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현석 Jun 19. 2023

#28 후텁지근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The Quintet 더 퀸텟

<Liveat Massey Hall>


후텁지근-하다 「형용사」 조금 불쾌할 정도로 끈끈하고 무더운 기운이 있다.



재즈를 이야기할 때 즉흥 연주를 빼놓을 수 없다. 기민하게 곡 전개를 읽고 몸으로 반응하는 연주는 언제 봐도 신기하다. 당장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끝에 도킹하는 우주선처럼 멜로디가 제자리로 돌아와 아귀를 맞출 때면, 안도감과 쾌감의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오래전 스윙 시대 재즈란 악보 중심의 댄스 음악이었다. 연주자들은 대중이 선호하는 스탠더드를 빅밴드 스타일로 편곡했고 흥겨운 공연장은 관객들의 어깨춤으로 가득 찼다. 밴드는 준비된 레퍼토리로 오늘이나 내일이나 여기나 저기나 같은 연주를 이어갔다. 객석이 언제나 즐거웠던 반면, 무대 위 아티스트들은 획일적인 연주에 조금씩 싫증 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연을 마친 뒤 저들끼리 모여 새로운 재즈를 찾는 실험을 꾀한다. 이른바 애프터 아워즈(After Hours), 즉 퇴근 이후의 연주다. 악보에 적힌 일정한 코드 배열부터 뒤틀었다. 박자는 쪼개졌고, 코드 구성엔 새로운 음이 더해졌으며, 음의 배열은 조금씩 바뀌었다. 재즈는 더 이상 조화로운 멜로디의 흥을 돋우는 음악이 아니었다. 가장 능동적이고 긴장감 넘치며 도발적인 재즈엔 비밥이라는 새 이름이 붙는다.
 


더 퀸텟의 53년 앨범 <Live at Massey Hall>은 비밥이다. 대충 만든듯한 아티스트 이름이 눈에 띄는데, 당시 녹음이 그들 본명으로 발매될 수 없던 까닭에 붙은 별칭이다. 그렇다면 그 다섯은 누구인가?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버드 파월, 맥스 로치 그리고 찰스 밍거스까지 비밥 정상회담이라고 불러도 좋을 라인업이다. 찰리 파커는 본인의 색소폰을 제대로 챙겨 오지도 못했지만, 겨우 빌린 플라스틱 알토 색소폰으로 반세기 재즈 역사를 뒤흔들고 있었다.


1953년 캐나다 매시홀에 모인 다섯은 비밥 그 자체였다. 악보에 적힌 코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조화로운 멜로디를 들려주는 건 연주에 있어 고려대상이 아니었으니까. 어린아이가 블록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코드를 분절하고 이어붙여 그때그때 새로운 모양을 선보였다. 탄산음료같이 톡 쏘는 연주는 전에 듣지 못한 질감이었다. 찰스 밍거스가 현장의 명연주를 리코딩해 몰래 발매한 덕분에 귀한 즉흥연주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비밥에서 스탠더드 곡은 뼈대가 되는 테마만 앙상하게 남긴 채 그 외를 즉흥연주로 채운다. 3번 트랙 <All the Things You Are>에서 익숙한 도입부와 다르게 중반부에서는 원곡을 짐작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각자 재간을 부린다. 익살스러운 2번 트랙 <Salt Peanuts>에서 잘게 부서져 반짝거리는 연주와 디지 길레스피의 목소리, 그리고 관객의 호응이 오가는 걸 듣노라면 당시 즉흥연주 현장의 뜨끈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다가온다.


누군가 비밥이 무엇이냐 묻거든 고갤 들어 이 앨범을 보게 하라. 다시 즉흥연주가 무엇이냐 묻거든 들려줄 앨범, <Live at Massey Hall>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7 호기롭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