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상>
상영회는 잠실 롯데 시네마였습니다.
영화에 앞서 끼니를 해결하고자 영화관 아래층 롯데리아를 찾았습니다. 처음 보는 치킨 버거를 시켰습니다. 웬 달나라 운석이 빵 사이에 끼어있어 적잖이 당황했습니다만, 스스로의 무지였고 착각이었습니다. 아아 정말이지 '겉바속촉'이었습니다. 딱딱해 보이는 치킨이 씹는 순간 한없이 부드럽게 찢어졌습니다. 저의 오만함을 반성하며 입을 닦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영화관에 들어섰습니다.
조명이 켜지고 크레딧이 올라갔습니다.
엄숙한 찬송가를 가르고 의자 뒤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거 영화 망하겠는데? 옆에선 시네필로 추정되는 중년의 낮은 장탄식이 들렸습니다. 관을 나서는 관람객들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한국 영화의 앞날을 걱정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류를 대표하는 보이 밴드 멤버와 대국민 오디션이 배출한 슈퍼스타가 참담한 소식을 들려주는 요즘이라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우상>은 언제 어디서나 유명인이 임재하는 인플루언서의 시대, 우리를 향한 메시지처럼 들립니다.
이제 다시 보기 힘든 보이 밴드 '우주 대폭발' 멤버께선 불과 몇 달 전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상을 공개했습니다. 당시 그는 가족을 아끼고 사업에 열심이며 다른 멤버들을 위하는 인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근래 폭로가 이어지고 사람들은 이제야 그의 이중성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합니다. 없던 일이 생긴 게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던 일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누구나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물며 치킨도 겉과 속이 다른데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보여주기 싫은 것을 감추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이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드러나는 사람의 이면에 때론 생각지도 못할 정도의 추악함과 잔혹함이 이면에 숨어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더러움이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구명회(한석규 분)가 그렇습니다.
추잡하기 짝이 없지만 구명회는 결국 우상으로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끝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하는 데 성공합니다. 벌레처럼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던 여인도, 분노와 죄책감으로 이순신 장군의 머리를 날린 남자도, 그와 맞붙어 모두 패배해 사라졌습니다. 믿음을 주는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믿음을 줍니다.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또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연단 위 우상을 향해 열심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직까지도 구명회의 아들이 짓던 조소가 눈에 밟힙니다. 그는 극중 모든 사건의 발단을 아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의 떫은 미소가 자신의 아버지와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봤자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잖아." 한때 실언으로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던 정몽준 이사장의 아들이 떠오르는 건 비약일까요.
어느덧 비웃음이 강당에 앉은 우리를 향합니다. 세게 한 방 맞은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