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NOT?의 함정 : 무한 생산, 무한 무가치

“안 될 건 없잖아요?”라는 말이 주는 파괴력

by 호지차와 낙지좌

1. Why not? 안 될 거 없잖아요


사랑의 기술을 쓴 에리히 프롬은 다른 작품인

<존재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한다.

'변덕이란 그 사람의 성품 전체와의 구조적 연관 없이, 그리고 그 자체의 목표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욕망을 말한다'


이런 변덕을 대표하는 문장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Why not?'이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안 할 이유가 없기에 한다.

안 될 것이 없다는 사실만이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에리히 프롬은 이 문장이야말로 무조건적인 반항과

변덕을 반영한다고 보았다.


Why not? 이 너무나 멋지게 살아남은 시대에 살아서

그런지 에리히 프롬의 이런 주장이 오히려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억에 남은 것이다.


그런데 요새 일을 하다 보면 Why not?의

가공할 만한 힘에 놀라곤 한다.

'안 될 건 없잖아?'


일에 대해 얘기하다가, 불만을 듣다가 이런 문장을

마주하게 되면 아득해진다. 필요성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훨씬 비용이 낮은데 파워는 강력하다.

그러나 듣는 쪽에서는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아찔하기만 하다.


2. 끊임이 없을 수 있는 사회


물론 Why not? 은 맥락은 봐야 한다. 분명 고루한

관습, 전통을 깨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을 것이다.

뭐든 No!이라고 하는 사회에서야 '왜?'를

물을 수 있는 것이 건강의 척도였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한계, 제약, 규제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창조되고 사라지고 또 3초 만에 창조되는 사회에서

Why not은?

너무나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Why not은?

예상치 못한 파괴력을 갖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자원을 끌어당기든, 사람을 때려박든,

엄청난 기술을 이용하든 끊임이 없을 수 있는 사회

이동하고 있다. 아주 짧은 3초짜리 쇼츠라고 할지라도

어쨌든 우리는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카메라를 갖고 있어야 하고 TV에 비출 권리가 있어야

하는 과거와는 어찌 되었든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3. Why not? But Why?


당연히 안 될 것 없다. 못할 이유가 없다면 말이다.

게다가 Why not? 은 금지된 것이 많았을 시기에는

무척 좋은 무기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해야 할

것이 폭발적으로 생겨나는 시기이다.

눈만 살짝 돌리면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모두가 모두에게 이것을 하자고 말한다.

예전엔 강제를 부수는 칼이었겠지만 지금은 무한히 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마술지팡이가 된 느낌이랄까..

이런 혼란한 시기에는 오히려 '왜?'라는

문장을 더욱 찾게 된다.

제가요? 이걸요? 왜요?라는 외침은 MZ가 버릇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뭐든지, 언제든, 끊이지

않고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안 할 이유는 없잖아?’라는 말은 가볍게 들리지만,

실은 우리를 불필요한 소모와 피로로 향하게 만드는

위험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Why not?, We can do it!


할 수 있다는 말 앞에서 왜 해야 하는가 라는 말은 소위

'진지충' 같아 보인다.

냉소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너 T발 C니?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문장을 말하는 사람은

두 부류일 것이다. 정말 냉소적인 사람과 정말로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덮어놓고 거부한다기보다는 '적절성'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은 것이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그것이 왜 필요한지, 어디까지

되어야 하는 것인지,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다음 편에서



이 글에 영향을 준 책을 소개한다.

인용을 직접 하는 경우도 있지만 책 내용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인용은 인용문구로, 설명하는 경우 직접 인용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존재의 기술 | 에리히 프롬 - 교보문고

무조건적인 반권위성, 도저히 조용히 없을 수 없는

분주함 등. 우리 시대에는 너무나 당연한 폐해들을

일찌감치 예측한 명저. 이 책은 동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해 개인 차원에서 갖춰야 할 태도 측면에 초점을

맞춰서 얘기하는 편이다.


피로사회 | 한병철 - 교보문고

규율, 침입으로부터의 방어, 멸균 같은 단어들이 근대를

이뤘다면 이제는 끊임없는 성과사회가 되었다.

규율은 규율을 강제하는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거기에 저항할 수 있기도 했다.

성과사회에서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강제는 다름

아닌 내면에 있다. 그렇기에 저항할 대상은 없고

그저 피로하기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