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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키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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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Aug 27. 2023

1. 너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키티에게

키티에게, 


사람들이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너를 키티라고 부르는 데는 설명이 필요하겠지.


엄마와 나는 오래전부터 너를 큰소리로 불렀단다. 어둡고 따뜻한 데서 소리가 웅웅 들렸던 때. 그래, 그때를 말하는 거야. 우린 줄곧 너를 키티라고 불렀어. 이유는 간단하단다. 아빠가 고양이별에서 왔기 때문이야. 고양이별에서 온 사람은 혼자서도 잘 놀고, 가끔 골똘히 자기 세계에 빠지곤 한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양이별 사람은 귀여워. 네 엄마는 강아지별에서 왔는데, 그건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자. 


우린 오늘, 2023년 8월 4일 만났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동 4층 신생아실 앞이었지. 그 병동에서 만큼 아빠 이름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다. 난 엄마의 보호자였고 넌 엄마의 아기였어. 엄마가 수술실로 들어가고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OOO 보호자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겁지겁 달려간 내 앞에는 두 손만 넣을 수 있게 제작된 투명 플라스틱과 그 안에 키티 네가 있었다.


고백하자면 널 처음 만날 때 예배당 종소리나 스티비 원더의 Isn't She Lovely가 나올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난 어색하게 서있었고, 내 머릿속에는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지? 생각뿐이었어. 


삼신할매인지 간호사인지 한 분이 너의 코드 번호(병원에서 이미 점지한 것이지)와 생년 월일을 거듭 확인했다. 이게 감격인지 당혹스러움인지 정신 못 차리던 아빠는 겨우 쥐어짜 아이는 괜찮나요? 엄마는 괜찮나요? 물어봤다. 간호사 한 분이 어물쩍 대답을 넘겼는데, 알고 보니 코드 번호를 묻던 삼신할매가 견습생이었나 보더라. 옆에 있는 선배한테 일에 대해 물어보고 살짝 혼나는 걸 보니 실감이 났어. 아 여긴 그냥 현실이구나.


그리고 아빠는 핸드폰을 들어 네 사진을 빠르게 찍었고, 3장의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사진을 엄마와 아빠의 엄마와 아빠에게 보내드렸단다. 갓 나온 판다 새끼처럼 분홍빛을 띤 네게 세상의 모든 축복이 쏟아졌다. 친구들에게 직장 동료들에게 자랑하던 그 순간 스티비 원더 목소리가 살짝 들린 것 같기도 하고. 내 걱정만큼 얼굴이 주름지거나 찌그러져있진 않았는데, 나중에 언젠가 네게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사진을 보여주마.


다행히 엄마는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하기 위해 입원실로 옮겨졌고, 아빠는 엄마를 챙기고 있단다. 여긴 다인실이라서 조용조용 말하는데 뭔가 나쁜 짓이라도 한 듯 아주 은밀한 재미가 있어. 입원하는 동안 하루에 최대 두 번 너를 보러 갈 수 있다고 하더라. 가면 무슨 말을 해줄까, 말을 하면 들리기나 할까, 너 얼굴을 기억할 수나 있을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이 감정의 카테고리가 어디일까 싶다만, 네가 보고 싶다 벌써. 너라는 사람이 나타난 뒤로 많은 일들이 변하겠지? 그리고 변하는 모든 것들은 내게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일일 거야. 


엄마가 냉장고에서 물 꺼내달라고 해서, 여기까지 줄인다.



2023.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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