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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 세상에서 '모르는 즐거움' 찾는 법

by merryblack


"당신이 힘들 때, 당신을 위로하는 음악은 무엇인가요?"

내가 운영하고 있는 책모임은 모임을 시작하기 전, 분위기를 풀고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가벼운 질문에 답을 나누며 인사한다.


참여자로부터 여러 노래가 나왔다. 가사가 아름다운 합창 영상, 약간은 촌스럽지만 따뜻한 가사로 위로받는 오래된 발라드, 나만의 숨듣명, 사회비판적 펑크락. 비교적 유쾌한 시작이었다.


나는 수줍게 "모두가 질풍노도시기에 라디오헤드 한 번쯤은 들어보셨잖아요?"라고 말을 붙이며 'You and Whose army?'라는 노래를 틀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 OST로 쓰인 노래였다. "Come on"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내게 '어디 한번 들어와 봐, 네가 군대를 몰고 와도 난 끝까지 싸울 거야'라는 의지로 들렸다. 너무 우울할 때, 옥상에서 담배를 뻐금 뻐금 피우며 환락의 도시불빛을 바라볼 때, 내게 달려오는 세상 앞에 홀로 서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주는 음악이었다. 영어로 된 가사를 제대로 해석해본 적은 없었지만, 나는 매번 그런 뜻으로 들었다.


그때 한 분이 갸우뚱했다. 이 노래를 알고 있지만, 가사의 뜻은 그런 뜻이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금세 땀이 났다. 멍청한 게 탄로 난 걸까. 내 오롯한 느낌들, 그 밤의 시간들마저 바보 같아지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뜻은 아닐 수 있지만, 제게는 그렇게 들렸어요. 제가 영어를 잘 몰라서요' 라며 어색한 웃음과 함께 급하게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을 마무리했다. 얼음 같은 분위기를 깨려 했으나 내 안의 무언가가 먼저 깨지고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모르는 것을 쉽게 부끄러워했다.

나이 터울이 많은 언니나 형, 오빠, 누나랑 같이 지내본 사람들은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언니는 나와 말싸움을 할 때마다 '너 그 말 뜻을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거야?' '방금 네가 사용한 단어의 정의는 뭔데?'하고 따져 물었다. 누가 단어를 사전에서 하나하나 찾아서 배우나? 여러 대화와 드라마와 소설책 속에서 단어의 의미를 익혀왔을 뿐이지 그 정확한 정의를 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언니에게 말싸움으로 질 때마다, 내가 아는 것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 되었다.


자신감이란 단어의 뜻을 풀어쓰면' 나를 믿는 느낌' 일 것이다. 더 이상 고약한 말싸움을 하지 않는 나이가 되어서도, 나는 나를 믿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을 의심했고, 내가 직접 겪은 경험조차 흐릿하게 만들었다. 내가 하는 말들이 제대로 된 말들인지, 알고나 쓰는 말인 건지. 말들을 제대로 어순에 맡게 뱉고나 있는지 의심했다. 의심되는 정보들은 축적되지 않는다. 나는 좀처럼 '안다'고 믿지 않았고, 그렇기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틀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으론 그래. 그렇지만 틀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 내가 아는 정보는 대부분 제대로 된 것이 없으니까."

누군가 나에게 어떤 정보를 물었을 때, 대체로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속시원히 장담하는 것이 없었다. 고작 추측이었고, 내 추측이 맞았을 때는 안도였지만, 틀렸을 때에는 '역시나 나를 믿으면 안 돼'로 귀결됐다. 당연히 자신감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기억력 따위 필요 없었다. 앞에 있는 것을 따라 그리면 됐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을 그려댔고 세상을 묘사했다. 그림을 그릴줄 안다는 작은 재주로 나는 예술을 전공했는데, 예술학에서 이런저런 얕은 이론들을 만났고, 그를 바탕으로 연결고리를 만들며 말을 하는 재미를 깨닫게 되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 있어서도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게 아닌 직관에 의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에는 N들이 넘쳐났다. 우리는 주로 단편적 기억들에 의존한 연상기법을 사용했다. 한 단어가 한 단어로 옮겨가고 그것이 다시 서로 붙었을 때 그 접착제가 뭔지 발견하며 대화를 즐겼다. 개념과 개념을 뛰어넘으며 터무니없는 말들, 증명되지 않은 과학들로 내 머리 뒷속에서 3차원적으로 펼쳐진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 알기 위한 것이 아닌, 대화 그 자체가 목적인 대화는 내게 있어 유희였다.


영화를 전공한 친구랑 대화를 나누며 7살 아이들처럼 서로 각자 자기 얘기만하고 집단적 독백을 했지만, 종국에 '너도 나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하나의 공통된 서사를 찾았을 때 마치 체호프 희곡을 읽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재미.

동기와 오랜만에 학창 시절에 자주 가던 카페에서 만나, 이 동그란 동굴 같은 카페가 우리만의 헤테로토피아였음을 떠올리는 재미.

사랑하던 사람에게 나에게 있어 당신의 질량이 커서 시공간이 왜곡되어 버렸고, 당신과의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는 낯간지러운 말을 하기도 했고 유독 서로가 인력을 강하게 느끼는 이유가 뭘까도 궁금해했다.

그 사람과 헤어진 뒤 혼자 남아, 자취하는 방의 바닥을 쓸며 이 정도의 공간이 딱, 나에게 맞아. 더 컸으면 이 바닥과 관계 맺지 못하고 지쳐 쓰러졌을 거야. 라며 하이데거가 말한 공간개념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때 사용된 개념들은 나를 똑똑하게 보이게 하기 위한 장식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재미가 있었다. 정확하게 그 전부를 알지 못해도 떠드는 재미 말이다. 그 개념이 삶의 순간에서 어떤 의미를 도출해 내는 도구로 적절히 쓰였는지, 내게 예술적 경이로움과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는지 그게 전부였다.

정확한 지식이 뭐가 중요한가. 학자들의 말들이 만들어진 이유조차, 삶이 맞고 틀렸는지 재단하기 위함이 아닌데 말이다.


그때까지는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디 나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은 없으니, 멍청함을 들킬 순간도 없었고, 그 지식이 얼마나 얕은지 탄로 나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나는 내가 상상력이 좋고, 연상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단편된 지식과 일상을 연결하는 것이, 어느 정도 예술에 있어서는 유효했고 스토리텔링에 있어 중요한 재치가 되었다.


서른이 넘어 예술계를 벗어났고, 시민사회 쪽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자연스레 사회학에 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학자들로부터 새로운 개념을 배우게 되었고, 익숙하게 내 안에서 연상을 펼쳐나갔다.


어느날은, 학자 앞에서 그가 소개한 개념에 대해 나의 관점에서 어떻게 느껴졌는지 뜨겁게 떠들었다. 오늘 처음 배운 개념이,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여러 개념들과 이어지고, 또 나의 일상과 연결되는 걸 느꼈다는 말이었다.


나의 말을 들은 그 학자는 "그건 그런 의미로 쓰인 게 아닌데"라고 말했다.

아마 한 개념이 적확히 사용되어야 할 때가 따로 있었나 보다. 그의 말은 나를 향한 공격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그 의미를 정확한 자리로 되돌려 놓으려는 노력을 했을 뿐이었겠지만, 내게는 '너 그 말의 정의를 제대로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거야?'라는 말로 들려왔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와서 수치심에 엉엉 울었다.

멍청하고, 잘 모르고,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게, 이곳은 너무 어려워 보였다.

점차 개념들은 더 이상 유희보다는 정확한 정보의 역할을 했다. 진실과 진리는 중요해졌다. 정확한 기억력도 요했다. 모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은 나를 상상력으로부터, 자신감으로부터 박탈시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입이 싫어서 나는 말을 아끼기 시작했고, 정확한 정보가 아닌 글을 쓸까 봐 글도 쓰지 못했다.


전체를 알지 못하면 일부조차 아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나로부터 내가 아는 모든 개념들을 박탈했다. 선에서 면으로, 공간으로 확장되고 그 안에서 유영하던 나의 세계관은, 다시 1차원으로, 순서대로 차곡차곡 나열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다가왔다. 그 선상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 말을 하다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까먹기도 했다. 나는 다시, 모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의심했고, 기억력이 너무 나빠져 일상생활도 사회생활도 어려운 지경에 달했다. 치매를 걱정하던 때에, 서점에서 '어제 일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기억력 수업'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저자 호슬러는"나는 기억하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이 실제로 자신을 한계 짓고 기억력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자신에 관해서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유일한 내용은 당신의 믿음뿐이다. 믿음의 내용을 바꿔라."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믿음 대신 기억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멍청하다'라고, '기억력이 안 좋다'라고 말해왔던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악순환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믿을 수 있고 기억할 수 있을 거야. 다짐하며 계속해서 기억하려고 애쓰고, 메모하고, 공부했다. 그러나 어떤 정보가 입력되는 순간에도 '어차피 까먹을 텐데'라는 말이 머릿속을 순간 지배해 버리고 집중력을 잃는 일이 반복됐다.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럼에도 지금 하는 일에 정을 붙이고 싶었다.

나는 어떻게든 공부를 하려고 책을 읽고 세미나를 열었다. 멍청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보다 많은 일을 하려 했다. 매일 뉴스를 스크랩했고, 매일 저녁 오늘 배운 것을 집에 가는 길에 떠올리고 정리했다. 손에는 철학책이나 소설책보다 사회학책을 들었다. 곧 여러 사회학자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그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것을 내가 정확하게 아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새로운 것을 탐구하지만, 그것이 곧 즐거움은 아니었다. 자신감도 늘지 않았고, 되려 말실수는 늘었다. 대화는 점점 더 재미없어졌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왜 내게 좀처럼 배움은 즐거움이 아닌 걸까.

왜 완전하지 않은 앎은 환영받을 수 없는 걸까.

왜 모르는 것은 늘 수치이고 두려움일까.


더욱이 슬픈 것은, 글을 쓸 수 없게 되면서 창작까지 멈추었다는 것이다.

창작은 녹슬었고 나는 무엇도 못할 것 같은 사람이 되어버리다 못해즐겁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멍청함을 가리기 위해 야근하고, 무리하다가 삐끗하는 날엔 좌절스러움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야근 끝에 컵을 씻으면서 생각했다.

오늘 인터뷰를 하며 나는 왜 그렇게 말을 얼버무리고 바보처럼 말했을까. 나는 또 어떤 실수를 할까,

만약 내가 지쳐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내게 실망한다면.

그 실망으로 나를 띨띨하고 덤벙거리고 대충 하는 아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러다 (머리가 멍청한 대신) 노력이라도 한다는 이미지조차 잃어버리면. 나는 어떡하지.

두려워지고 손이 떨렸다.




모든 대화가 즐겁지 않은 요 며칠, 어깨가 축 쳐진 상태로, 외근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교대역 역사에 내 이름이 울려 퍼졌다. 뒤돌아 보니 반가운 친구가 서있었다.

예전 20대 초반, 사회문제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됐을 때 같이 공부하고 수다를 떨고 술을 마셨던 무리 중 한 친구였다. 그 뒤로도 우연히 두 번이나 교대역에서 마주치고 난 뒤에는, 이것은 운명이다 싶어서, 함께 저녁식사를 가졌다.


우리는 이자카야 바에 앉아, 요즘 사람들의 시대정신은 무엇인지. 인간은 선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지, 각자의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지, 불안을 회피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스스로에게 보상해줘야 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섞어가며 세상을 논했다. 알콜의 힘으로 우리는 티키타카에 속도를 냈다.


친구는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예전에 우리가 골몰하며 빠져들었던 시간들, 철학이든, 사회학이든, 마르크스든, 페미니즘이든 뭐든 같이 읽었던 그 옛날이랑은 정반대로 살고 있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내게 쪽지로, "오랜만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내게는 즐거운 대화였을까?

그 친구를 만난 것은 좋았지만, 어딘가 외피로 둘러싸여 어색했던 그 긴장들을 떠올렸다. 나는 잔인하게도, 그 긴장이,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이미 흔한 이야기였으며 그 생각이 들키지 않도록 내가 가져야 했던 긴장임을 깨달았다. 일상에 치여 사회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어려운 친구에게, 이미 나는 어디선가 숱하게 들어본 사회학자들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내가 친구에게 꺼낸 말들 속에는 상상력이란, 당신에 대한 관심이란, 새로움이란 없었다. 친구에게 집중하지 못했던 나에게, 무엇보다 그 친구와의 시간을 즐겁게 느끼지 못한 나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즐거웠으면 좋았을 텐데. 아마 나는 또 틀린 말을 하지 않을까 긴장해 있었던 것 같다. 왜 난 그 앞에서 쉽게 멍청할 순 없었을까? 10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멍청하다는 걸 보이기 싫었던 걸까?


나는 친구와의 대화를 비롯해, 최근 나의 모든 대화들을 되돌아보았다.

상대가 하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만 판단하던 나. 들떠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것을 전혀 새롭지 않다고 봤던 나. 그 친구들에게도 차갑고 아픈 경험이었겠구나. 다시 한번 별로인 나를 발견했다.


혹시 내가 요즘 꺼내는 말들이 대부분 정답이 정해져 있는 말들이 아닐까? 옛날에는 우리 모두 멍청했기에 세상을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가 컸던 걸까? 지금도 모르는 게 많은데 왜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가 없을까.

혹은 알아가는 재미가 아니라, 멍청하다는 재미는 아니었을까?


친구에 대한 애정의 힘을 빌어, 나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 본다.

앎의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름의 즐거움도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제대로 몰라도 아무 말을 마구 떠드는, 상상의 세계를 펼쳐보는 귀여운 친구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별로인 사람으로 만들었던 순간들을 되돌아본다.

만약 누군가가, 아무 말하는 나를 귀엽게 봐주었더라면. 신나서 떠드는 모습에 같이 흥을 내주었더라면.. 조금 더 포용력 있는 세상이었다면...


우리는 몰라도 괜찮을까?

몰라서 떠드는 건 위험하기만 한가?

혹은 위험하기 때문에 재미있을 수도 있을까?




그 질문에 이어 곧장 떠오른 단어는 '반지성주의'와 '엘리트주의'였다.

이런 내 사고가 반지성주의를 용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혹은 어쩌면 내 안에 엘리트를 향함 반감과 부러움이, 억울함이 뾰족하게 올라오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전에 애인과 엘리트주의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한 적이 있다.

세상에 엘리트는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것이었다.


애인은 엘리트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현재의 닫힌 공론장에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은 오직 합리성뿐이라며, 더 열린 공론장을 만들어가려면 합리적이지 않은 다양한 의견들과 표현들도 들어가야 한다 말했다. 특히 과학자와 경제학자들이 그들의 학문 내에 이미 '불변진리 없음 / 예측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문성으로 모든 정당성을 독점한다고 비판했다. 지식인들이 내세우는 합리성, 진리가 유일한 권위로 인정받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나는 엘리트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아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어슐러 K. 르귄의 <버려진 자들> 속 주인공 쉐벡과 같이, 사유재산이 없고 아무리 평등하고 자유로운 이상적인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 세상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고, 지적욕망을 인정하고 탐구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쉐벡은 자신의 물리학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기 위해 결국 새로운 세계, 신자유주의적, 경쟁사회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또 다른 억압과 차별을 겪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결국 어떤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인지는 모른다. 다만 단순한 선택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막 활동가가 되어,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고,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고, 동시에 나를 증명하고 싶은 내 안의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어 엘리트들의 건너편, 반지성주의자들에 대해 생각한다.

반지성주의는 지식인, 학문, 비판적 사고, 전문성에 대한 불신 또는 거부의 태도나 경향을 말한다. 좌파 엘리트는 사회적 소수자들과 약자들의 상황에 대해 공부하려 하지 않고 혐오를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들을 '반지성주의자'라고 부르고 있다.

그 대상들은 "페미니즘은 pc주의"라며 정치적 올바름을 혐오하고 직관이나 자기 경험에 기반해서 기존의 규범이나 편견을 그대로 유지한다. 혹은 확증편향적으로 정보를 취득하며 더 극단적으로 우경화되거나 음모론에 빠진다. 본인을 가르치려 들고 바꾸려고 하는 좌파 지식인, 언론을 혐오한다. 현대에는 극우가 있고, 과거에는 '대중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나치가 있었다.


그런데 실상 그들은 반지성주의자라고 하기에는, 그들 대다수는 과학과 기술을 진리로 내세우는 지식인을 신봉한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올랐고, 그래서 보상받아야 하기에 보수 엘리트를 옹호하고 그들의 권력이 지당하다고 믿는다. 윤석열-한동훈, 그 이전에는 황교안-조윤선-우병우 같은 대표적 엘리트들 말이다. 반지성주의자라 해서 지성을 무조건적으로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좌파적 반지성주의도 있다. PC함(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이 도덕적 언어로 고착되는 경우도 있고, 낙인의 도구로 사용되거나 소통을 막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도덕적 우위를 점유한 대중은 '응보적 정의', 잘못한 사람은 용서의 여지없이 응당 죗값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로 개인을 고립시키고 죽음에 도달하게 한다. 이때,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기준이 되는 것 또한 도덕적 진리가 된다. 진리를 무조건 신봉하는 것 또한 반지성주의라는 면에서 좌파적 반지성주의가 성립된다.


모른다는 것의 두려움을 뒤집어, 당당하게 모름을 주창하는 것.

그것은 어떻게 수용받을 수 있고, 또 그것의 한계는 어디에 있을까?

만약 나의 우려처럼 나의 핑계가 반지성적 핑계라면,

그래서 내가 반지성적인 사람이라면, 반지성적인 사람들은, 나는 이야기해도 괜찮나?




이 질문에 대해 한나 아렌트는 '몰라서 떠드는 것보다, 오히려 몰라서 닥치는 게 더 위험하다'라고 단언한다.

한나 아렌트는 진리와 정치라는 글에서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진리가 권력에 봉사하거나, 권력이 진리의 이름을 도용할 때"라고 말한다.


진리는 절대적으로 반박 불가한 것이므로, 논란을 불식하고 논쟁의 종료를 가져온다.

진리가 정치화될 때,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전체주의의 근거가 되고, 과학적 경제적 진리를 기반으로 한 정책은 반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나아렌트는 정치에서 진리보다 의견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진리와 달리, 의견(opinion)은 논쟁을 시작하고, 설득과 숙고로 이끌기 때문이다. 정치는 한 개의 답을 찾는 게 아닌,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조율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므로, 아렌트는 의견을 단순한 '미완성적 지식'으로 보기보다 그 고유한 가치를 인정했다.


중요한 것은 의견이 설득되고 숙고되는 수정되는 과정, 그 안에는 성찰이 있다는 것이다.

'반지성'의 반대는 지성이나 엘리트가 아니라, 자기 성찰이다.

성찰. 나를 되돌아보고 변화시키는 것.

'모름'과 반지성의 차이에는 성찰이 있었다.




성찰이라는 단어를 조금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찰은 살필 성, 살필 찰. 두 가지 같은 뜻을 가진 단어로 이뤄져있다. 왜 살핀다는 말이 두번이나 반복될까?


나는 나의 성찰의 순간들을 떠올린다. 어쩌면 십여년 전 그 친구와의 내가 나눴던 세상, 내가 모르는 상태로 떠들었던 그 시간들이 살피고-살핌받는 시간이 아니었는지 다시금 그들과 나눈, 내가 사랑했던 대화들을 더듬어본다.


"비만인 사람에게, 버스출입구는 너무 좁지 않을까? 이 세상은 너무 마른 사람들 중심으로 이뤄져있어"

"우리는 한번도 여성이 제대로 평가 받는 걸 본 적 없잖아. 진짜로 여성이 더 똑똑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세상이면 어떨 것 같아?"


당시 나는 친구들의 어마어마한 아무말에 놀랐고, 그런 것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기에 내가 가진 협소한 세상을 되돌아보았었다. 그 말들은 그닥 유익한 말들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나의 세상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살피게 했다. 그 아무말이 실현가능한지, 어쩌면 타당할지, 그 말들이 얼마나 재치있는지 느끼고 들여다보았었다. 다시말해, 그 친구와 함께 보낸 이십 대 초반, 아무 말을 떠들었던 그 시간이 좋았던 이유는 새롭게 배우는 시간들이어서가 아니었다. 우리는 엉터리의 말들 속에서 서로를 웃겨하고 살피고 되돌아보았다. 결국 이자카야 바에서 나눈 친구와의 대화가 오늘 나를 되돌아보게 한 것처럼.


나는 그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나를 살피었던 시간만큼, 그들이 나를 살피었음을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세상도 나의 어떤 언어들로 살펴졌을 것이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세상을 살피었을 것이다.


성찰. 살피다는 말이 두번 반복되는 이유는, 함께 해야하기 때문 아닐까. 성찰은 혼자하기엔 너무 아프고 어려우므로, 그렇기에 누군가의 살핌을 필요로 하므로. 안전한 공간에서 변화가 꽃피므로.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일은 수치스럽고 아프지만, 누군가가 함께 살펴준다면 아무말도 가능하므로.




나는 다시금, 아무 말 지껄이는 나를 귀엽게 봐줄 누군가를 떠올린다.

더 나아가, 그 누군가에게 상기되어 신나서 떠드는, 대화의 재미를 다시 되찾는 나를 상상한다.


몰라도 괜찮아.

말하고 떠들고 글을 써도 좋아.

그 말을 서로에게 주고받는, 주눅 든 나와 친구를 떠올린다.


혹여 지성적이지 못할까 봐 말을 잃고, 글을 놓게 된 나 같은 사람이 있을까, 정말 엉망인 긴 글을 늘여놓았다.

오늘의 글쓰기는 또한 그동안 멍청함에 부끄러워했고 말하기를 무서워했던 나를 위한 글이기도 하다.

오늘 나의 글이 '몰라서 입을 다물었던 나와 누군가의 입'을 열게 하길.

나와 세상이 '아무 말하는 자'를 조금 더 살피고 그에게 친절하길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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