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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키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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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Oct 03. 2023

12. 맘마와 맘마의 맘마

키티에게


엊그제 퇴근하고 돌아왔는데 엄마가 사색이 되어있더라고. 순간 겁이 나 조심스레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어. 엄마는 천천히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키티가 모유를 더 이상 먹지 않으려 해." 

"... 응?" 

"아기가 자꾸 모유 수유를 거부한다고."


고백하자면 아빤 그 순간 '뭐야, 별 일 아니잖아'라고 말할 뻔했어. 그보다도 아빠는 생각이 표정에 드러나는 거 알지? 어쩌긴, 당연히 저 생각을 들키고 엄마한테 혼났지. 


엄마에게 모유 수유란 키티 밥 먹이는 것 한참 이상이란다.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패닉이 온 거야. 엄마가 느꼈을 상실감을 아빠가 영영 이해할 순 없겠지만, 이내 수긍이 가더라. 떠올려보니 그간 키티를 안고 젖을 먹일 때마다 엄마 표정이 그날 중 가장 밝고 해맑았거든. 흔히들 아빠라는 개체는 평생 꿈도 못 꿀만큼 벅찬 순간이라고들 해.


또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사례들을 찾아보니 아기가 모유 수유를 거부하는 경우는 흔하다더라. 엄마의 신체가 맘마를 제공하는 수준과 아기가 수용할 수 있는 정도에 격차가 생기기 때문이라나.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그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 수는 있다던데, 기약 없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하니 엄마도 속상한 모양이야.


엄마가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말했어. 이번주 모유 수유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아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해보겠다고. 그러고도 안되면 끝내 모유 수유를 포기하겠다고. 네가 이 말을 하는 엄마의 표정을 봤다면 결코 사춘기에 반항할 수가 없을 거다. 네 엄마는 지금 진심을 다해 아이를 위한 엄마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


엄마라는 존재는 왜 강하고 위대하다고 하는 걸까? 적어도 우리 집에선 답이 나왔다. 그건 아빠가 아침저녁으로 키티 볼에 뽀뽀하는 거에 집중하고 있을 때 엄마는 키티를 굶기지 않고 면역력을 챙겨주고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지. 당분간 가장은 엄마라고 하자. 이따 엄마가 샤워 마치고 나오면 뭐 먹고 싶은 건 없는지, 한 번 여쭤봐야겠다.


2023. 0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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