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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Jun 11. 2023

#27 호기롭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Joe Pass 조 패스

<Virtuoso>


호기-롭다 「형용사」 씩씩하고 호방한 기상이 있다.



노래 만드는 창작의 고민을 떠올려본다. 누구나 만들고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곡이라면 창작물로서 가치가 반감되니 남의 것과 비슷하면 안 된다. 또한 듣는 이를 고려하면 지루할 틈 없이 만듦새를 챙기는 노력도 필요하다. 말이야 쉽지, 하루에 수십 수백 곡이 쏟아지는 요즘도 이런 노래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무대 가운데 조명이 떨어진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자가 헐렁한 양복을 입고 터벅터벅 걸어온다. 의자에 앉아 기타를 품에 끼고 팔을 뻗어 움직이기 편하도록 소매를 당긴다.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떨궈 손끝에 집중하면, 왼손부터 오른손까지 전기가 통한 듯 손가락이 하나둘 깨어난다. 50분짜리 쇼가 막 시작되었다. 기타리스트 조 패스의 74년도 앨범 <Virtuoso>다. 실로 거장(Virtuoso)이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을 기백의 그는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혈혈단신 기타 한 대로 승부를 겨룬다.



그가 들고 나온 비밀병기는 독창성과 완성도다. 조 패스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기타 스타일로 스탠더드를 편곡하고 연출한다. 연륜과 상상력의 힘이 놀랍다. 동시에 그는 갖가지 기타 주법으로 홀로 선 무대의 약점을 지우고 셈여림, 완급조절, 프레이징 등 기술로 자칫 허전할 수 있는 틈새까지 부지런히 메운다. 양손으로 연주하는 기타가 피아노와 달리 동시에 반주가 불가능하다는 당연한 핸디캡을 잊게 만들 정도다. 그만의 연주 풍과 치밀한 곡 설계는 혼자 만든 앨범이 무료할 것이라는 관객의 선입견을 보기 좋게 부순다.



<Virtuoso> 트랙 하나하나, 매 순간마다 조 패스의 터치가 진득하게 묻어있다. 스탠더드를 모은 앨범인 만큼 다른 아티스트, 특히 캄보 편성이 연주한 버전과 차이를 느끼는 재미가 크다. 10번 트랙 <All the Things You Are>의 익을 대로 익은 완급 조절과 변죽을 울리는 뻔뻔함은 만나본 적 없는 그의 유머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5번 트랙 <How High the Moon>에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아슬아슬한 오른손 속주가 맛깔난다. 멤버 없이 혼자 연주하는 만큼 틀리면 바로 티가 나지 않을까 괜히 듣는 이만 애탄다. 의외의 이유로 긴장감이 배가되는 게 또 다른 감상 포인트다.


연주자 인상이 진한 나머지 탁하게 울리는 아르페지오의 순간도, 과하게 튕기는 기타 줄 소리조차 그의 계획과 의도임을 믿게 된다. 적어도 이 쇼에서 만큼은 무슨 짓을 해도 조 패스다. 스탠더드 곡의 독주라는 조건에서 스타일과 기술로 승부하는 그는 배짱도 좋은 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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