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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승 Jan 30. 2021

네가 중경삼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열한 번째 이유

J

  언젠가 중경삼림을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사실 이건 영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취향에 대한 것이고 그 감성을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너도 아마 알겠지만 중경삼림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이 사실 일반적이진 않다. 내가 어릴 적엔 더욱 그랬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구하는 게 그렇게 쉽지도 않을 때고 사실 내 시대의 영화도 아니다 보니 내 또래에서는 그 영화를 본 사람을 찾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같이 네 집에서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발을 맞대고 있었던 날이 생각난다. 내가 이 곳으로 떠나오기 전 우리 집에서 너와 함께 중경삼림을 봤던 것도. 내게는 무척이나 행복하고 잊기 힘든 추억으로 남아 있다.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음악을 들고, 같은 곳을 갔을 때 비슷한 감상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너를 만난 게 좋다. 네가 중경삼림을 좋아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너를 꼭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우리가 서로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음악을 함께 듣고 싶다. 함께 그렇게 주말을 보내면 좋겠다.




S

  내가 어떻게 중경삼림이라는 영화를 접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보던 곰플레이어 무료 영화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던 것 같다. 내 꿈이 왕페이처럼 전 세계를 원하는 만큼 돌아다닐 수 있는 항공 승무원이 되는 것이 었었기에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중경삼림이란 영화가 어떤 특별한 감성을 가진 영화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내 친구 지수는 남자 친구가 너무 잘생겨 아무리 화가 나도 실제 대면하면 잘생긴 얼굴 때문에 화가 풀린다고 했다. 솔직히 난 살아오면서 그 정도로 잘생긴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건 내가 너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헤어지자고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던 그 봄날, 신논현역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널 보며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잊어버렸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집을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계속 쭉 원룸에서만 살았고 경제적인 이유로 많은 것을 할 수는 없었지만 가구 배치를 바꾸면서 기분 전환하는 것을 좋아했고 가끔 초록 식물을 집으로 입양해 힐링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쁜 조명과 컵을 좋아한다. 그리고 너와 사귀기 한참 전 우연히 보게 된 네 SNS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물론 난 이불 시트의 무늬에도 감성을 집착하는 편인데 넌 그런 것 같진 않다. 다 똑같을 순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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