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사람들의 생각, 통념을 의식하는 사람들.
사실은 개인주의를 지향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먼 건 아닐까
<개인주의자 선언>이 나온지 어언 10년
개인의 자유인 영역임에도 굳이 개인의 자유로 두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찾아나선다.
이런 측면들을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개인주의가 완전히 자리잡지 않은 것은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그러나 한편으로 그런
한국사회를 욕하기보다는 한번쯤은 왜 그런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회가 우리에게 홀로 결정할 일들을 많이 주지 않았을
무렵, 자유는 매우 소극적인 ~으로부터의 자유였다.
나를 건드는 사회규율, 학교, 회사 사람들의
간섭 같은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유란 적극적인 형태도 존재한다.
우리가 우리 삶을 꾸려나가고 경영하고 싶은 자유
적극적 자유, ~를 향하는 자유인 것이다
(어릴 적 게임을 하다보면 당장 초보자라는 제약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다가 점차 어디로 가고 어떤
무기를 들어야 할지 어떤 능력치가 필요할지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은
온전한 '나의 선택'보다는 나에게 '적합한 선택'
이 중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연애란 개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연애를 더 잘하는
방법이라는 것은 있지 않을까. 연애를 잘 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지고, 연애의 유형이나
결핍에 대해 배우고 싶어지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하는 생각이나 말, 그리고 느끼는 감정들은
겉보기에는 모두 ‘나의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성장 과정에서 겪은 경험,
타인과의 관계, 사회와 문화의 영향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연애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 다투는 방식, 화해하는
방식까지도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완전히
새로운 선택이라기보다는 보고 배워온 관계의 모습이
축적된 것이다.
'건드리면 안 되는 사생활'이란 선택권이 없는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생긴 인위적인 방어선이다.
길가다가 어떤 돌을 주울 것인지에 대해 사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애에 대해서는 사생활을 보장하자고 한다.
왜냐하면 연인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은 오랫동안
방해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방어선은 분명한 이점과 의미가 있다.
그러나 사생활 보장이 어느정도 정상 궤도까지 오르게
되면 계속해서 경계를 긋기보다는 생활을 운영하기
위해 더 배우고 알고 익히고 싶어진다.
특히 사생활이라 타인과 공유하기 어려워질수록
인터넷을 통해, 익명성을 이용해서라도
배우려고 한다.
내가 하는 성관계는 괜찮은지
내 머리 속에 맴도는 말은 정신병이 아닌지
우리 가족은 정상인지, 나는 이상한 것이 아닌지
이런 궁금증을 두고 홀로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들이라며 싸잡아서 욕할 수는 없지 않을까
사적 영역이라고 해서 공적이고 사회적인 영역에서
답을 찾는 것이 어리석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의 것이 분명하다면 그것을 드러내고,
이해하고, 배우려고 해도 된다. 그 과정에서 사회의
기준을 들어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은 팔랑귀와는 거리가 멀다.
<현대 사회의 획일성> 中
획일성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전적으로 좋다거나 적으로 나쁘다는 식으로 생각해선 안 될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는 단점도 있고 장점도 있다. 최고의 장점은 사람들이 평화적으로 협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단점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수를 박해하는 경향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획일성, 사회의 기준에 따르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관점에 금이 가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는, 대중의 지식은, 일반적인 통념은 개인과 대립할 수 밖에 없는가. 개인의 자유는 집단의 이해관계과 불가피하게 충동할 수 밖에 없는가. 이런 고민들의 단초가 되어준 내용이었다.
우리 인생에서 분명하게 말하기 어렵고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이면서도 또 개인의 영역이 아니기도 한 인생의 면면에 대해 재밌게 썰을 풀어준다. 썸의 기준이며 바람을 피는 것이 왜 문제인지 이런 것들을 과한 도덕적 당위 없이 분석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