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내 모든 행동의 동기였던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점차 해소가 되었을까.
일단 내가 어떤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그 상태가 아닌 '그 상태가 되기 위한 노력에' 시간을 많이 써야 한다는 슬픈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바로 그 '되기 위한 노력'에 시간을 최대한 적게 쓰면서 원하는 상태가 될 수 있도록 머리를 굴려본다.
나는 실제 그 일을 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그 일을 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드느라 시간을 소모하였다. 근력 운동을 하려면 일반적으로 헬스장에 가서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걸어가고, 준비하고, 의지를 내야하고, 저녁을 생각하는 등 운동이라는 행위를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 과정들이 재밌다면 상관은 없지만(재밌어도 사실 좀 시간은 낭비일 수도 있다) 재미도 없다면 그 조건을 만들다가 지쳐서 포기하게 된다. 열심히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을 힘과 의지는 사라지는, 자연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을 반복하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최소한으로 들여야 원하는 '된 상태'를 구현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걸어가는 시간을 줄여보기도 하고 운동도 줄여보기도 하고 운동의 종류를 바꿔보기도 한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형태로 축소 혹은 변형을 한다. 그렇게 운동하고 와서 빨래할 시간이 적어진다면 열심히 빨래를 할 수 있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그냥 옷을 줄여보기도 한다.
옷을 줄인다면 패션이라는 것을 내 생활에서 줄여야 하고, 걸어가는 시간을 아끼려면 회사 헬스장을 가는 게 제일 낫기 때문에 지인과 만나는 어색함을 이겨내야 한다. 이 정도가 내가 들일 수 있는 '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왜 나는 이렇게 게으르지, 왜 이런 것도 못하지 라는 생각은 그냥 하지 않는다. 마치 마약은 그냥 하면 안 되는 것처럼 당연히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음으로 가장 큰 걸림돌이 이래야만 한다는 식으로 행동양식을 정해놓고 억지로 도입하려고 하는 태도였다. 무조건 새벽에는 일어나야 한다, 무조건 책은, 무조건 글은. 이런 식이면 내 생활과 조율하기는 불가능하다.
그 다음으로 부러움. 일론 머스크가 부럽다, 유명 작가가 부럽다, 제니가 부럽다(나는 동갑이라 제니가 부럽다) 이런 생각들. 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하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그 삶을 일궈오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 혹은 무엇을 버릴 수 밖에 없었는지, 혹은 기꺼이 버리는지 그런 것들에는 무지한 채로 스스로에게 그 삶을 적용할 수는 없다.
되기 위한 행동과 되어 있는 행동을 구분하고 되어 있는 상태를 구현할 꼼수만을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불안을 동기로 삼아 노력했던 시기와 단절할 수 있었던 주된 방법이었다.
그 꼼수와의 약속만을 지키도록 노력하고 그 외의 모든 부러움, 당위, 법칙들은 웬만하면 신경쓰지 않는다. 이 신경쓰지 않음 또한 내가 들여야 하는 '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