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시발점이 된 서사시
트로이아 전쟁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 아폴론에 의해 전염병이 퍼진 아카이오이 진영의 지휘관 아가멤논과 가장 용감한 장수 아킬레우스의 말다툼 끝에 아가멤논은 그의 연인 브리세이스를 빼앗아 간다.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어머니 테티스는 제우스에게 가 아가멤논이 아들에게 경의를 표할 때까지 적군인 트로이아인들에게 승리를 내려달라고 간청한다. 테티스의 청을 받은 제우스는 아가멤논을 속이기 위해 그에게 꿈을 보내 트로이군이 패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전의가 상승한 아가멤논은 휘하의 오뒷세우스의 지지를 받아 전투를 위해 진영을 가다듬는다. 아킬레우스가 빠진 아카이오이 연합군에는 아가멤논을 비롯해 오뒷세우스, 디오메데스, 메넬라오스, 네스토르, 아이아스들 등 용맹한 명장들이 있었고, 트로이아군에는 헥토르를 선두로 내세워 프리아모스, 글라우코스 등이 전투에 참여한다.
한편 이 전쟁의 미래에 대해 의논하던 올림푸스의 신들은 각기 다른 진영의 편을 들며 전쟁을 부추긴다. 전투가 진행되며 트로이의 명장 헥토르의 활약을 통해 아카이오이 진영에서 아가멤논과 오뒷세우스를 비롯한 장수들이 부상을 입고 전투는 트로이 진영이 유리하게 가져간다.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를 설득해 그가 다시 전장으로 돌아올 것을 요구하나 아킬레우스는 거절하고, 대신 그의 친구 파트로클로스에게 자신의 갑옷을 입혀 전투에 참여하게 한다. 헥토르는 파트로클로스를 죽이고, 그가 입고 있던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착용한다. 아카이오이 군은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사수해 퇴각한다.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어머니에게 부탁해 헤파이스토스에게 갑옷을 새로 받는다. 아가멤논과 화해한 그는 다시 전투에 참여한다. 이 때 신들도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아테나, 헤라, 포세이돈, 헤르메스 등은 아카이오이 군의 편에서, 아폴론, 아르테미스, 아프로디테, 아레스 등은 트로이아 군의 편에서 싸운다. 아킬레우스의 참전으로 전세는 아카이오이 군에게 기울게 되었고, 헥토르와 대면한 아킬레우스는 그를 죽인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마차에 매달아 승리를 기념한다.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는 아카이오이 진영에 홀로 찾아가 몸값을 지불할 테니 아들의 시체를 돌려줄 것을 부탁하고, 아킬레우스는 허락한다. 트로이아 진영은 헥토르의 장례를 치른다.
<일리아스>는 <오뒷세이아>와 함께 호메로스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서사시로, 트로이아 전쟁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후대 그리스로마신화의 근간이 되었다. 현대에 와서도 다양하게 각색 및 발전되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트로이아 전쟁을 영화, 소설, 만화책 등 다양한 매체에서 한 번씩은 접했을 것이다. <일리아스>가 이 천 년을 넘는 시간동안 살아남아 고전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이 작품의 주제가 사랑과 우정, 명예와 교만, 그리고 운명론과 같은 근본적인 인간심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또한, 외부의 힘에 의해 정해진 운명 앞에 놓인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탐구도 담고 있다.
사랑과 우정
사랑은 이 작품의 세계관에서 가장 핵심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주제다. 우선, 트로이아 전쟁의 발발 원인에는 사랑이 있다. 불화와 이간질의 여신 에리스는 훗날 아킬레우스의 부모가 되는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하자 헤라, 아테네 그리고 아프로디테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 황금사과를 선물한다. 세 여신은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에게 승부를 결정지어달라고 하고, 각기 다른 선물을 약속한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하고,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헬레나를 그녀의 남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에게서 빼앗아 파리스에게 선물하고, 메넬라오스는 아카이오이 연합군을 결성해 트로이아와 전쟁을 선포한다. 전쟁의 씨앗이 결혼식에서 시작되었고, 아카이오이 군의 결성 역시 아내를 되찾으려는 메넬라오스에게서 시작되었다. 비단 이성간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우정이나 가족애도 작품의 서사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아가멤논에게 분노해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있던 아킬레우스는 형제보다 친했던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해 전장에 복귀한다. 6권에서는 헥토르가 전장에 나가기 전 그의 아내 안드로마케와 아들 아스튀아낙스와 눈물의 이별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헥토르의 사망 후 오열하는 그의 부모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적진에 홀로 들어가는 아버지 프리아모스의 이야기도 중요한 장면 중 하나다. 이렇게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 잡은 사랑은 시대와 문화를 막론한 가치를 반영한다.
운명과 자유의지
<일리아스>에서 인간의 운명은 신들에 의해 결정된다. 전쟁에 나서기 위해 준비하는 아킬레우스에게 헤라 여신의 힘을 받은 그의 말 크산토스가 아킬레우스에게 파멸의 날이 임박했다고 경고한다. 아킬레우스의 운명을 암시한 것이다. 헥토르도 아폴론의 경고를 받지만, 그의 운명에 제우스가 관여한다.
“제우스가 저울대 중간을 잡고 저울질하자 헥토르의 운명의 날이 기울어져 하데스의 집으로 떨어졌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는 각각 아카이오이 진영과 트로이아 진영의 명장들로, 전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들도 신들의 심판 앞에서는 무력하다. 하지만 작품이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운명 앞에 놓인 무의미함 같은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워가는 자세, 즉 자유의지다. 전쟁의 승패를 떠나서, 더 근본적인 싸움은 죽음과의 싸움이고, 이는 아무리 유능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도 피해갈 수 없는 싸움이다. 아킬레우스는 운명에 이렇게 대답한다.
“크산토스여! 왜 내게 죽음을 예언하는가?
정말 너답지 않구나.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죽을 운명임은 나도 잘 아는 바다.
그렇다 해도 트로이아인들에게 전쟁이라면 신물이 나도록 해주기 전에는 나는 결코 쉬지 않으리라.”
죽음을 대면하는 헥토르 또한 대답한다.
“이제 사악한 죽음이 가까이 있고
더 이상 멀리 있지 않으니 피할 길이 없구나…
(중략)
… 이제는 운명이 나를 따라잡았구나!
하지만 내 결코 싸우지도 않고 명성도 없이 죽고 싶지는 않다.
후세 사람들도 들어서 알게 될 큰일을 하고서 죽으리라.”
그리고 그들은 용맹하게 죽음의 도전을 받아들인다.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은 것은 헥토르다. 하지만 아킬레우스 또한 최종적으로 운명을 거역하지는 못한다. 전투에서 승리했을지라도, 뒤꿈치에 화살을 맞아 죽게 되는 결과를 회피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필패(必敗)다. 결과는 허무할지라도, 이들은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이는 죽음의 결과보다는 삶의 과정에 더 의미를 두는 자세, 그리고 그런 사람을 찬양하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시사 하는 것일 수 있다.
교만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신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전투에 임하는 태도는 영웅상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들의 교만의 결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헥토르를 죽인 후 아킬레우스의 행동은 정의나 명예보다는 증오와 복수심이 그의 동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헥토르의 시신을 마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그의 죽음을 치욕스럽게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피의 복수'라는 문화가 있어 죽은 시체를 훼손하는 것이 그리 야만적인 행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킬레우스의 행동에서 정의와 복수심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함 또한 알 수 있다. 애초에 그는 개인적인 분노 때문에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는 트로이아 군이 아카이오이 군을 열세로 몰아넣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가 직접 나서서 싸우기를 거부해 그의 갑옷을 대신 입고 전장에 나가게 되었고, 그 결과로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했다.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점은, 그의 교만함이 지금까지의 비극으로 이어진 원인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즉, 아킬레우스가 죽음을 겁내지 않고 싸우기로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경과를 봤을 때 그는 ‘운명에 거역하는 용기 있는 자'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다 수세에 몰린 자'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헥토르 역시 유사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전투에 나가기 전, 그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말린다. 이에 그는 “겁쟁이처럼 싸움터에서 물러선다면” 그 민망함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말한다.
“어느 누구도 내 운명을 거슬러 나를 하데스에 보내지 못하오.
그러나 인간들 가운데 누구도 운명은 피하지 못했소.”
흥미롭게도, 그가 정의하는 운명은 ‘삶'이고,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 ‘죽음'이다. 앞서 언급한 자유 의지적 측면에서는 매우 적절한 예시임과 동시에, 교만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그의 죽음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공유하는 공통적인 특성이다. 이것이 영웅의 요소인지,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진 교만인지는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인간이 가진 이러한 이중성이 잘 나타났다는 점은 이 작품이 훌륭한 고전으로 평가받는데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영웅 대 영웅
이런 인간주의적 주제를 가장 잘 반영하는 인물들이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이고, 이들을 <일리아스>의 중심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어느 한 쪽은 전쟁의 승리의 편과 다른 한 쪽은 패배의 편에 있다는 차이를 제외하고 이 둘은 굉장히 유사한 점이 많다. 두 인물 모두 사랑과 명예가 가장 큰 동기부여의 요소로 작용한다. 아킬레우스에게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이고, 헥토르의 아버지가 아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그를 찾아왔을 때 그를 존중하고 명예롭게 대했다. 헥토르의 장례기간 동안 휴전을 약속하기도 한다. 헥토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며, 이는 가족들과 이별하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두 인물 모두 신들에게 죽음에 대한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쓴다. 끝내 죽음을 맞이한 헥토르와 이 작품 내에서만큼은 살아남은 아킬레우스는 거울처럼 서로를 닮아 있다. 결국 삶과 죽음이라는 ‘결과 값'만 다른 셈인데, 이 결과는 그 과정에서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말로, 아킬레우스가 살아남는다 해서 그가 영웅의 표상이고, 헥토르가 죽는다 해서 그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용맹하게 싸운 과정이 의미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반대의 편에서 맞서 싸우는 것일까? 원형적인 영웅이 겪는 모험담의 서사를 적용했을 때, 영웅은 자신의 운명을 가로막는 악과 맞서 싸워 이기고, 비로소 성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선을 상징하는 영웅은 아킬레우스고, 악당은 헥토르가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일리아스>에서는 이 고전적인 영웅의 모험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적'이라 할 수 있는 면모는 헥토르에서 더 잘 나타난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능욕하며, 분노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헥토르는 더 가족적인 모습과 침략자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수호자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 둘은 서로 ‘사랑하는 어떤 것'을 위해 싸우고 있음은 분명하다. 여기에서 <일리아스>의 복잡성이 나타나는데, 이 작품은 절대 선과 절대 악을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 작품에서 친구의 죽음에 분노해 복수를 위해 전장에 뛰어들어 폭주하는 아킬레우스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적군을 베는 헥토르는 근본적으로 같다.
신과 함께
이런 선과 악의 양가성은 올림포스의 신들에게서도 잘 나타나있다. 아킬레우스가 다시 전투에 참여하기로 선언하자,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신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연다.
“그대들은 모두 트로이아인들과 아카이오이족을 찾아가
저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어느 한 편을 돕도록 하시오.”
“신들은 양편으로 갈라져 싸움터로 달려갔다.
그리하여 헤라와 팔라스 아테나와 대지를 떠받치는 포세이돈과
남달리 마음이 영리한 행운의 신 헤르메스는 함선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갔다…
(중략)
… 한편 트로이아인들 쪽으로는 투구를 번쩍이는 아레스가 갔고,
모발을 자르지 않은 아폴론과 활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레토와 크산토스와
웃음을 좋아하는 아프로디테가 그와 동행했다.”
유일신 종교에서 신이 상징하는 것이 절대 선, 그리고 그에게 대항하는 사탄이 절대 악을 상징한다고 할 때,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신들은 분열되어 각자 다른 편에 속해 싸우고 있고, 이들은 모두 ‘신’이다. 이 작품에서 만큼은 절대 선이라는 개념은 없다. 관객의 관점에서 이들이 절대적인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극중 대다수의 인간들은 그렇게 보지 못한다. 그들은 경이로움과 두려움의 시선으로 신들을 바라본다. 신들 역시 인간들에게 존경과 복종을 요구한다. 인간은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신은 인간을 보호하고, 인간이 신의 권위에 도전할 때는 엄중히 경고한다.
“나를 자극하지 마라, 무모한 여인이여!
내가 노여워하는 날에는 그대를 버릴 것이고,
지금 몹시 사랑하는 그만큼 그대를 미워할 것이며,
트로이아인들과 아카이오이족 사이에 무서운 적의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되리라.”
헬레나가 불만을 표출하자 아프로디테가 한 말이다. 그리고 신들이 분노하면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자연적 재해로 나타난다. 아가멤논이 아폴론의 사제를 모욕하자 아폴론은 아카이오이 진영에 전염병을 내렸고, 아킬레우스가 강물 안에서 군인들을 학살하자 강의 신이 분노한다. 이처럼 신들과 인간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경계선이 있고, 인간들은 쉽게 그 선을 넘지 않으며, 신들은 인간들을 그들 아래에 둔다. 그리고 당시의 인간이 이해할 수 없었던 자연현상은 신들의 비범한 능력으로 귀인되었다. 하지만 <일리아스>에서 진짜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신들의 인간성'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신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인간의 전쟁에 참여한다. 또한,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는 전투 중 인간에 의해 상처를 입기도 한다. 신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제우스를 묘사할 때도, “음흉한 크노소스의 아들”, 혹은 “교활한 제우스의 계략”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신들 사이의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함은, 이들이 어느 하나의 절대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고, 이는 인간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신이 인격화됨과 동시에, 인간의 신격화 또한 이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는 신과 대적할만한 초인적인 인물들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여”, 혹은 “지혜가 제우스 못지않은 오뒷세우스, 필멸의 인간은 어느 누구도 오뒷세우스와 겨룰 수 없었다오”와 같은 표현들을 줄곧 볼 수 있다. 이는 일전에 ‘운명을 거역하는 자유 의지적 인간'의 테마와도 연결된다. 영웅은 신들의 권위에 도전하여 운명을 거역하는 인물인 것이다. 인간의 신격화의 또 하나의 요소는, 전지적 관찰자의 시점에 놓인 관객이다. 단순히 올림포스와 전장을 번갈아가면서 서사가 진행된다는 점이 아니라, 종종 관찰자가 주관적인 해설을 하는 대사를 찾아볼 수 있다.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 대신 전장에 나가겠다고 제안하자, 화자는 탄식한다.
“이렇게 말하고 간청한 파트로클로스야말로 참으로 어리석도다!
사악한 죽음과 죽음의 운명을 자청한 결과가 되었으니.”
이것은 복선이라는 서사적인 장치로 사용됨과 동시에, 관객들 신들의 눈높이, 혹은 그 이상에 위치시키는 효과가 있다. 절대가치의 중화는 신을 인간과 같은 높이에 두어 역으로 인간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인간주의적 가치를 나타낸다. 이는 철학적 사유의 근간에 인간을 위치시키는 그리스 철학의 사상을 반영하거나,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일리아스>는 사랑과 우정, 교만 등 인간의 심리적인 특성을 매우 잘 반영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삶에 대한 의미를 탐구하는 운명론적인 관점과 동시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주요 인물들에게 잘 반영되어 그들을 살아있는 인물들처럼 느껴지게 하는 생동감이 있다. 또한 신들과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도 담고 있어 인문주의적인 사상의 뿌리가 돋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은 기원전 7~8세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구전으로 전파되었다. 따라서 호메로스에 의해 기록되기 전까지 전달되었던 과정 속에서 정제된 내용이 지금 우리가 접하는 <일리아스>인 것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에게 제일 보편적으로 의미 있는 원초적인 주제들이 서사 속에 담겨있고, 그것이 너무나 강력해서 오랜 세월동안 ‘살아남았다'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을 것 같다.
인용된 <일리아스>의 본문 내용은 최병희 번역본을 참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