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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르찌르 Jan 04. 2019

11. 당신의 워라밸은 안녕하십니까


지금 직장에서 평생 일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네 가지가 나올 수 있다.
'그렇다', '아니다', '모른다', '직장이 없다'


<세상의 중심에서 꼰대를 외치다> 11번째 글은 '아니다'라고 답한 20대를 위한 내용이다. '모른다'나 '직장이 없다'를 꼽은 독자는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될 때를 대비해 참고용 정도로 읽어둬도 괜찮겠다.

  

국가기관에서 2년 6개월 동안 일한 적이 있다. 이때 국가고시 중에서도 특히 경쟁률이 높은 시험을 통과해 들어온 이들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평생의 계획을 한 직장에서 짜는 모습을 봤다. 10년 가까이 되는 사회생활 경력 중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존재하는 곳은 이곳이 유일했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서 힘들게 들어온 직장인 데다 대우는 좋은 편이었고, 복지는 빵빵했다. 게다가 잘릴 걱정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흔히 이야기하는 상위 1%급의 '신의 직장'이었다. 



신의 직장을 다니는 소수를 제외하면, 사실상 평생직장은 사라졌다. 평생은 커녕 당장 1년 앞을 내다보기도 어려운 게 20대의 현실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신입사원 이직 현황'에 따르면, 2015년 5월 기준으로 15~29세 청년 10명 중 6명 이상이 1년 3개월 만에 첫 일자리를 그만뒀다. 최근에는 20대의 재직 기간이 더 짧아졌다. 지난해 취업 포털 사람인이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퇴사율이 가장 높은 직원은 입사 1년 차 이하의 신입사원이었다. 1년 차 이하의 신입사원 퇴사율은 49%, 절반에 가까웠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20대는 불안하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려면 소득이 있어야 하는데, 매달 월급을 주는 직장에서 1년을 버티기가 어렵다. 그래서 평생직장을 다니고 있는 이들을 제외한 20대는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이어야 한다. □□전자 마케팅 부서 직원은 직장인이고, 마케터는 직업인이다. 먹고살려면 직장에 소속돼 있으면서도 자기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는 직업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직장인은 취업 시장의 문턱만 넘으면 되지만, 직업인은 전문적인 능력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전문적인 능력은 선택한 직업 분야에서 꾸준히 배우고 경험하고 성과를 내야 쌓을 수 있다. 그래서 직장인보다 직업인 되기가 훨씬 힘들다.

   

최근 한 매체에서 3~5년 차 기자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퇴사한 지 3개월이 넘은 한 후배의 간절한 얼굴이 떠올랐지만, 고민 끝에 그 친구를 추천하지 않기로 했다. 의욕 없이 하라는 일만 겨우 마치던 그 후배는 대표적인 직장인이었다. 요청해온 매체를 비롯해 이런 직장인을 바라는 회사는 없다. 또 야속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이 친구를 추천하면 나의 신뢰도에도 금이 갈 게 분명했다. 


일하면서 '괜찮은 사람을 추천해달라' 또는 '이 사람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 알아봐 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거나 한다. 추천하거나 좋은 평가를 받은 인물을 돌이켜보면, 이들은 대개 직업인이었다. 근무시간을 때우는 직장인이 아니라 한 분야에서 능력을 쌓고 있는 직업인이 결국 이직 시장의 승자였다.  



20대는 지금 선택한 직업 분야에서 능력을 쌓는 시작점에 있다. 그리고 이 시작점에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불러일으킨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열풍이 찾아왔다.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피로한 한국'에 꼭 필요한 방향이지만, 20대에게는 또 다른 시험이기도 하다. 업무량도, 인력도 그대로이지만 근로시간만 짧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잡코리아의 근로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 '근로시간 단축 후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고 답한 이들은 38.0%로 집계됐다. 대기업 근로자의 경우 45.3%에 달했다. 그러나 제도 시행 이후 인력을 충원한 곳은 10곳 중 3곳뿐이었다. 워라밸 열풍으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단축된 근로시간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직업인이 됐다. 이는 이제 막 일을 배우고 있는 20대에게 그만큼 기회가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앞서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바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워라밸을 추구하는 회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과를 중시하는 회사다."


야근이나 주말 출근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워라밸은 근무시간에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떨거나 온라인 쇼핑몰 또는 주식창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단축된 근무시간 안에 배우고 경험하고 성과를 쌓아나가기 위해 20대는 고강도 업무를 소화해야 한다.


이제 일에 대한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목적은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다. 앞으로 30~40년은 이어질 20대의 경제생활이 순탄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커리어를 위해 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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