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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승 Oct 27. 2021

소로

우리가 처음 헤어지던 날

밤 늦게 까지 다투다 이별한 날,


일요일 아침, 잠든   시간이  되지 않아 눈을 떠서 습관처럼 가장 먼저 휴대폰을 확인했어,

혹시 네 연락이 와있지 않았을까 하고, 그리곤 곧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고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았지,


밥을 먹어도 뉴스를 봐도 그저 가슴이 먹먹해서 바람을 쐬면 좀 나아질까 하고 너와 매 주말 마다 같이 걷던 산책로로 터벅터벅 걸었어. 평소와 같이 이 동네의 어르신들은 다 여기 계시는구나 생각하며 무의식 중에 하늘을 봤는데, 정말 새 파랗더라. 가을이구나.. 나뭇잎은 끝이 노르스름하게 변해있고 말이야.


우리가 함께 가을 단풍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 겨우 일주일 남았는데, 이제 가을이 막 길 곳곳에 내리기 시작했는데.. 너도 이 하늘을, 이 나뭇잎 색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네게 너무 전화하고 싶었어 너도 혹시 지금 걷고 있을까 파란 하늘을 보면서, 노란 단풍잎을 보면서 나와 같은 생각은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일이나 하며 네 생각을 떨치려고 노트북을 켰는데, 그 순간 휴대폰 액정에 네 이름 두 글자가 뜨기 시작했을 때,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난 1초도 망설임 없이 네 전화를 받았고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했는지는 묻지도 않은 채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냈어,


'기다렸어, 고마워 전화해 줘서.. 사랑해!'


수화기 건너편에서 네가 펑펑 우는 소리가 들렸고, 전화를 받아줘서 너무 고맙다고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던 네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참 바보 같은 이유로 헤어지려고 했었구나.. 돌고 돌아서 결국 헤어짐까지 와서야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또 함께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한지.. 어느 순간부터 서로에게 길들여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구나 라는 것 느꼈어.


그날은 네가 남들보다 조금은 늦은 대학교 면접을 보던 날이었고, 난 언제 시작해서 언제 나올지도 모를 너를 무턱대고 정문에 기대서 기다렸었지. 그 순간과 그 햇살이 어찌나 따뜻하게 느껴지던지 몰라. 진짜 네가 새로운 시작을 하는구나, 그리고 우리가 정말 함께 하는 첫 걸음을 옮겼구나. 한 시간 쯤 지나 문을 나온 넌 날 발견하고 환하게 미소 지었고, 몇 번을 고맙고 또 사랑한다고 속삭였어,


그날 함께 갔던 이촌동의 햄버거 집은 우리 둘이 전세를 낸 것 같았어. 1시간 동안 머물면서 네가 어찌나 울고 웃기를 반복했는지 아마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이혼이라도 했다가 재결합하는 줄 알았지 않을까? 넌 돌아와 잠이 드는 순간까지 울었잖아, 함께 하는 순간이 이렇게 행복한데 정말 바보 같았다고 말이야, 난 그런 너를 보며 바보같이 왜 우냐며 이제는 함께 하지 못하는 게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알았으니, 절대 다신 그것보다 덜 힘든 이유 때문에 헤어지지 말자 약속하자고 했지. 넌 좋다고 말했고




그날이 며칠 지나지 않아 네가 그렇게 허무하게 떠난 날 부터 오늘까지,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어. 적어도 네가 그날 운 것의 50배는 더 울었을 것 같고 내가 살아오면서 울었던 눈물의 30배는 더 울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 난 내가 평생 이렇게 누굴 위해, 심지어 나를 위해서도 울어본 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없었던 것 같아, 정말 그래.


한 참을 울다가, 웃다가 또 울다가 하다 보니 진짜 딱 한가지 알겠는 건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진심이었고.. 이제 조금 알 것 같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네게 표현하기도 전에 너는 날 떠나버렸구나..




오늘 출근길에는 새로 발견한 코엑스 사잇길로 지나갔어, 무의식 중에 올려다본 새파란 하늘과 샛노랗게 물든 단풍잎을 보고선 왜 그렇게 가슴이 먹먹한지 그냥 소리 내서 울어 버렸지 뭐야? 어서 너와 닮은 누군가를 만나 네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나도 똑같이 죽어버리면 너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도 해보고, 나도 이런데 너네 부모님은 숨만 쉬어도 네 생각에 눈물이 나진 않으실까 하는 오지랖도 부려보고, 절대 엄마보다 먼저 죽어서 엄마를 슬프게 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그러면서도 네가 보낸 마지막 카톡과 네 사촌 형이 보내준 네 사진을 보면서 걸었어, 네가 더 이상 나와 함께 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분명 날 속상하게 하지만, 너라는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알려줬는지 네가 너를 만나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떠 올리는 순간은 너무나 행복하거든..


이번 주 주말엔 너랑 같이 가기로 한 설악산을 혼자서 가려고 했는데 네 사촌형이 숙소 예약권을 네 절친 종규에게 줬다지 뭐야. 그래서 사촌형이랑 같이 네 묘지에 가기로 했어 사실 오히려 더 잘된 것 같아, 오늘 출근 길에 남자 친구와 사별했다는 사람이 누군가의 글에 단 댓글을 봤는데 너무 보고 싶을 땐 묘지에 찾아간다 하더라고, 그러면 마음이 한결 좋아진다고




..

모르겠어. 내가 왜 이 것들을 다 적고 싶어하는지, 하지만 이렇게 마음을 적다 보면, 언젠가는 너에 대한 감정과 기억들을 모두 적어낼 수 있을거고 다행히 우리 추억이 많지 않아 얼마지나지 않은 그 시점에는 너에 대한 모든 감정과 기억들을 덤덤하게 털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혹시 가끔 생각이 나면 이곳으로 찾아와 꺼내보면 되고 적어도 기억이 왜곡되거나 사라지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또 너로 인해 하게 되는 이런 사소한 다짐들, 너를 통해 알게 된 아마 사랑이라고 불릴 이 감정을 기억하고 싶어. 다시는 몰라서, 해보지 않아서 라는 이유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울게 하고 싶지 않아서..


바보, 엄마가 그래. 원래 죽은 사람만 억울한 거라고.. 살아있는 사람은 더 잘 살아주면 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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