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코>
깊은 밤 잠에서 깬 제자가 울고 있자 스승이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코코’의 가족은 사랑하고 서로를 기억하며 불가능해 보이는 소망을 끝내 이룬다. 잠시 다녀온 판타지 세계에는 현실-이상, 삶-죽음 따위 같이 설 수 없는 사바세계의 갈등이 아름답게 해소되고 있었다. 코코 할머니를 중심으로 가족이 화합하는 엔딩 시퀀스에서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다. 영화관을 나오며 꿈에서 깬 제자처럼 슬퍼졌다.
예술가는 가족을 등진다는 통념이 있다. 미구엘의 고조할아버지는 음악을 위해 가족을 떠났고 미구엘은 가업을 반대하고 음악을 고집한다. 미구엘은 하필 음악을 연주하려다 사계에 들어서는데, 그곳에서 고조할아버지가 가족을 사랑했음을 알게 된다. 고조할아버지와 미구엘은 가족과 예술을 합일하려 애쓰고 이때 이들이 거는 마법 주문은 기억이다. 가족을 위한 노래 ‘리멤버 미’를 통해, 판타지 세계에서 사회적으로 권장되는 삶의 방식과 기이함이 권장되는 삶의 방식은 탈없이 화합에 이른다.
미구엘이 사계를 여행할수록 삶과 죽음은 하나로 통합된다. 가족적인 예술가야 세상 어딘가 있다지만 삶과 죽음은 도저히 하나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미구엘과 그의 가족이 기억으로 이은 삶과 죽음의 세계는 달콤하고 애틋하다.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도 모자라 기억을 통해 영원히 함께한다는 믿음이란, 분명 깨고 싶지 않은 아련한 꿈이다.
세상을 떠난 누구보다 그를 기억하는 자들이 아파하고 슬퍼한다. 죽음은 늘 산 자의 몫이었다. 그래서일까, 우리와 닮았을 그들의 세계가 꼭 있길 바란다. 남겨진 이들을 아낌없이 기억하고 아픔과 슬픔의 몫을 나누는 곳이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판타지는 결코 아니라도 믿고 싶어진다.
한참이 지나 설을 쇘다. 오랜만에 멀리서 가족이 모였다. 샛노란 금잔화 다리 건너올 이들을 그리며 몰래 달콤한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