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s end
네가 간 그곳은 따뜻할까, 티 나지 않으면서도 명백하게 사랑이 결핍돼 보이던 네가 부족함 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곳이면 좋을 텐데..
고작 몇 개월을 함께 했던 나도 이렇게 네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데, 너와 평생을 함께했던 가족 친지 분들과 네 동네 친구들은 너의 존재를 얼마나 그리워할까. 가슴속에서 그 자리를 털어내실 수는 있을까? 아니 꼭 털어내야 하는 걸까?
네가 떠난 후, 내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누구한테 이렇게나 마음을 준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봤어,
21살 여름, 동네의 한 냉면집에서 재혼을 할 예정이라는 당신보다 10살은 더 어려 보이는 여자를 소개해주고선 뭐가 그렇게 마음에 걸렸는지 휴대폰 번호도 바꿔버려서 그 이후론 목소리 조차로 다시 들을 수 없었던 아빠.
이따금 길을 걷다 마주치는 딸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이름 모를 아빠들의 뒷모습을 보면 가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금 나던 것을 제외하고,
내가 누굴 위해서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었을까?
없었던 것 같아.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이만큼이나 슬퍼본 적도, 아파본 적도.오랜 기간을 함께 했던 연인과의 이별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오히려 속 시원하다는 생각을 했던 나니까, 너도 그렇게, 쉽게 이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너랑 지하 주차장에서 밤 12시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티격태격하던 헤어지자고 말했던 밤, 넌 사실 사랑을 모르고 네가 하는 것은 단순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일방적인 감정이라고 말하면서도 사실 나도 그 사랑이란 게 뭔지 잘 모른다고 말했어.
사실이야, 난 이게 사랑이었는지 이게 사랑이라고 불릴 수 있는 감정이었는지 잘 몰라, 하지만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을 만났던 사람보다 네 존재가 내 마음 깊숙이까지 들어왔었다는 것과, 헤어진 다음날 새벽 네 존재를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것은 사실이야. 그리고 네가 정말 영영 떠난 지금도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면 얼마나 더 행복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하는 것도.
정말 잘 모르겠어, 이게 사랑이라는 감정인 건지 우리가 정말 '사랑'을 한 건지. 그리고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그 감정들도 사실 내가 느끼는 이러한 감정과 같은 모양인지, 아니면 사실 사람들 마다 사랑의 정의가 다르고 또 서로 다른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건지. 철학적인 의미의 사랑이 아닌, 보통적 의미의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답이 없는 것인지. 어찌 되었건, 나는 너를 통해 나 스스로가 이해하는 내가 '이게 사랑이지' 하고 정의할 수 있는 진짜 사랑을 하는 법, 그 감정의 생김새를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된 그 '사랑하는 법'을 너에겐 대입해보기도 전에, 이게 맞는지 확인도 해보기 전에 네가 날 떠나버렸다는 게 속상하고 슬프지만.. 다음에 내가 사랑하게 될, 그 누군가에게는 적어도 사랑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속상하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넌 짧은 시간 동안 참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떠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