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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승 Jan 30. 2021

내가 돈을 막 쓰기 때문에

열네 번째 이유

J

  너도 알다시피 나는 쓸데없어 보이는 (사실 나름대로는 아주 필요하고 실생활에 유용한) 것들을 많이 산다. 그렇다고 막 불필요하게 비싼 것들을 사거나 계획 없이 돈을 탕진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이게 과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금을 나름대로 하는 편이긴 하지만 매년 연말에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살짝 후회가 드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너는 절약하는 사람이다. 짠순이는 아닌 것 같지만 불필요한 소비를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항상 너 스스로를 위해 돈을 쓰기보다는 가족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친오빠가 명품 가방을 사준다고 했는데도 어머니에게 대신 사 드릴 생각만 하는 아이다. 난 네 그런 소비 습관이 좋고 예쁘다. 내가 네게서 닮고 싶은 부분 중 하나이다. 그래도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사고 싶은 옷이 있다면 샀으면 좋겠다. 미안해서 안 쓸 거라는 것 알고 있지만 난 네가 내 카드를 쓸 때 새로 나온 게임기 살 때보다 더 기쁘다.





S

 우리 엄마는 몸이 많이 아파져서 그만 두기 전까지는 잘 나가는 직업여성이었다. 덕분에 난 대학교 1학년까지 가고 싶은 학원도 가고 친구들과 쇼핑도 다니며 부족함 없이 지냈다. 다음 해 중국 교환학생에서 돌아오니 엄마는 디스크와 하지정맥이 심해져 일을 그만 두신 상태셨다.


 당시의 나는 나에게 연애는 사치라고 생각했고 시장에서 파는 천 원짜리 옥수수를 사서 저녁으로 먹곤 했다. 정말 배가 너무 고픈 날에는 한 십 분 거리에 있는 왕만두 집에 가 2천 원짜리 왕만두를 사 먹었다. 성적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항상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교수님께 질문을 했고 성적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달에는 사설 장학금에 매달리곤 했다. 이후 운 좋게 정부 지원 장학생으로 갔었던 미국 유학에서도 가난한 생활은 계속되었다. 한인마트에 가서 알바를 하고, 집주인 아주머니의 딸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면서 생활비를 마련했다. 이렇게 생겼던 소비 습관은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한 달에 몇 백만 원을 용돈으로 쓸 수 있게 되었지만 그대로였다.


 네가 쓸데없는 것을 산다고 타박했지만 난 네게 많은 고민과 가격 비교 끝에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넌 나에게 물질이 주는 편리함을 많이 알려주었다. 가령 인도 계정 유튜브 프리미엄이라든지, $199 블프 특가 애플 워치 라든지, 스타벅스에서 먹는 주말 브런치가 주는 행복감이라든지. 적당한 수준의 사치와 소비를 하는 네가 생각보다 더 많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더 너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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