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생각해보면 영화는 참 특이한 놀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우리는 두 시간 남짓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스크린 속 인물들의 설정과 대사를 믿어야만 한다. 예컨대 한 배우가 부산 사투리를 쓰다 다른 영화에서 이북 사투리를 써도, 살인자였다 검사로 분해도 우리는 조금도 의심을 품어선 안된다. 놀이의 규칙을 체화한 성숙한 관객들은 피땀 흘려 우리를 속이는 배우들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즐거워한다. 언제나 그렇게, 영화가 있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믿음이 필요한 영화다. 131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수줍게 입 맞추는 연인이 소지섭과 손예진이 아니라 우진과 수아라는 사실을, 저런 말투라기엔 덩치가 너무 크지 않은가 싶은 아역 배우를, 열심히 감초 연기하는 조연 배우들이 극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희망을, 끊임없이 믿어야 한다. 믿음이 필요한 까닭은 영화가 신파극이어서가 아니다. 신파극은 검증된 극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뜻이지 만듦새와는 무관하다.
원작에 대한 부담이 상당하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한국적 리메이크라는 명분으로 가미된 코미디 요소들이 자충수로 읽힌다. 딱 그 정도면 좋을 텐데, 영화에는 의도되지 않은 웃음 포인트가 부비트랩처럼 널브러져 있다. 급작스레 불치병에 걸리고 차에 치이는 설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시성이 강해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대사들은 뜻밖의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순수함을 보여줘야 할 장면에서 드러난 뻔한 백치미는 종종 캐릭터들로부터 배우의 이름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는 가족과 연인을 위한 판타지로서 성공적이다. 환생과 타임슬립을 다룬 플롯의 정교함은 후반부로 갈수록 감탄을 자아낸다. 심지어 엔딩조차 완벽하다. 내레이션으로 해소되는 극의 갈등을 볼 때쯤엔 오랜 러닝타임이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리메이크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플롯과 엔딩이 원작에 기댄 것이라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무엇보다 내가 느끼는 감동을 배가시킬 방법이 분명해 보인다. 지금 원작을 만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