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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까스 Aug 28. 2022

일리아스 - 호메로스

2022.8.11

내가 고전에 관심을 가지기 이전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고전 중의 고전이다. 심지어 나는 이 책의 스토리를 대부분 알고 있다. 어렸을 때 <만화 그리스로마신화>가 대유행한 덕분이다. 따라서 별 거부감 없이 책을 선정했고 (도서관에서 700쪽짜리라는 것을 안 뒤 약간 후회했지만)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눈에 익은 인명, 신명과 기억에 있는 사건들이 펼쳐지는데도 완독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왜일까?


우선 문체가 낯설었다. <일리아스>는 처음부터 기록된 형태로 내려온 것이 아니다. 호메로스가 처음 이야기를 집대성했을 당시에는 구전의 형태로 내려왔을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몇 백년 후에야 기록물이 되었으니, 당연히 당시의 구어체가 듬뿍 베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3000년 전의 구어체를 자주 접해본 사람은 아니다. 둘째로, 인명이 엄청나게 등장한다. 보통 문학작품에서 등장인물은 나름의 서사를 가지고 작품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일리아스>에서 그런 자비는 없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맹장 아이아스가 트로이아를 상대로 올린 공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하나, 등장한지 몇 줄만에 아이아스의 창에 맞아 사망한다. 아가멤논, 디오메데스, 아킬레우스, 헥토르의 활약상을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다. ‘AA나라에서 고귀한 혈통 BB의 아들 CC… 하지만 위대한 아가멤논의 창을 맞고 어둠이 그의 눈을 덮었다’. 다 이런 식이다. 이런 식의 수사가 몇 페이지 내내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따라서 엄청난 양의 인명이 등장하는데, <일리아스>를 읽을 때에는 이런 엑스트라 쯤은 가볍게 무시할 줄 아는 대범함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처음에 한줄 한줄 정독하다가 곧 기억력의 한계를 느끼곤 이런 수사는 뛰어넘곤 했다.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왜 이게 서양 문학의 마스터피스일까?’라는 질문이었다. 옛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부터 근대의 천재들까지, 호메로스를 찬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 책을 읽으며 내게 무언가라도 느껴질 줄 알았건만…… 내게 남은 것은 ‘그 유명한 일리아스를 그래도 읽어냈다!’는 뿌듯함뿐이었다. 줄거리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대로, 제우스의 간섭으로 불리하던 그리스군이 아킬레우스의 도움으로 적장 헥토르를 죽이고 승기를 잡는다는 내용이다. 이 역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으로, 새로운 것은 없었다. 게다가 스토리적인 면에서 더욱 맥이 빠지게 된 것은 신들의 존재였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 자체인 존재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래도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돌을 마지막에 잡아주는 정도였다면, <일리아스>의 신들은 언덕의 경사 자체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느낌이었다. 무적이라고 불리는 아킬레우스의 무훈도 신의 가호 덕분이며, 메넬라오스가 파리스와의 싸움에서 이겨 파리스를 죽이려 하여도 신들이 파리스를 구해주면 속수무책이다. 즉, 인간의 능력은 굉장히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발휘될 수 있었다. 행간에 숨어있는 이러한 의식 자체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대로 책을 읽어나가며 감탄하게 된 부분이 있다면, 중간중간 묻어있는 보석 같은 비유들이었다. 그 당시의 생활상을 반영하여 전장 곳곳의 모습을 날카롭게 묘사한 비유들이 가끔씩 나를 전율하게 했다. 하지만 이런 비유들은 호메로스 이외의 작가들의 문체에서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일리아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요소는 아닐 듯 했다. 또 새로운 것 하나는, 내가 즐겨하는 게임 오버워치에 있는 맵 ‘일리아스’가 트로이아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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