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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Nov 27. 2022

#2 태연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Chet Baker 쳇 베이커

<Chet Baker Sings>


태연-하다 「형용사」 마땅히 머뭇거리거나 두려워할 상황에서 태도나 기색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예사롭다.


희한하게도 오른쪽 쳇 베이커 대신 피아니스트 러스 프리먼이 주인공처럼 보인다.

50년대 재즈의 한 페이지는 미국 서부에서 불어온, 백인이 연주하는, 대중적인 무드의 쿨재즈다. 이중 쳇 베이커는 반드시 꽤 상단에 볼드체로 적혀있어야 한다. 이지적인 감성을 바탕으로 섬세한 트럼펫 블로잉을 구사하던 그는 당대 쿨재즈의 아이콘이다. 젊은 미남 쳇 베이커의 찬란한 전성기는 이후 무분별한 마약으로 파국에 치닫는 일대기 때문에 안타까운 극적 효과를 더하기도 했다.



앨범 라이너 노트의 작가 제럴드 허드는 쳇 베이커를 두고 노래도 부르는 트럼펫 연주자라고 부를지, 트럼펫도 부는 가수라고 부를지 고민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좋다. 사람들은 트럼페터 쳇 베이커와 가수 쳇 베이커를 동시에 좋아했으니까. <Chet Baker Sings> 트랙들은 풋풋한 보컬로 채워져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1-6번 트랙 사이드 A는 56년에, 7-14번 트랙 사이드 B는 54년에 만들어졌다. 1929년생 쳇 베이커는 고작 20대 중반이었다.

20대 쳇 베이커의 목소리에는 애늙은이가 있다. 왜일까 사춘기 애늙은이들은 애써 덤덤한 척 ‘쿨하게’ 군다. 정돈되지 않은 감정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다고 믿나 보다. 자신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청년 쳇 베이커는, 기쁨에도 슬픔에도 일부러 비슷한 처연함을 묻혀놓는다. 사는 게 다 그렇지 않겠냐는 단념과 자조도 괜히 섞여있다. 노래를 부를 때 어떤 마음인지 물으면 엷게 웃으며 피하거나 쓸데없는 말만 잔뜩 흘릴 것 같다. 대놓고 미워하기 힘들지만 어떤 가식은 뒤편에 두고 왔을 쓸쓸함을 떠올리게 한다.


대중을 겨냥한 앨범인 만큼, 익숙한 스탠더드 넘버가 주를 이룬다. 3번 트랙 <Like Someone In Love>처럼 아련한 때나 7번 트랙 <But Not For Me>처럼 발랄할 때나, 쳇 베이커는 미소와 실소 사이 어디엔가 있다. 누가 대뜸 어눌한 발음이나 설익은 보컬을 비난해도 대수롭지 않다고 넘어갈 그다. 열넷의 곡을 지나 찾아오는 나른함은 대화가 시원하게 끝나지 않을 때 느끼는 무기력함과 살짝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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