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의 첫날밤을 가져 버렸다>-아는 맛이 ㅈㄴ 맛있다

★★★★(4개/5개)

by 웹투니

SNS를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유명인들의 다이어트 명언 모음집이라는 콘텐츠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제가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는 문구는

뮤지컬 배우 옥주현 씨의


"먹어봤자 알고 있는 그 맛이다"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제가 이 말을 기억하는 건 그 말에 공감해서가 아닙니다.

한 유명 유튜버가 이에 대해 내놓은 반박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죠.


"알고 있는 그 맛이 ㅈㄴ 맛있다."


기가막히지 않습니까.


족발, 보쌈, 피자, 치킨 등등

사실 어디서 시켜먹던 다 거기서 거기인 음식들.

먹을 때마다 늘 똑같은 맛에 불과한 양산형 메뉴들.


그런 요리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요식업계에서 십수년동안 변치 않는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를

이보다 더 간단명료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요식업계에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죠.


웹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회귀, 빙의, 환생


잘생기고 돈 많고 능력도 좋은 남주


등장하자마자 언젠가 개같이 멸망할 거라는 게

뻔히 보이는 전형적인 악역들


좋게 보면 트렌드고,

나쁘게 말하면 클리셰로 범벅된 이런 이야기들이

'양산형'이라는 오명을 감수하고서도

끝없이 만들어 지는 이유 역시


우리가 아는 그 맛이 ㅈㄴ 맛있다는 걸

작가들도, 독자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클리셰란 자고로 뻔하게 쓰면 진부하지만,

제대로만 쓰면 또 그것만큼 재밌는게 없지 않겠습니까.


오늘 소개해드릴 바로 이 작품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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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리뷰는 제가 포트폴리오용으로 작성했다가

"아 이건 포폴로만 쓰긴 아깝다" 싶어서 옮겨놓은 것으로

지금까지와는 달리 웹툰의 전반적인 스포일러 담겨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아는 맛이 ㅈ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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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이하 <첫날밤>)는

자고로 잘 만든 클리셰만큼 재밌는 콘텐츠는 없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달리 말하면 근본적인 신선함은

부족한 이야기라는 뜻이기도 하죠.


물론 ‘엑스트라 백작 영애’,

‘술김에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라는 둥의

몇 가지 의외성을 덧붙여 놓긴 했지만 그럼에도 결국엔


“소설 캐릭터에게 빙의해서 남자 주인공과 엮이게 된다” 라는,

근본 설정의 상투성을 벗어날 수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첫날밤>은 마치

“아는 맛이면 어때? 그래서 더 먹고 싶은 거 아니야?” 라고 말하듯,

클리셰라는 재료들을 한데 섞어

3단계로 능수능란하게 요리하기 시작합니다.



<1단계 시트콤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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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는 시트콤 코미디입니다.

<첫날밤>만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구간이기도 하죠.


함께 첫날밤을 보낸 이후,


결혼 밖에 모르는 직진남이 돼버린 제로니스의 끝없는 청혼과

자신이 소설의 전개를 망칠까봐 두려워 어떻게든

제로니스를 피하려 하는 리플리의 발버둥이

서로 부딪치며 자아내는 시트콤적인 화학 작용이

극의 분위기를 내내 유쾌하게 이끌어나갑니다.


이 구간에서 하는 거라고는

제로니스가 청혼을 하면 리플리가 회피하거나,

리플리가 청혼을 거절하려 하면

제로니스가 그 거절을 거절하는 것 밖에 없는데도,

(물론 그 거절이 다소 격하긴 하지만~)


그림을 맡은 MSG 작가 특유의

로맨틱과 코믹함을 유려하게 넘나드는 연출이

이 동어반복을 질리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이 구간의 가치는 어디까지나 빌드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가 로맨스인 이상, 이 둘이 끝까지

서로를 밀어내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로맨스에서 ‘밀어내기’란 결국

‘당기기’를 할 때의 쾌감을 위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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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내기에서 당기기로…

그러니까 시트콤에서 로맨스로 넘어가기 전,


리플리가 제로니스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계기를

그녀가 가지고 있던 관계에 대한 트라우마와 엮어서

섬세하게 담아낸 것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로니스가 리플리를

사랑하게 된 계기와도 같은 것이기에

그 둘의 관계를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그려내면서


결국 “사랑은 서로를 위한 구원이다”라는,

이 이야기의 주제의식을 한층 짜임새 있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죠.



<2단계 찐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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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마저 찐 사랑을 시작하고,

본격적인 쌍방향 로맨스가 시작되는 2단계는

여러모로 독자들의 광대승천이 가장 격하게 이뤄질만한

구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1단계 빌드업이 이뤄낸 성과이기도 하죠.

그렇게 필사적으로 로맨스를 피하기만 했던 여주인공이

거리낌없이 사랑을 표현하며 직진남 남주랑 알콩달콩을 하기 시작하니,

독자 입장에선 그동안 쌓였던 응어리들이 해소되며

보상을 받는 기분마저 듭니다.


하지만 이 구간은 캐릭터로서의 리플리에겐

위기가 되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리플리를 주인공답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능동적 행위였던

‘남주와의 로맨스를 피한다’가 사라져버린 것이니까요.


하지만 <첫날밤>은 그런 리플리에게

주체성을 부여함으로서 그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녀가 이 소설의 원래 여주인공이자

이제는 친구가 된 리플리와 자신의 사업을 추진하도록 한 것이죠.


굳이 왜 사업 같은 것을 하냐는 제로니스의 질문에

“저는 공작님 재산만 빨아먹고 사는 공작 부인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하는 리플리는

수동적인 여성상을 바라지않는 요즘 같은 시대에

제대로 부응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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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제로니스를 빼앗기 위해

리플리를 납치해 죽이려 하는 ‘로제’와


갑자기 벌어진 전쟁 탓에 제로니스가 자리를 비운 동안

그의 공작위를 뺏기 위해 리플리를 강제로 취하려 하는

‘샤르만 황자’ 등의 악역 캐릭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이어져 나가는 전개는

지나치게 순탄할 일만 남아있던 로맨스에

적절한 위기감을 부여하며 극의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그들은 물론 주인공들의 사랑의 힘 앞에 패배하고

되레 그 사랑을 더욱 깊어지게 만드는 계기가 될 뿐이지만 말이죠.



<3단계 미스터리의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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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현실적인 위기들이 지나간 자리엔

미스터리만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첫날밤>과 같은

빙의물이라면 피할 수 없는 난관이기도 하죠.


그것은 바로 “주인공은 어떻게 빙의를 하게 됐는지”에 대한 의문과

“그 빙의가 영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불안입니다.


사실 어떤 빙의물은 이런 문제를

“그냥 그렇게 되었답니다~.” 정도로

퉁쳐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그럴 경우엔 결국 주인공은 평생

남의 인생에 불안하게 셋방살이나 하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개운한 마무리라고 할 수가 없게 되죠.


하지만 <첫날밤>의 탄탄한 설계는

그런 찜찜함 따위는 남겨두지 않습니다.


사실 그 빙의 현상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삶을 벗어나고 싶었던 빙의 전의 리플리가

흑마술에 소원을 빈 결과였고,


그렇게 평범한 대학생의 삶에 안착한 그녀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생활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설득력 있는 반전을 통해,


주인공 리플리가 타인의 삶과 행복을 빼앗은 게 아닐까 하는

마지막 의혹을 깔끔하게 해명해낸 것이죠.


그렇기에 두 사람의 원만한 상호합의를 통해 서로의 삶을 교환하고

각자의 인생의 진짜 주인이 되어 살아간다는 엔딩은

다른 방식을 생각해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끝맺음이었습니다.


“영원히 저주받은 삶을 살기를”이라는

역설적인 대사도 참 아름답죠.


결국 사랑이란,

저주마저 축복으로 바꾸는 힘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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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첫날밤으로 시작됐던 이야기를

정신적(사랑) 첫날밤으로 끝맺는 수미쌍관 엔딩까지,


정말이지 너무나 뻔한 끝맺음에도

그 뻔함이 끝내 여운으로 남는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는

앞으로도 무수하게 만들어질 빙의물 작품 사이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클리셰 활용법의 사례로 남을만한 수작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에 대한 제 별점은!!



★★★★

(4개/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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