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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Nov 20. 2022

#1 가지런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Keith Jarrett 키스 자렛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가지런-하다 「형용사」 여럿이 층이 나지 않고 고르게 되어 있다.


쉼표가 긴 타이틀 가운데 무심하게 앉아있다. 덩그러니 놓인 ‘With You 너와 함께’라는 말이 포근하다.


ECM 레이블의 음반은 귀로 한 번, 눈으로 두 번 듣는다. 낮인지 밤인지 모를 흑백의 앨범 자켓은 누군가를 걱정하고 기다리며 창밖을 내다보는 마음만 같다.


라이너 노트를 빼 한 장 넘겨본다.

- 이 노래를 들었고, 다시 나에게 돌려준 로즈 앤에게.

다음 장에는 아내 로즈  자렛이 직접 찍은 키스 자렛의 사진이 있다.


기도하듯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당시 키스 자렛은 오랜 시간 연주자로서 본인을 혹사시킨 탓에 질긴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기약 없는 휴식 기간 동안 그는 자택 스튜디오에서 연주를 조금씩 이어갔다. 홈 레코딩으로 만들어진 이 앨범은 지친 날 안식이 되어준 아내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오직 피아노만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주고, 다시 돌려받는 충만한 경험은 그를 조금씩 일으켜 세웠다.


사려 깊은 연주지만 사색으로 침잠하지 않는다. 인적 없는 한낮 도서관, 한가득 가지런히 책 꽂힌 서가처럼 정갈하다. 잡음이라도 내면 어딘가 흠이 날 것 같아 스스로 숨죽이게 만드는 온전함의 카리스마가 있다. 쾰른 콘서트 앨범이나 키스 자렛 트리오의 음악에서 빛을 발했던 그의 즉흥연주와 비교하면 분명 단출하다. 하지만 덤덤한 고백의 울림이 크듯, 반듯이 이어진 피아노 멜로디는 매 순간 집중해 다음을 기다리게 만든다.  



8번 트랙 <Be My Love>는 언제나 여운이 짙다. 성악곡으로도 잘 알려진 바로 그 노래다. 듣다 보면 말하는 사람의 호흡이 느껴진다. 키스 자렛은 아내에게 이 곡 연주처럼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앨범의 정수를 하나 꼽으라면 7번 트랙 <Something To Remember You By>다. 오르고 내리고 달리고 또 걷는 역동이지만 그 속의 독백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처음과 같이 마지막까지 전달한다. 아내가 찍어준 사진 속 그의 모습이 고집스러운 구도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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