 신경학에서도 과잉의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환자가 이런 고양된 상태를 더 선호한다면, 이를 장애로 진단할 수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2부에 수록된 <큐피드병>에서 소개된 여든아홉 살의 나타샤 할머니는 신경매독에 걸려 마치 이십 대의 여성으로 회춘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활력이 넘치고, 젊은 남자에게 눈이 간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 병을 치료하고 싶은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병이라는 것은 알지만 병 덕분에 기분이 좋으니까 말입니다. 나는 그런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지금도 좋아요. 그런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


정말 단순하게, 주변 사람에게 “적은 게 좋아, 많은 게 좋아?” 하고 물어보자. 생략된 주어에는 그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있겠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잉보다 결핍을 선호할지가 의문이다. 자기 파괴적이지만 각성되어 있는 상태, 행복과 고통이 공존하는 이 상태를 작가는 “큐피드와 디오니소스의 세계”로 표현한다.


3부 ‘이행’은 신경학적인 변화가 환자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4부 ‘단순함의 세계’는 P선생과는 정반대로 구체성의 세계에 몰두하는 사람들, 흔히 지적장애로 표현되는 병리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들은 세상을 범주적으로 구분하는 능력의 결손이 나타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들의 사례를 ‘결함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 레베카>에서 소개되는 레베카는 낮은 지능으로 인해 세상을 추상적으로 범주화하는 능력이 월등하게 떨어진다. 하지만 ‘추상성’ 대신 ‘구체성’을 지닌 그녀는 세상을 음악과 연극, 즉 예술적 관점으로 보는 능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그녀가 세상을 구성하는 방식은 범주가 아닌 서사, 내러톨로지다. 다중지능 이론의 선구자인 하워드 가드너의 표현을 빌려 그녀를 설명하자면, 그녀는 ‘창조적인 지성’을 가진 것일까. 작가는 이 주장에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는 것 같다. <쌍둥이 형제> 장에서 작가는 말한다.


그들의 천재성은 단지 ‘능력’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며,
인격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그들의 삶의 중심에 있는 그 무엇이었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인본주의적 관점을 너무나 잘 나타내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능력, 혹은 장애는(이 책을 읽고 나면 이 두 가지가 그리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단순히 하나의 개별적 요인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결정짓고, 우리의 기억과 경험을 구성하며, 궁극적으로 나를 나로 만드는 핵심이 된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레베카가 자신만의 스키마(도식)를 구성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 같다. 그녀가 음악, 시, 연극이라는 스토리를 통해 자아를 구성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에서 이 부분이 자세하게 다뤄진다. 내 능력의 상실은 곧 나의 상실이다.


고차적인 신경학과 심리학 연구에서는 환자를 인간 자체로서 대단히 중시한다. 환자를 치료하려면 환자의 인간적인 존재 전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분야에서는 병의 연구와 그 사람의 주체성에 대한 연구가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이러한 분야를 서술하거나 연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새로운 방법의 도입이 요구된다. 감히 이름을 붙인다면 ‘주체성의 신경학’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평생 신경학적 병리를 다룬 과학자였지만, 동시에 사람을 놓치지 않았다. 책에서 소개되는 사례들은 단순히 병리의 특이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병리를 안고 살아가는 인생을 존중하는 자세로 소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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