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라이온킹> 실사판이 나오고 말았다. 90년대를 살아간 어린이라면, <라이온킹>을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때의 감동을 기억하는 지금의 2,30대에게 <라이온킹>의 실사화는 그 소식만으로 설레는 일이었을 것이다. 나의 심바는 어떻게 재탄생되었을까. 티몬과 품바의 유쾌함은, 스카의 악랄함은 그 날처럼 여전할까. 90년대를 살아간 어린이였던 나 역시, 마음이 기대로 부풀었다.
막대한 제작비를 통해 솜털 하나까지 완벽하게 구현해냈다고 하는 디즈니의 호언은 틀리지 않았다. 풍경은 그래픽인지 실사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했고, 동물들과 곤충들의 자잘한 습관 등의 디테일로 훌륭했다. 눈앞에 펼쳐진 건 하나의 야생이었다. 아이맥스로 보지 않은 나를 탓하고 싶을 정도로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Circle of Life'와 함께 온갖 동물이 몰려들며 <라이온킹>의 세계가 열릴 땐, 전율이 돋았다.
경이로움이 실망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장면의 전율은 영화가 끝나기까지 더 느끼지 못했다. 실망과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알라딘>처럼 새로운 서사와 캐릭터를 부여하지 않아서가 아니었고, 새로 부른 노래가 별로여서가 아니었다. 디즈니가 자신만만하게 내세웠던, 그 리얼함이 독이었다.
리얼함은 사자들의 표정을 지워버렸다. 코끼리 무덤의 공포도, 무파사의 죽음과 슬픔도, '하쿠나마타타'의 유쾌함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감정전달이 전혀 되지 않아 몰입에 실패했고, 전반적으로 지루하다. 원작에서 감초 역할을 했던 캐릭터들도 묻혀버렸다. 미워할 수 없는 수다쟁이 자주는, 어딘가 믿음직하고 능력있는 비서처럼 보였다. 하이에나 트리오 역시 마냥 무서울 따름이고, 이따금 던지는 농담도 어딘가 어색하다. 어쩌면 디즈니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본인들이 아프리카에서 관찰한 사자들의 표정은 그렇게 다채롭지 않았다며 변명할 수도 있겠다. 글쎄, 아프리카의 사자들이 말을 하고 노래를 하지도 않았을 텐데 굳이 표정에서 고집을 부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라이온킹>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다.
연출도 조금은 아쉽다. 개인적으로 <알라딘>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는데, 실사화 과정에서 사소한 연출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느낌이다. 이를테면 'Circle of life' 와 함께 라피키가 어린 심바를 들어올리는, <라이온킹>의 시그니쳐인 이 장면이 그렇다. 말하자면 라피키가 심바를 너무 무덤덤하게 들어올린다. 한숨 고르면서, 심바의 어리둥절한 표정도 비추면서, 들어올리기 전 조금의 긴장감을 부여하면서, 마침내 들어 올렸을 때의 그 벅참을 원작의 반도 따라가지 못했다. '끝판왕' 스카와의 일전도 그렇다. 실제 동물들의 싸움을 연상케 하며 혈투를 벌이던 둘의 싸움은, 스카가 맥없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며 끝이 난다. 싸움에서 쉽게(?) 승리한 만큼, 심바가 왕국을 되찾을 때의 극적인 요소도 힘이 빠진다. 이런 장면들에서 보듯, 전반적으로 성급했던 연출들이 실망스럽다.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 실사화의 핵심은 원작을 어떻게 실사로 구현했는가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알라딘>이 원작에는 없는 서사와 캐릭터를 만들어 내면서도 호평 받았던 것은, 원작의 핵심이었던 '지니'의 유쾌함을 윌스미스가 충실하게 구현하며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를 담당해 거부감을 상쇄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익숙함을 바탕으로 기대가 충족된 상황에서, '침묵하지 않는 쟈스민'이 스며들 수 있었다. 반면, <라이온킹>은 전반적으로 낯설었다. 뚜렷한 개성과 매력을 가진 캐릭터들은 그저 야생의 동물에 지나지 않았고, 기대했던 장면들이 성의 없이 지나가버린 것을 보곤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원작을 보지 않으셨던 분들이라면, <라이온킹>의 실사판은 참으로 풍성한 영화였을 것이 틀림없다. 놀랄 만큼 정교한 CG로 구현된 동물들과, 버릴 것 없는 OST, 깊은 철학까지. 원작을 본 입장에선 그래서 더 아쉽다. <라이온킹>이 가진 더 많은 매력을 전달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