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사못이나 계단 얘기를 하자
자의식이란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삶의 꽤 적지 않은 시간을 이 자의식에 할애한다. 즐거운 공상에만 머무르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보통은 불안이나 공포 같은 것이 세트로 오곤 한다. ‘나’에 대해 생각하며 싱글벙글해본 적이 있을까? 그다지 없을 것이다.
끊임없는 자의식 이슈는 나만 겪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소재는 조금씩 달라도 자의식에 대한 책이 쏟아져 오기 때문이다. 대강 생각해봤을 때. 즉 종교든 자기계발이든 심리학이든 아주 비전문가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자의식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자의식이란 그저 환상이오 그러니 내려놓으시오’ 입장이다. 기본적으론 이 입장에 동의하는 편인데 가끔씩은 ‘내가 뭐 부처도 아니고 그게 되겠냐 젠장..’ 싶다. 그러니까 부처론이라고 일단 명명해야겠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분명한 색을 정하시오’가 있다. 주로 자기계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문장 같다. 나의 목표, 하고 싶은 것, 이미지를 확실하게 정하고 그것만을 강력하게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마치 캐릭터를 하나 정하듯 자신을 규정하는 시도를 하게 된다. 나쁘지 않지만 나로서는 한껏 나르시시즘을 들이붓지 않고서는 머쓱해서 못하겠다.
결과적으로 보면 양쪽 다 원활하게 잘 되지는 않는다. 더 안 좋은 상황은 나 이외의 다른 것은 너무나 깔끔하고 멋져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 말고 타인은 언제나 ‘완성되고 깔끔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욱 힘이 나지 않곤 한다. 그런데 가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대안을 내주기도 한다. 이 얘기를 하려면 그냥 어떤 책을 그냥 인용해야 하는 것이 빠를 듯하다.
그런 장소를 도면으로 그리는 것은 간단하다. 모든 직사각형의 모서리가 서로 겹치지 않게 배열하면 짠, 하고 도면이 완성된다. 하지만 공사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비현실적인 도면으로 건물을 완성하는 방법은 앞에서 뒤로,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모든 위치에 모든 요소를 정확히 제자리에 놓는 것뿐이다. 이는 서로 다른 자재가 만나는 지점, 이를테면 나무로 된 부분이 유리창과 맞닿는 지점 같은 데서 모든 요소를 밀리미터의 둘째자리까지 계산해서 정확하게 도면을 그리고, 자재를 재단하고, 시공해야 한다. 유리창, 창틀, 창대돌 및 나무 자재를 각기 다른 곳에서 만들어도 안 된다. 이런 제작소는 서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두꺼운 검은색 마커로 유리로 된 발판 하나하나의 정확한 높이를 계산하는 공식을 줄줄이 써놓았다. 줄자로는 0.15cm보다 더 작은 증가치를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여러 해 전에 가구 작업장에서 일하는 전문가가 아주 간단한 방법을 알려준 적이 있다. 그는 표시된 숫자에서 조금 위나 아래에 작은 화살표를 그린 다음, 32라고 쓰고 동그라미를 쳤다. 예를 들면 이것은 더 정확한 측정치가 7↑32라는 의미다.
<완벽에 관하여>, 마크 엘리슨 지음 / 정은미 옮김 - 밀리의서재
https://millie.page.link/BEVFfPKZhDu8oowF7
이 책은 있는 그대로의 디테일로 가득 차 있다.
그 디테일이란, 일을 하는 ‘내’가 아니라 일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을 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나를 드러내기 위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사나 선반 얘기를 하곤 한다. (그래서 사실은 조금 읽기 싫긴 하다. 아무래도 줄자나 선반 얘기는 듣기가 힘들다.)
그러는 한편으로 나사나 계단 얘기 하나로 2~3페이지를 거뜬히 넘기는 사람의 삶은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냥 나사를, 그냥 내가 하는 일을 바라볼 수 있는 담백함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나를 설명해 보이고 싶은 욕망은 언제나 강력하다. 나를 보여주고 내 개성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은 많은 경우 다른 욕망을 앞선다. 그래서 불안하다. 그런데 가끔 어떤 글들은 일단 나사든 다리를 짓기 위한 기계든, 악보든 자신이 가담한 것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곤 한다.
이런 글을 접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자의식을 어떻게든 있어 보이게 다루려 애쓰는 것이 정답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을. 부처처럼 내려놓는 일도, 자기계발서처럼 멋지게 가공하는 일도 나에게는 쉽지 않다. 차라리 선반 하나, 나사 하나, 음정 하나, 무대 위의 장식 하나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느껴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를 벗어나는 길은 ‘나’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쏠려 있는 주의력의 흐름을 나 자신에게서 바깥으로, 즉 현실의 사물과 순간으로 돌리는 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싶을 때, 나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을 때, 그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떠드는 것. 그것이 내가 그래도 욕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수련에 가까운 것 아닐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