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물과 기사와 영웅

중세 독일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

by 구름잡이
니벨룽겐의노래.JPG


<니벨룽겐의 노래>는 중세 독일의 영웅 서사시로, 구전되어 오던 유럽의 다양한 전설들이 12세기 경 집대성된 작품이다. 2부작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1부는 영웅 지크프리트와 크림힐트의 만남에서부터 지크프리트가 하겐에게 배신당해 사망하기까지, 2부는 훈족의 왕 에첼과 재혼한 크림힐트의 복수극을 그린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현대의 문학과 매체들에서 재생산되는 모티프들이 마치 데자뷰처럼 떠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해리포터>의 투명망토를 비롯한 죽음의 성물, 톨킨의 <중간계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마법의 반지, 아라곤이 휘두른 보검 안두릴과 같이 악당을 무찌르는 명검 등이 모두 집대성되어 소개되는 작품이 <니벨룽겐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서사적인 면에서는 TV 시리즈<왕좌의 게임>으로 각색된 조지 R.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가 생각나게 한다. 특히 1부에서 나타나는 크림힐트와 브륀힐트의 대립과 2부에서 전개되는 크림힐트의 복수극은 <얼음과 불의 노래>의 여성 인물들 간의 정치적 대결과 상당히 유사한 양상을 띈다. 그렇기 때문에 2부에서 브륀힐트의 부재는 상당히 아쉬웠다. 또한 작품 곳곳에서 화자가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는 구절들이 있는데, 이는 마치 서서히 비극으로 치닫는 서사의 배경음악을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판타지 서사적 모티프들 뿐 아니라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기독교적 가치나 기사도 정신과 같은 테마들은, 중세의 서사시로서의 <니벨룽겐의 노래>를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작품 속에서 ‘중세적 영웅상'을 가장 잘 나타낸 인물에 대한 탐구를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부는 크산텐 왕국의 왕자 지크프리트가 뛰어난 무력을 통해 작센족의 침략을 받은 부르군트 왕국을 도와 군터 왕의 호감을 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군터 왕의 여동생 크림힐트와의 결혼을 약속받기 위해 지크프리트는 군터왕이 이스란트의 브륀힐트 여왕과 결혼할 수 있도록 돕기로 한다. 브륀힐트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여왕으로, 구혼자들과 힘을 겨루어 자신을 제압할 수 있는 남자에게만 결혼을 허락했다. 지크프리트는 마법의 투명망토를 사용해 군터 왕이 힘겨루기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 구혼을 성공시킨다. 지크프리트는 군터 왕의 약속을 상기 시켜 크림힐트와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브륀힐트와 결혼한 군터 왕은 그녀에게 힘으로 제압당해 벽에 걸린 채로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군터 왕은 다시 한 번 지크프리트의 도움을 요청하고, 지크프리트는 투명 망토를 사용해 브륀힐트를 제압해 그녀의 반지와 허리띠를 빼앗는다. 결박당한 채로 군터 왕에게 몸을 허락한 브륀힐트는 그녀의 힘을 잃어버린다.


harry-potter-invisibility-cloak.jpg <니벨룽겐의 노래> 1부에서 큰 역할을 했던 투명망토. 지크프리트가 죽은 후에 언급되진 않는다.


지크프리트는 크림힐트와 함께 크산텐에 돌아와 왕위를 계승받고 아들을 낳아 군터 왕의 이름을 붙인다. 마찬가지로 군터 왕과 브륀힐트 사이의 아들은 지크프리트의 이름을 받는다. 평화로운 시간이 흘렀지만, 군터 왕과 지크프리트가 주종관계에 있다고 믿었던 브륀힐트는 남편의 동생이 낮은 신분의 남자와 결혼한 것을 탐탁지 않아 했고, 지크프리트 부부를 초대한 자리에서 두 여인은 남편들의 우위를 두고 다툰다. 도발 받은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와 함께 군터 왕의 부부보다 먼저 예배당에 입장하여 브륀힐트를 분노케 한다. 두 여성이 갈등이 고조되고 크림힐트는 브륀힐트에게 지크프리트가 군터를 도와 그녀를 제압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여 브륀힐트의 정당성을 부인한다. 군터 왕은 진실이 탄로난 사실에 모욕감을 느끼고, 그의 충신 하겐이 지크프리트를 암살할 것을 제안하자 마지못해 설득 당한다. 하겐은 크림힐트를 속여 지크프리트의 약점을 알아내고, 사냥 중에 물을 마시는 지크프리트의 약점을 창으로 찔러 살해한다. 남편의 죽음에 하겐을 의심하던 크림힐트는 하겐이 죽은 지크프리트의 시체에 다가가자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그가 살인범임을 확신한다. 하겐은 크림힐트가 군대를 모아 복수할 것을 예상해 지크프리트의 재산을 라인 강 아래에 수장시킨다.


2부는 훈족의 왕 에첼과 재혼한 크림힐트가 하겐과 함께 그녀의 형제들에게 복수하기 위한 계략과 실행으로 이루어진다. 크림힐트는 부르군트 왕국의 영웅들을 훈족의 축제에 초대하기 위해 사신을 보낸다. 그녀의 계획을 직감한 하겐은 국왕을 말리지만, 여동생의 청을 수락한 군터 왕과 그의 형제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동행하게 된다. 여정 도중 인어들로부터 사제만이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하겐은 사제를 물에 빠뜨려 죽이려 하지만 사제는 헤엄쳐서 왔던 길을 돌아간다. 축제에 도착한 부르군트인들은 축제가 얼마 지나지 않아 훈족과 충돌하게 된다. 하지만 부르군트의 영웅들은 매우 강력해 크림힐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대규모 전투로 확대되어 많은 훈족들과 부르군트인들이 죽어 나간다. 결국 훈족들의 영웅들은 대부분 쓰러지고, 부르군트의 영웅들 중 군터 왕과 하겐만이 살아남아 포로가 된다. 크림힐트는 하겐에게 지크프리트의 유산의 위치를 추궁한다. 하겐이 자신의 주군이 살아있는 한 보물의 위치를 말하지 않겠다고 하자, 크림힐트는 부하를 시켜 자신의 오빠인 군터의 목을 치고, 하겐이 끝까지 실토하지 않자 직접 하겐의 허리춤에 걸린 남편의 검 발뭉을 뽑아 그를 죽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노장 힐데브란트는 그녀의 행동에 경악하여 그녀를 검으로 살해한다.


<니벨룽겐의 노래> 속 성물

모습을 감추고 사내 열 두 명의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는 투명망토나 전쟁터에서 적들을 거침없이 무찌르게 해주는 명검과 같이 신비한 힘을 지닌 성물(hallow item)들을 단순히 판타지 서사의 클리셰로만 치부하기 보단, 중세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상징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소개되는 이런 물건들에 부여된 신성함은 마치 신의 대체재와 같이 느껴진다. 신에 대한 언급은 작품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작센족과 싸우러 나가는 지크프리트에게 군터 왕은 “하느님의 은총이 당신에게 있기를! 지크프리트!”하고 응원한다. 크림힐트는 전투를 마치고 온 지크프리트와 처음 대면해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은총을 내려주시길 바래요”하고 감사의 인사를 한다. 역설적이게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의 축복을 받은 지크프리트는 작품 내에서 가장 먼저 사망하는 주요 인물이다. 이렇듯 신은 ‘신의 가호’와 같은 신성한 의미(semantic)로서 나타나긴 하나, 정작 신이라는 존재는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다신교 신화(mythos)와 대비되는 특징이다. 그리스 신화에서의 신은 뜨고 지는 해와 같은 자연현상을 직접적으로 관장하는 존재들인 동시에, 인간 세상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두고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적극적인 신’이다. 우리에게 이런 모습의 신은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으로 지각되는 반면, 기독교 세계관의 신은 ‘관념으로서의 신’에 더 가까워 사람들에게 다소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관념화된 신을 대체하여 신의 힘을 일부 부여받은 도구(object)들이 만져지고 사용될 수 있는 ‘현실적인’ 성물로서 자리 잡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The-sword-Anduril-to-Aragorn-in-the-lord-of-The-rings-the-return-of-The-king-movie.jpg 반지의 제왕: 아라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보검 안두릴.


이런 맥락에서 <니벨룽겐의 노래>에 나타나는 성물들은 신보다 종교가 중요해진 중세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다. 도구, 장식, 예의와 같은 ‘겉치레’가 강조되는 것이다. 작품에서 나타나는 ‘치장의 의식’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성 인물들은 중요한 사건이나 행사를 앞두고 비단 옷과 금장식으로 스스로를 정성껏 꾸민다. 크림힐트는 부르군트에서 열릴 행사를 앞두고 자기의 사람들에게 값비싼 옷을 입을 것을 명령하고, 귀부인들은 그들의 교양과 기품을 의상을 통해 나타낸다. 이런 의식이 가장 잘 반영된 장면은 지크프리트의 장례식이다.


마침 여자들이 처절하게 통곡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들 중 얼마는 여인들이란 옷부터 우선 단정하게 입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 사람들은 그 시체를 값비싼 천으로 감쌌습니다 (중략) .. 그 후 그를 매장하기 전에 또 사람들은 성가를 불렀으며 기도도 드렸답니다.. (중략)


그리스인들이 신들에게 제물을 바쳐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받던 종교 의식과는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신들을 위한 선물이 아닌, 죽은 자가 안전히 천국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의식적 기도인 것이다. 이는 사후세계와 신앙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기독교적 교리가 작품 속에 녹아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넘어오는 역사의 과도기에서 파생된 이러한 중세적 특징을 서사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해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그리스 신화 속 ‘적극적 신’의 모습과 대비되는 기독교의 유일신은 보다 추상적 차원에서 존재하는 듯하다. 실제로 성경에서 표현되는 신은 다른 관념들의 상위층에 존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디모데전서 6장 15절>


기독교의 신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왕들의 왕으로 군림한다. 신들 중 최상위 포식자라고 표현하면 너무 격이 떨어지는 표현일까. 하지만 두 문화의 신들을 비교했을 때 그리스의 신들은 탐욕스럽고 옹졸해 보이기까지 한다. 신들의 싸움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을 억눌러버리고 중세 유럽을 정복한 최고신이 교회의 신인 것일까? 역사라는 서사와 문학의 서사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가 다소 무리한 것일 수도 있지만, 중세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이 이교도인들과 그들의 교양 없는 신들을 몰아낸 최상위의 존재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을 테고, 실제로 그들의 하느님 위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는가. 이런 가치관이 반영된 작품이 <니벨룽겐의 노래>가 아닐까.


하지만 기독교의 하느님이 신들의 위계에서 가장 고귀하고 높은 위치를 차지한 만큼, 인간과의 긴밀한 거리는 멀어진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에 대한 근거로 ‘성물’과 ‘치장의 의식’을 들 수 있다. 지크프리트가 생전에 소유했고 사후 하겐에게로 넘어간 명검 발뭉을 예로 들어보겠다.


보름스인들 중에서는 그 누구도 지크프리트를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크프리트의 일격에 빛나는 투구들은 산산조각 나고 그 투구에서 핏줄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지요.. (중략) .. 강력한 뤼데거는, 지크프리트를 목격했을 때, 그리고 지크프리트가 승승장구하며 예리한 그의 보검 발뭉을 휘둘러 공중을 가르면서 자신의 부하들을 그토록 많이 쳐 죽이는 것을 보아야만 했을 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고 말았답니다.


작센족과의 전투에서 발뭉을 휘두르는 지크프리트를 막을 인간은 없는 듯 보인다. 이렇게 신비한 힘을 가져다주는 물건은 중세 문학의 핵심적인 클리셰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한 성배(Holy Grail)를 찾기 위한 중세의 기사들의 여정도 같은 맥락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고대 브리튼의 영웅 아서 왕 전설이 있다. 또한 아서 왕의 명검 엑스칼리버와 지크프리트의 발뭉도 같은 기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중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런 성유물들에 대한 집착은 멀리 떨어진 신에게 조금이나마 가까워지기 위한 인간의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해 볼 수 있고, <니벨룽겐의 노래>는 이를 잘 반영한 중세의 고전인 것이다.


중세의 기사도 정신과 영웅

<니벨룽겐의 노래> 속 주인공들의 가치관과 행동들은 상당 부분 중세의 기사도 정신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사학자 레옹 고티에 <기사도Chivalry>에서 정의한 기사도는 다음과 같다:


1.교회의 가르침을 믿고 준수하라

2.교회를 지켜라

3.약자를 존중하고 지켜라

4.조국을 사랑하라

5.적 앞에서 후퇴하지 마라

6.중단 없이 자비 없이 불신자들과 싸우라

7.하느님의 법에 그들이 반대하지 않는다면 봉건 의무를 양심적으로 실행하라

8.거짓말하지 말고, 그대의 서약을 신뢰받게 하라

9.자비로워지고, 모든 이에게 아낌없이 베풀라

10.어디서든 언제든 부정과 악에 맞서 정의와 선의 투사가 되라


위의 내용을 참고하여 본 작품에서 나타난 기사도의 요소들을 크게 용기, 명예(체통)과 섬김의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먼저, 용기는 전투에서 물러서지 않는 자세다. 작품 내에서 한 번이라도 ‘영웅'으로 칭해졌던 인물들은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부에서 나타난 지크프리트의 용맹함과 함께 2부의 대전투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훈족과 부르군트 군들의 대부분이 해당된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단순히 오만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크림힐트가 하겐의 목을 쳐서 가져오는 자에게 황금과 명예를 내릴 것을 약속하자, 이링은 적극적으로 하겐에게 전투를 청한다.


‘나는 언제나 명예를 매우 중히 여겨왔고 거대한 전투에서 영광스럽게 내 임무를 수행해왔다네. 자, 이제 내 무기를 가져오라! 나는 하겐과 싸우고자 한다.’


하겐과의 첫 전투에서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데에 성공한 이링의 “마음은 고도의 자만심으로 충만”해진다.


‘친구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를 즉시 무장시켜다오. 나는 다시 한 번 저 자신감에 넘치는 사나이를 끝내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보겠다.’


하지만 그는 두 번째 전투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사냥에 나선 지크프리트 역시 그의 힘을 믿고 잠시 방심한 순간 하겐에게 배신당해 죽고 만다. 마치 용기가 자만심으로 바뀌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는 공식이 있는 것만 같다. 이런 모티프는 중세의 작품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카로스의 날개>와 같은 비극적인 이야기도 오만함이 핵심 주제가 된다. 다만, <니벨룽겐의 노래>와의 차이는 인물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이는 기사도의 두 번째 요소 명예/체통과 이어지는데, 죽음 자체보다 명예를 얻는 것이 이들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다. 영웅들이 전투에 나가기 전 눈물을 흘리는 귀부인들의 안녕을 받는 모습은 마치 부인들에게 받는 그 인정의 가치가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는 것만 같다. 이는 확실히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죽음이 다뤄지는 모습과는 대비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는 죽음이라는 관념이 인간의 존재론적 위기로 표현된다. 주인공 길가메시는 친구 엔키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의 길을 걷기 위해 영웅의 모험을 떠나게 된다. 결국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 문명이 존재해온 시간만큼이나 오랫동안 존재해 왔고, 인간이 극복하고 싶어 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나타나는 죽음에 대한 초연함은 마치 죽음을 극복한 사람들을 보는 것만 같다. 이를 기독교 세계관에 기반을 둔 중세 문학의 특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의 희생으로 인해 천국에서 영혼의 영생을 약속받은 중세의 사람들이기에 죽음보다 명예와 순결함을 더 중요시 할 수 있는 것이고, 어떤 의미로 죽음을 ‘극복'한 것이다. 이는 뤼디거가 고뇌하는 장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고귀하신 왕비시여! 저는 당신을 위하여 저의 명성과 목숨을 기꺼이 바치기로 당신에게 맹세했사옵니다. 그러나 영혼까지도 바친다고는 맹세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 신의 명으로 나에게 제공된 모든 것, 나의 모든 명예, 나의 충성, 나의 궁정의 규율, 이 모든 것을 나는 이제부터 포기해야만 하는구나. 오, 하늘에 계신 신이여, 어째서 죽음이 나로 하여금 이러한 치욕을 면하게 할 수 없단 말입니까!’


기독교 세계관에서 나타나는 생명과 영혼의 이분법적 논리에 따라, 등장인물들은 육체가 죽을지언정 영혼은 살아남는다는 것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 친분을 맺은 부르군트인들과 싸워야하는 뤼디거는 명성과 목숨을 바칠지언정 ‘영혼’의 고귀함을 위협받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것이고, 이는 중세 기사도의 정신의 일환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섬김’의 정신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역설적이면서도 가장 중세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섬김은 대표적으로 기사들이 주군을 섬기는 주종관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권력의 위계질서가 서사의 핵심에 자리 잡은 것이다. 크림힐트와 브륀힐트가 자신의 남편의 신분을 두고 싸우는 장면은 이야기 속 비극의 점화 역할을 한다. 브륀힐트는 크림힐트에게 그녀의 오빠이자 자신의 남편 군터를 지크프리트보다 상석에 올려놓아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브륀힐트의 도발은 크림힐트를 자극해 지크프리트와 함께 예배당에 군터 부부보다 먼저 들어가게 되고, 브륀힐트와 군터의 첫날 밤의 비밀을 폭로한다. 분노한 브륀힐트와 그녀의 남편 군터의 훼손된 명예를 복수하기 위해 군터의 부하 하겐이 지크프리트를 살해한다. 2부에서는 과부가 된 크림힐트가 하겐에게 복수하기 위해 훈족의 왕과 결혼해 친척들을 죽이기 위한 계략을 꾸미게 된다. 주종관계를 두고 일으킨 싸움이 이 복수극의 핵심적인 동기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누가 섬기고, 누가 거느리느냐가 중세적 패러다임의 핵심적인 가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아이러니는 섬김의 대상이 신이 아닌 주군, 즉 또 다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금기시되는 우상숭배의 모습과 가까운데, 이는 앞에서 설명한 성물에 대한 인간의 집착과도 함께 해석 해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가장 반 기독교적 행동을 기사도라는 이름 아래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어디까지나 종교적 가치판단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기에, 중세 문학의 패러다임을 현상 자체로서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세의 세계관이 기독교적 문화에 기반을 두었다고 하더라도, 신의 이름 아래 행해진 수많은 위선은 그들의 교리와는 어긋나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런 우상 숭배적 행동들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기 보단, 그 자체를 중세적 특징의 일부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런 섬김의 정신이 갖는 의의는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가장 악랄한 인물로 표현되는 하겐의 행동들을 정당화 해준다는 데에 있다. 하겐이라는 인물을 생각하면 표면적으로 기사도 정신과는 멀어 보이는 그의 행동들이 먼저 떠오른다. 지크프리트를 뒤에서 창으로 찌른 행위, 사제를 물에 빠뜨려 죽여서 예언을 깨뜨리려한 행동, 왕의 어린 아들을 죽이는 잔혹한 행위까지, 얼핏 보기엔 극악무도한 악당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그의 행동들은 주군의 생명과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설명이 가능하다. 크림힐트가 훈족의 나라로 군터와 그의 형제들을 초대했을 때, 하겐은 유일하게 그녀의 계략을 눈치 채고 끝까지 만류한다. 이때 군터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하겐이 지크프리트를 죽인 죄책감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고, 기젤헤어는 그에게 남아있으라고 충고한다. 이때 하겐은 발끈하여 같이 동행하겠다고 선언한다.


‘그 누가 저보다 용감하게 훈족의 궁정으로 말을 달려 함께 전하들의 여행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저는 이를 허용하지 않겠사옵니다! 전하들이 이제 전하들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시니, 저는 전하들께 저의 용감성을 입증해 보이겠사옵니다!’


여기서 하겐이 용기 없는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점 역시 기사도 정신과는 동떨어져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는 그의 주인인 군터의 곁에서 그를 지키겠다는 다짐에 더 가깝다.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터를 비롯한 왕족들은 여동생의 나라에 방문하려는 의지를 꺾지 않았고, 이것이 함정임을 알고 있는 하겐은 죽더라도 그의 주군 옆에서 함께 죽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실제로, 2부의 전투장면에서 하겐보다 용맹함을 증명하는 인물은 없다. 훈족의 나라에 도착한 하겐에게 크림힐트가 지크프리트의 죽음에 대해 추궁할 때에도, 하겐은 자신이 살인자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행동의 당위성을 명예에서 찾는다.


‘나는 어김없이 그 유명한 영웅 지크프리트를 죽인 바로 그 장본인 하겐이옵니다. 여군주 크림힐트가 아름다운 브륀힐트를 모욕한 것에 대해서 그는 처절한 속죄를 치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오! .. (중략) .. 내가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면, 나는 당신을 심각한 고통 속에 빠뜨렸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소이다.’


여기서 진실만을 말하려는 하겐의 모습도 기사도적 명예의 일환이다. 반면에, 이런 하겐과는 반대로, 복수심에 사로잡힌 크림힐트는 그녀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속임수를 부리는 인물로 묘사된다. 잠든 부르군트군들을 밤에 몰래 습격하려 시도하고, 디트리히가 인질이 된 군터와 하겐을 명예롭게 대할 것을 부탁했을 때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이야기했다. 하겐 역시 지크프리트를 죽일 당시 그를 속여 뒤에서 배신했지만, 작품의 마지막에서 보이는 크림힐트는 그 누구의 명예도 존중하지 않는다. 크림힐트를 ‘복수의 여전사’로,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의 영웅으로 해석 해 볼 순 없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1부에서 지크프리트의 사망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었다. 브륀힐트의 도발에 대응하는 방식이나, 2부에서 복수를 시행하는 그녀의 모습은 죽은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 아닌, 그저 분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현대에 와서 그녀의 행동이 재해석 될 여지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작품 속 세계관에서 성립된 영웅상에 기반을 두어 해석했을 때에는 그녀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녀의 거짓말은 명예를 저버린 행동으로 해석되어 하겐의 솔직함과 대비되는 효과를 가진다. 하겐은 반면, 결박당해 죽음을 앞둔 순간에서도 가장 기사도적인 모습을 보인다. 끝까지 주인을 배반하지 않고, 그의 시체 옆에서 목숨을 끝마친다.


‘나는 진심으로 서약했나니, 내가 모시는 군주가 한 분이라도 살아 계시는 한, 그 보물을 어느 누구에게나 보여주지도, 돌려주지도 않을 것이오.’


중세의 기독교관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기사도 정신에 입각했을 때, 하겐의 기사로서 지녀야할 순수성과 탁월한 영웅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니벨룽겐의 노래>의 진정한(하지만 숨겨진) 영웅은 하겐일 수밖에 없다.


정리하자면, 중세 독일의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는 당시 유럽의 기독교적 세계관과 그에 기반을 둔 기사도 정신과 같은 모티프들이 활발하게 나타나는 작품으로, 현대의 독자들이 흔히 중세 판타지적 클리셰라고 이야기할 요소들의 근원이 되는 작품이다. 중세 문학에서 숱하게 나타나고 현대에 반복되는 성물과 보배의 존재, 그리고 그것이 유일신 종교의 반영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유일신의 관념이 자리 잡으면서 생겨난 변화로 신과 인간의 거리의 극대화를 예로 들었고, 그 간극을 채워주기 위해 성물과 같이 신의 힘이 깃든 물체나 종교적 의식 등이 사용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신을 섬기는 행동보다는 명예와 군주에 대한 복종이 더 높은 가치로 평가받는 기사도 정신이 작품 속에 강하게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 근거하여 작품 속에 나타난 영웅상을 가장 용기 있고, 군주에게 복종하며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했고, 이런 영웅상에 근본적으로 가장 걸맞은 인물은 작품 내에서 가장 악랄한 인물로 표현되었던 하겐이라고 이야기했다. 현대적으로 하겐이라는 인물을 해석 해 보면, 타협하지 않으며,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 신념이 그의 다소 잔혹한 행동들을 정당화해준다고 가정하면 어떤 순수함과 고귀함 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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