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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냥 Apr 17. 2021

옆 반 선생님과 대차게 싸웠다.

보통의 교사가 혁신학교에 발령났다.

  옆 반 선생님과 대차게 싸웠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대차게 욕먹었다. 왠만한 자극적인 발언은 흘려넘길 멘탈이 되었지만,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는 것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덕분에 토요일 아침부터 꿈자리가 사납다. 


unsplash @ "fight"

혁신학교에 발령난 이후 나는 의사결정을 강요?받고 있다. 

"*학년과 의논해서 결정하세요."

"교과 선생님들과 의논해서 결정하세요."

"##부서 팀장님과 의논해서 결정하세요."

"동학년 선생님과 의논해서 결정하세요."


보통의 학교에서는 교무나 연구 부장이 정해서 일괄로 안내해주는 것들을 이곳에서는 모두 직접 의논해서 결정해야 한다. '뭐 이런것까지'라고 속으로는 생각했지만, 의논할 때마다 교사가 교육과정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1년의 교육과정을 '교사가'계획하기 때문에 문서만 교육과정이 아니라 진짜 교육과정이 된다는 의미같다. 


문제는 논의의 과정이 동화책처럼 순탄하고 답이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모든 선생님들이 같은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의사결정들은 선생님들간 이해가 충돌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교사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업무 배분의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고도 말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것 자체가 하나가 아니니 때로 아이들이라는 기준은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가 된다. 100명이 있으면 100개의 생각이 있다던 격언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특히 이곳은 '관례'와 '하던대로'라는 것이 없다. 모든 논의가 0부터 시작이다. 덕분에 내가 제대로 준비안해서 논의에 참여하지 않으면 내 의견과 상반되더라도, 추후 문제가 있다 느끼더라도 그 원칙에 따라야 하니 정신이 바짝 차려진다. 하나의 결정이 하나의 결과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파생된 여러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걸 뒤집을 수 없으니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치열하게 논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도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의사소통기술에 따라 감정이 상한다. 내가 처음 교사 전체 다모임에 제안서를 내고 논의에 참여한 다음 날, 논의에 참여해줘서 고맙고 선생님께서 마음이 안다치셨으면 좋겠다는 쪽지를 여러통 받았다. 이곳은 치열한 논의가 익숙해서 전입 온 신참에게만 위로 쪽지가 온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보니, 학년에서 다모임에 의견서를 내는 일 자체가 거의 없고, 상상했던 것보다 의견제안을 잘 안한다. "검토 후 의견 주세요"라고 하면 뒤에서는 이야기해도 의견을 내지 않는다. 90명 전교사가 의견 내면 어떻게 돌아가나, 한편으로는 배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랑 ## 선생님이 예전에 싸웠대요. ", "@@선생님 복도에서 소리질렀잖아요." 라는 소문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소문의 주인공이 내가 되었다. 피곤해졌다. 어쩌면 기존 선생님들이 의견을 잘 내지 않는 이유가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의견을 낸다는 것은 잔잔한 물결에 파동을 일으키는 일인데, 그 과정에서 감정이 상하니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평화롭다. 근무 의욕이 완충된 상태와 강제 방전되어 훅 떨어진 상태를 오가고 나니 중간지대에 머물고 싶다.    



보통의 학교에서 탑다운 방식의 의사결정이 그립다. 5년 주기로 구성원이 바뀌는 공립학교와 대단위 학교의 특성상 0에서 교육과정을 짜려니 피곤하다. 생각보다 답이 열려있는 문제가 없어서 치열하게 고민해도 이학교나 그 학교나 아이들이 받는 교육과정은 비슷하지 않나 회의감도 든다. 문제 상황을 한명이 제대로 이해하는 것과 80명이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해서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의 결과가 비슷하다면 굳이 80명이 이해를 해야할까. 이해충돌 사안에서 교사끼리 논의하려니 날카로워진다. 


옆 반 선생님께 마음 맞는 선생님들끼리 말 그대로 혁신적인 교육과정을 행복하게 운영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이곳 혁신학교에서 그런거 해봐야지 생각하며 꿈에 부풀었는데, "마음 맞는"선생님을 먼저 찾는 것이 전제라는 것을 놓쳤다. 서로간의 신뢰가 형성되어 있고, 갖고 있는 정보의 수준이 동일한 상태에서 의욕적으로 논의하면 어딘들 혁신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못하겠는가. 



 

혁신학교에 발령난 이후

처음으로 출근하는 마음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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