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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우 Apr 26. 2021

똥 밭에 구르고 벌거벗은 변태가 되더라도, <차인표>

품격있게 저물어 가는 인표형

차인표가 누구인가.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톱스타이자, ‘선한 영향력’을 아낌없이 떨치고 있는 연예계의 모범 시민이 아니던가. 그런 그이기에, 이름 ‘차인표’ 세 글자를 제목으로 하는 영화 하나쯤 나오는 일은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차인표>는 배우 차인표의 인기와 사회적 공로로 치장된, 그의 일대기를 기리는 멋들어진 영화이겠거니 했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똥 밭에 구르는 씬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차인표>는 우리가 알던 ‘멋진’ 차인표가 아닌 ‘한물간’ 차인표를 다룬다. 스스로를 여전히 톱스타라고 믿고 있는 차인표와 그렇지 못한 현실의 대비를 통한 웃음과 인간 차인표의 페이소스를 담아낸 코미디다. 극 중 차인표는 촬영장에서 톱스타의 고집을 부리고, 본인 때문에 투자되지 않는 영화에 친분이 있는 신인 배우를 꽂아주겠다며 객기를 부리는가 하면, ‘송강호’ ‘설경구’, ‘이병헌’과 함께 배우 4대 천왕에 끼어 있다고 믿고 있다. <차인표>는 그런 톱스타 차인표가 모종의 일로 여자고등학교 샤워실에 발가벗은 채로 갇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다.


똥 밭에 구르는 차인표 (넷플릭스)


<차인표> 속 차인표는 실제의 차인표와 전혀 다르지도, 완전히 같지도 않다. 현실의 차인표는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선한 이미지를 갖는 범대중적인 스타지만, 영화 속 차인표가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만큼의 ‘톱’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모두에게 조롱받을 만큼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영화 <차인표>는 차인표라는 배우의 이런 애매한 위치를 활용해, 영화와 현실의 차인표 간 묘한 괴리와 동질감을 동시에 끌어내면서 관객들을 웃긴다. 영화가 기획됐을 당시, 차인표의 정체기를 다루고 있지만, 차인표 본인은 아직 스스로 정체기라고 생각하지 않아 영화를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5년 동안 실제로 정체기가 왔다고 생각했고, 이 영화를 다시 집어 들게 되었다고 한다. 허구의 스토리지만, 배우 차인표의 현실이 분명히 녹아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 속 차인표는 철저하게 망가진다. 선하고 바른, 고급스러운 그의 이미지와 반하는 언행을 통한 대비가 주된 웃음 코드다. 이들이 보여주는 아이러니가 극적일 때, 보다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코드다. 차인표는 그런 점에서 이러한 장르에 가장 극적일 수 있는 인물이었다. 차인표를 ‘톱스타의 표본’이라고 생각해 캐스팅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차인표는 대중에게 있어 톱스타의 상징 같은 배우였기에 이 영화는 가능했다. 우리 모두의 톱스타가 시대에 밀려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에, 이 영화의 강력한 매력이 깃들어있다.


차인표의 시그니쳐 포즈 (넷플릭스)


코미디 영화의 장르적 목표에 충실하려는 듯, 시종일관 웃음기를 띠던 영화는 극 중 차인표가 결국 냉정한 본인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분위기를 뒤바꾼다. 화려했던 지난날과 대비되는 초라한 현실을 다소 차갑게 깨닫는 장면에서는 극 중 차인표가 아닌, 실제로 저물어가는 톱스타 차인표의 고민과 아쉬움이 떠오른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고 차인표는 세월의 야속함을 탓하며 그저 감상에만 젖어있지 않는다. 이 또한 흘러가는 과정이라며 유쾌하게 웃어넘기는, 이렇게 망가지는 것 또한 차인표가 아니겠냐며 대중 앞에 당당히 서서 웃는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차인표의 코미디와 망가지는 차인표의 모습은 분명 낯설다. 연예인에게 이미지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본다면, 본인 이미지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차인표>는 분명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숨기고 싶은 현실을 그리는 영화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런 점에서 <차인표>는 차인표답다. 과거에 영광에 젖어 ‘겉멋’에 취해있지 않고, 망가지는 모습으로도 대중의 품 안에 남아있겠다는 그의 당당함과 솔직함이야말로, 그가 오랜 기간 대중에게 사랑받은 이유였기에. 똥 밭에 구르고 벌거벗은 변태가 되더라도, 차인표는 차인표다.


본문은 ott전문 미디어 ott뉴스(http://ottnews.kr/View.aspx?No=1563584)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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