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3-2022.04.24
이 책은 두 번이나 읽었다. 원래는 읽을 생각도 없었는데,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읽게 된 것이다. 70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어서 부담 없이 집어들었다. 보는 것도 1시간이면 충분히 볼 정도였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비극이었다고 한다. 책을 다 보고 나서 유튜브 채널 '일당백'에서 설명해주는 것까지 들었다.
일반적인 슬픈 스토리와 달리 그리스 비극은 선-악 대립이 아니라, 양 측 모두 타당한 논리를 가지고 싸우는데 그 갈등이 비극적으로 끝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 책에서도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와 테베의 왕 크레온은 서로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 대립각을 세운다. 크레온은 나라를 배반한 폴류네이케스에게 장례식이라는 영광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한 번 제정한 법은 지켜져야 나라의 도리가 바로선다는 것을 근거로 하며, 안티고네는 오빠의 장례식을 치르는 것은 하늘이 정한 법도라는 것, 그리고 인간의 법이 하늘이 정한 법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 사회의 종류에 따라 안티고네의 논리와 크레온의 논리 중 선호하는 논리가 갈린다는 것이었다. 정을 중시하는 동양 사회에서는 안티고네의 논리가, 법과 질서를 우선시하는 서양에서는 크레온의 논리가 더 설득력을 갖는다고 한다.(유튜브에서 정박님이 알려줬다) 나 역시 처음에는 책을 읽으면서 당연히 크레온이 악, 안티고네가 선 의 구도로 파악하고 읽었다. 유튜브를 보고 다시 한 번 책을 보면서는 중립적으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크레온 역시 자신이 정한 나라의 법을 지키기 위하여 친족인 폴류네이케스에게도 엄한 벌을 내린 것이었다. 나라를 배반한 자에게 장례식을 치르는 영광을 허락하여 준다면, 누가 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치겠는가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도덕' '인륜' 과 같은 단어들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안티고네가 내세운 논리는 '도덕'에 근거한 것이었다. 옛날에는 이 도덕 논리가 천상에 있는 신들의 계율로서 당연하게, 그리고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졌다면, 르네상스 이후로 인간에게 힘의 중심이 이동하고 나서는 이러한 논리가 설득력을 갖기 어려워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고대 사회가 도덕적으로 더 우위에 있는 사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누군가에 대한 두려움에 근거한 복종이지만, 그래도 비도덕에 대한 욕망들이 제어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 아닐까?
안티고네는 서양 고전 중의 고전으로서, 이후의 수많은 문학 작품들에도 인용된다. 나는 아직 다양한 문학들을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을 실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을 한 번 읽음으로써 이후의 독서에서 안티고네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들이 등장할 때는 그 연관성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안티고네가 다른 작품에서 등장했을 때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그리고 소포클레스의 비극 3부작 중에서 마지막 작품이 안티고네 인데, 그 앞의 두 작품, 오이디푸스 왕 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비록 플롯은 다 알아버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