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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우 Jul 19. 2019

영화가 시대를 기억하는 방식

국제시장과 박하사탕


<국제시장>과 <박하사탕>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엮어내 한 개인의 삶에 녹여낸다두 영화는 모두 격동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물의 생애를 보여주면서 이를 통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기억하고 있다다른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영화의 시선 또한 판이하다. <국제시장>의 '덕수', <박하사탕>의 '영호'가 살아낸 시대는 어떠하며 시대는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영화는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국제시장>과 <박하사탕>은 나름의 문법으로 답을 내린다.


베트남 아이를 구하려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게되는 덕수


영화의 주인공인 두 인물 '덕수'와 '영호'는 공통적으로 다리를 절게 된다. '덕수는 베트남전에서 적군(베트남군)에 의해 총상을 입었으며, '영호'는 80년 광주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게 된다하지만 두 인물의 '다리를 저는 행위'가 영화 내에서 드러나는 방식과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국제시장>의 덕수는 전쟁 도중아이를 구하려다가 총상을 입게 된다영화는 곧장 목발을 짚은 채로양손 가득 보따리를 들고 귀국하는 덕수의 모습을 담는다다리를 절게 된 남편을 향한 아내의 눈물도 잠시영화는 약 1시간 30분가량의 지난한 삶이 끝났다고 선언하듯, '꽃분이네'로 상징되는 고난의 결실을 보여준다. <국제시장>에서 드러나는 '덕수'의 총상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첫째베트남전에서 '가해자한국의 존재를 지운다영화는 전쟁을 수행할 뿐파괴하지 않으며 평화를 수호하는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의 이미지를 '덕수'를 통해 확립시킨다. '덕수'는 베트남 군인과 싸우지만 빗발치는 총알을 감수하며 베트남 민간인을 구하는 역설을 보인다이 과정에서 '덕수'가 입는 총상은 베트남전의 '가해자한국의 폭력적 이미지를 소거하고동시에 사람을 구원하는 휴머니즘의 표상으로 자리하는 것이다둘째, '덕수'의 총상은 곧 근대화된 한국의 총상이다영화에서 '덕수'의 총상은 '덕수'의 여동생이 시집을 가고, '꽃분이네'를 지켜 가족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희생이다영화에서 '덕수'의 총상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고작 10초 남짓이다이후 영화는 '덕수'의 가정이 급속도로 안정되고 행복해지는 컷을 담아내며 '덕수'의 총상이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영화 속 '덕수'가 죽기 직전까지 다리를 절어야 하는 장애를 지니게 되었음에도 영화는 '덕수'의 총상을 가족들을 위해 희생한 가장에게 주어지는 '훈장'으로 포장한다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읽어낼 수 있다. <국제시장>이 의도한 바처럼영화는 지금의 한국을 만든 아버지 세대의 고난을 기리고 있다더불어 <국제시장>에는 한국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희생이 어쩔 수 없었다는 당위적 시선그러한 과정에서 그들이 겪었을 고난과 고통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근대화라는 목표의 일부로 치부하고 포장하려는 시도도 담겨있다다리를 저는 '덕수'를 향해 흘리는 눈물을 덮어버

리는 더 큰 박수소리에는 이러한 시선을 배제할 수 없다.

총상을 입는 영호, 동시에 순수를 잃는 영호


<박하사탕>의 '영호'의 총상 역시 시대의 산물이다군인이었던 (그리고 이등병이었던) '영호'는 80년 광주를 진압하러 가던 도중 다리에 총을 맞는다그리고 본인도 실수로 한 여자아이를 총으로 살해한다. '영호'는 80년 광주의 기찻길이라는 시공간을 기점으로 순수했던 자신을 잃고 폭력적인 괴물로 변해간다이후 '영호'는 빠르게 폭력의 시대에 순응해간다제대 이후 직업으로 경찰을 택하고 민주화 운동을 하던 대학생들을 고문하고성추행과 불륜을 일삼는다종국에는 300원짜리 커피값조차 고의적으로 지불하지 않는그야말로 '인간 말종'으로 변한다영화는 '영호'의 순수가 점차 폭력으로 물들어가는 그 순간마다 총상의 존재를 소환한다. '영호'가 폭력의 세계로 딛는 걸음의 순간마다 '영호'는 다리의 통증을 느끼며 절뚝거리고그를 비추는 배경에는 어김없이 기차가 지나간다영화는 의식적으로 '영호'에게 총상을 입혔던 80년 광주의 기찻길을 폭력의 순간에 소환시키면서 '영호'를 파멸시킨 원인이 80년의 광주의 비극에 있음을 관객에게 환기시킨다영화는 6.25전쟁과 더불어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순간인 80년 광주를 기점으로 87년 6월과 IMF로 접어들며 폭력의 이데올로기에 순응해왔던파멸하는 한국의 민낯을 '영호'의 총상으로 드러내고 있다


 

'덕수'와 '영호모두 힘겨운 시대를 이겨내고자 하지 않는다그들에게 시대는 그저 운명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저항할 생각도저항할 수 있는 힘도 없다그저 순응하며 살아갈 뿐이다하지만 시대에 순응한 두 인물이 받아드는 결과는 정반대다. '덕수'는 가장으로서 임무를 완수하고 조국 근대화에 일조한 '영웅'이 된 반면, '영호'는 사회 밑바닥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폭력의 괴물이 되었다자신의 시대를 충실히 살아갔음에도 왜 누구는 영웅이누구는 괴물이 되는가답은 '시대'에 있다


시대를 견뎌낸 덕수를 위로하는 건  죽은 아버지의 기억뿐


'덕수'의 시대는 '무게'. '덕수'의 시대는 많은 과제를 '덕수'를 비롯한 시대의 사람들에게 요구한다이들이 요구하는 '과제'는 한국의 성장즉 근대화와 맞닿아 있었다영화 속 '덕수'와 같은 당시 국민들은 작게는 가장으로서의 과제를크게는 조국 근대화의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시대에 놓여있었다. '덕수'는 가장으로서의 과제만 수행했으나 이것이 시대의 과제와 맞물려 비로소 영웅이 될 수 있었다하지만 여전히 '덕수'의 '무게'는 오롯이 '덕수'만 짊어져야 했다. '덕수'의 가족이 모두 한 데 모여 손녀의 노래를 듣는 화목한 순간, '덕수'는 홀로 방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과제'를 부여했던 아버지의 사진을 부여잡고 울먹이며 스스로를 다독인다자신을 짓눌렀던 가장으로서의 무게그리고 조국 근대화에 바친 희생의 무게를 홀로 감당해야 했던 자기 위로의 현장이다시대는 '덕수'를 영웅으로 만들었으나 동시에 고독을 안겼다비정한 시대는 '덕수'의 무게까지 덜어주지 못했고그 상처를 만져주지도 못했다.


'영호'의 시대는 폭력이었다. 80년 광주 군대의 총도민주화를 향한 경찰의 고문도자본주의의 냉정함도, IMF의 절박함도 모두 폭력이었다주어진 시대에 충실했던 '영호'는 시대를 따라 폭력에 물들었다. 80년 광주 이후, '영호'에게 삶이란 곧 폭력이었다어떠한 방식으로도 자신의 '순수'를 되찾을 수 없을 거라는 좌절적인 인식하에 '영호'는 시대를삶을 '아름다울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해버리고 만다그곳에 살아가는 자신 역시 마찬가지다이러한 인식 속에서 '영호'는 자신의 '순수'를 되찾을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마저 묻어버린다. '영호'가 자신이 점차 폭력에 물들어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그러한 기회가 분명히 주어졌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결국 자신의 순수를 앗아간 그 시대는 변하지 않았고않을 것이라는 명확한 인식 때문이었다. '영호'는 급기야 시대를 바꾸려는 이들마저 경멸하기에 이른다. '영호'가 고문했던 대학생 '명식'의 일기에 쓰여 있는 "삶은 아름답다"라는 문구를 보고 '영호'는 '명식'에게 비꼬듯 말한다. "삶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해?" 순수를 빼앗긴 '영호'에게 삶이란시대란 끔찍하게 거대하고 굳건한 것으로한낱 대학생들이 바꿀 수 있는 '말랑말랑한것은 아니었으리라고문에 못 이겨 친구의 이름을 뱉을 수밖에 없었던 대학생의 일기에 쓰인 "삶은 아름답다"라는 문구는 '영호'에겐 가소로운젊은 날의 치기로 보이지 않았을까. '영호'의 순수로 대변되는 박하사탕이 군홧발에 짓이겨 깨지고 더럽혀진 순간그것을 다시 붙이고 닦는다 한들 여전히 금이 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영호'에게 시대란 절대적인 것이었다그에게 삶은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었다.


 

삶은 아름답다, 그렇죠?


<국제시장>과 <박하사탕>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기억하고 있다현대사를 다루고 있는 영화들 대부분이 특정하고 단일한 역사적 사건만을 조명하고그 사건 자체에 주목하려는 시도를 했던 반면 두 영화는 시대를 배경으로 그를 살아가는 개인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시대를 말하고자 하는 점에서도 두 영화는 공통점을 지닌다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다르다. <국제시장>이 지금의 한국을 있기까지 기여한추억으로서 '그 시대'의 존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박하사탕>은 '그 시대'의 아픔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았으며괴물을 낳은 폭력의 시대를 반성으로서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어느 쪽도 틀리지 않다두 영화 모두 '우리가 왜 시대를 기억해야 하는가그것은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명확히 답하고 있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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